전력을 먹는 괴물에서 친환경 두뇌로의 변신
AI 기술이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에너지 소비 문제가 심각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ChatGPT와 같은 거대 언어모델을 훈련시키는 데 필요한 전력량은 소규모 도시 한 개가 소비하는 전력과 맞먹는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전 세계 연구진들이 AI를 친환경적으로 만들기 위한 혁신적인 기술들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AI 에너지 효율성 개선은 단순히 전기요금 절약 차원을 넘어선다. 지속가능한 AI 발전과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필수 과제가 되었다. 이 글에서는 AI 하드웨어의 에너지 효율성을 혁신적으로 개선하는 최신 기술들을 살펴보려 한다.
전통적인 컴퓨터 구조에서는 데이터를 메모리에서 프로세서로 가져와 연산한 후 다시 메모리로 보내는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낭비된다. 마치 요리사가 냉장고에서 재료를 가져와 조리대에서 요리한 후 다시 냉장고에 넣는 비효율적인 과정과 같다.
CIM(Compute-in-Memory) 기술은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다. 메모리 안에서 직접 연산을 수행하여 불필요한 데이터 이동을 제거하는 것이다. 특히 RRAM(Resistive Random-Access Memory) 기반 CIM 칩은 AI 모델의 가중치를 고밀도로 저장하면서 동시에 연산까지 처리한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인 NeuRRAM 칩은 기존 RRAM-CIM 칩 대비 2배 향상된 에너지 효율성을 달성하며, 다양한 AI 모델 아키텍처를 지원하는 뛰어난 범용성을 보여준다. 또한 소프트웨어 모델과 유사한 추론 정확도를 유지하면서도 전력 소비를 대폭 줄이는 데 성공했다.
인간의 뇌는 약 20와트의 전력으로 복잡한 사고와 판단을 수행한다. 이는 현재 대형 AI 시스템이 소비하는 전력의 수백만 분의 일에 불과한 놀라운 효율성이다. 뉴로모픽 컴퓨팅은 바로 이 인간 뇌의 정보 처리 방식을 모방하는 기술이다.
기존 디지털 컴퓨터가 0과 1의 이진 신호로 정보를 처리한다면, 뉴로모픽 컴퓨팅은 뇌의 신경세포가 전기적 스파이크로 소통하는 방식을 흉내 낸다. 이러한 스파이킹 신경망(SNN) 기술은 필요할 때만 연산을 수행하여 에너지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최신 연구에서는 압축된 스파이크 시퀀스를 처리하는 새로운 아키텍처들이 개발되어 SNN 가속기의 에너지 효율성을 한 차원 높이고 있다. 이는 AI가 더욱 생물학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게 해 준다. [2]
범용 프로세서로 AI를 실행하는 것은 마치 스위스 아미 나이프로 정밀 수술을 시도하는 것과 같다. 가능하긴 하지만 최적의 효율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AI 워크로드에 특화된 전용 가속기들이 등장했다.
구글의 TPU(Tensor Processing Unit)는 AI 전용 ASIC 가속기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매트릭스 곱셈 연산에 특화되어 설계된 TPU는 기존 범용 프로세서 대비 월등한 성능과 에너지 효율성을 자랑한다.
최신 데이터에 따르면, TPU v4에서 Trillium 세대까지 두 세대에 걸쳐 AI 워크로드의 탄소 효율성이 3배 개선되었다. 첫 번째 세대 TPU는 기존 GPU와 CPU 대비 15-30배 빠른 성능을 보여주며, AI 가속기 시장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했다. [3]
FPGA(Field-Programmable Gate Array)는 또 다른 혁신적인 접근법을 제시한다. 마치 레고 블록처럼 용도에 따라 하드웨어 구조를 재구성할 수 있어, 특정 AI 모델에 최적화된 아키텍처로 변경이 가능하다.
FPGA는 하드웨어 수준에서 병렬 처리를 가능하게 하여 심층 신경망의 추론 속도를 높이고, 기존 CPU나 GPU 구현 대비 지연 시간을 크게 줄인다. 또한 재구성 가능성을 통해 다양한 신경망 모델에 맞춤형 최적화를 제공한다. [4]
실리콘 기반 전통적인 반도체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새로운 소재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신소재들은 AI 하드웨어의 에너지 효율성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멤리스터(memristor)와 같은 신흥 나노소자는 전원이 꺼져도 정보를 기억하는 비휘발성 특성을 가지고 있어 대기 전력 소모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5] ECRAM(Electrochemical Random-Access Memory)은 이온 역학을 활용하여 1000개 이상의 메모리 상태를 구현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이다. [6]
이러한 새로운 소재들을 기존 CMOS 회로와 결합한 하이브리드 아키텍처는 AI 하드웨어의 전력 제약을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컴퓨팅 시스템 개발에 기여하고 있다.
하드웨어 혁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 레벨에서도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기법들이 개발되고 있다.
AI 모델 압축과 양자화는 모델의 '스마트 다이어트'라고 할 수 있다. 32비트로 표현되던 숫자를 8비트나 4비트로 줄이면서도 성능 저하를 최소화하는 기술이다. 이는 마치 고해상도 사진을 적절히 압축해 용량은 줄이지만 시각적 품질은 거의 동일하게 유지하는 것과 비슷하다.
