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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기계발팩토리 Apr 19. 2022

고과보다 더 소중한 것을 얻다

조금씩 자존감을 회복하다

아침미팅이 조금은 할만해졌다


회사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다르겠지만, 저희 회사는 아침 시간이 가장 분주합니다. 전날 야간에 발생한 사건이나 문제점들을 점검하고, 그에 대한 대응책을 챙겨 가야 하기 때문이지요. 보통은 아침 회의 때 문제점들이 보고가 됩니다. 그런데 상사분들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만 보고 받는 것을 싫어하시지요. 원인이 무엇인지, 해결책은 무엇인지까지 함께 듣고 싶어하신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제 경우에는, 출근하자마자 동료나 선배 사원에게서, “어젯밤에 어느 제품에서 문제 생긴 거, 어떻게 해결할 거야?” 하는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막 도착해서 외투도 벗기 전인데, 다짜고짜 와서 “이유가 뭐야?” 라고 물어보면 머릿속이 하얘졌지요.      


상대방도 제가 지금 막 출근했다는 걸 모르지는 않겠지요. 본인도 급하니까 물어 보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도 모르고 있었어?” 라고 말하기 위한 사전 작업일 때도 있었습니다.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내심 “나는 미리 다 파악했지.” 라는 의도가 있는 경우도 있고요.     


아무튼 그럴 때마다 제 대답은, “그랬었나요? 아직 못 봤는데 확인해 볼께요.” 라고 하고 부랴부랴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한 발씩 뒤처지는 느낌이 들었지요. 스스로가 언프로페셔널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 날 하루는 한방 맞고 시작하는 것이었지요.      


아침 일찍 출근하는 것은 이