저정밀 양자화 기술은 특히 에지 디바이스에 적합한 경량 모델을 만드는 데 효과적이다. 훈련 알고리즘을 수정하거나 수치 표현의 정밀도를 줄이는 등의 간단한 개입만으로도 상당한 에너지 효율성 개선을 달성할 수 있다. [7]
효율적인 데이터 흐름 설계는 AI 가속기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최신 신경망 가속기들은 MAC(Multiply-Accumulate) 유닛의 활용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다중 차원에 걸쳐 병렬 처리 수준을 동적으로 조정한다.
이러한 최적화를 통해 벤치마크 네트워크에서 97% 이상의 MAC 활용도를 달성하며, 기존 설계 대비 4.7배 높은 에너지 효율성을 제공하는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 [8]
진정한 효율성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유기적으로 협력할 때 달성된다.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공동 설계 접근법은 알고리즘, 애플리케이션, 하드웨어 아키텍처를 통합적으로 고려하여 최적의 효율성을 추구한다.
특히 자원 제약이 있는 에지 장치에서는 입력 데이터의 복잡성에 따라 적절한 연산 복잡도를 가진 모델을 동적으로 선택하는 적응형 추론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9]
"측정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는 말처럼, AI의 에너지 효율성을 정확히 측정하고 평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표준화된 벤치마킹 방법론들이 개발되어 마이크로와트부터 메가와트까지 다양한 전력 범위에서 ML 시스템의 에너지 효율성을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흥미롭게도 최근 연구에서는 ImageNet 분류 모델의 에너지 사용량 증가에 비해 정확도 향상 폭이 급격히 감소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는 무작정 더 큰 모델을 만드는 것보다는 효율성에 초점을 맞춘 설계가 중요함을 시사한다. [10]
표준화되고 적응 가능한 에너지 소비 지수가 개발되어 다양한 심층 학습 모델의 에너지 효율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되었다. 이러한 평가 시스템은 지속가능한 AI 개발을 장려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AI 에너지 효율성 개선 노력들은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지구 환경 보호와 지속가능한 기술 발전이라는 더 큰 목표를 향하고 있다. 하드웨어 아키텍처 혁신, 새로운 소재 활용, 알고리즘 최적화, 통합 설계 접근법 등 다방면의 혁신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CIM 기술, 뉴로모픽 컴퓨팅, 전용 가속기, 신소재 활용 등의 하드웨어 혁신과 모델 압축, 데이터 흐름 최적화,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공동 설계 등의 소프트웨어 최적화가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앞으로 몇 년 안에 현재보다 수십 배, 수백 배 더 효율적인 AI 시스템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AI는 더 이상 전력을 잡아먹는 괴물이 아닌,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든든한 파트너이자 친환경 기술의 대표주자가 될 것이다.
AI 기술의 발전과 환경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한 인류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으며, 그 성과는 이미 우리 앞에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1] Weier Wan, Rajkumar Kubendran, Clemens Schaefer, et al. “A Compute-in-Memory Chip Based on Resistive Random-Access Memory.” In Nature. 2022.
[2] Surya Narayanan, Karl Taht, Rajeev Balasubramonian, Edouard Giacomin, and Pierre‐Emmanuel Gaillardon. SpinalFlow: An Architecture and Dataflow Tailored for Spiking Neural Networks. 2020.
[3] Bor-Sung Liang. “Design of ASIC Accelerators for AI Applications.” In IET Conference Proceedings. 2025.
[4] T Cao. Energy-Efficient AI Hardware Design for Edge Intelligence. 2024.
[5] Y. Huang, Vignesh Ravichandran, Wuyu Zhao, and Qiangfei Xia. “Towards Energy-Efficient Computing Hardware Based on Memristive Nanodevices.” In IEEE Nanotechnology Magazine. 2023.
[6] Hyunjeong Kwak, Nayeon Kim, Seonuk Jeon, Seyoung Kim, and Jiyong Woo. “Electrochemical Random-Access Memory: Recent Advances in Materials, Devices, and Systems towards Neuromorphic Computing.” In Nano Convergence. 2024.
[7] Daniel Edelman, Joseph McDonald, David Bestor, et al. Interventions to Reduce AI Energy Requirements. 2023.
[8] Cheng-Yan Du, Chieh-Fu Tsai, Wen-Ching Chen, et al. “A 28nm 11.2 TOPS/W Hardware-Utilization-Aware Neural-Network Accelerator with Dynamic Dataflow.” In 2022 IEEE International Solid- State Circuits Conference (ISSCC). 2023.
[9] Nitthilan Kanappan Jayakodi, J. Doppa, and P. Pande. “A General Hardware and Software Co-Design Framework for Energy-Efficient Edge AI.” In 2021 IEEE/ACM International Conference On Computer Aided Design (ICCAD). 2021.
[10] Zeyu Yang, Karel Adámek, and Wesley Armour. “Double-Exponential Increases in Inference Energy: The Cost of the Race for Accuracy.” In ArXiv.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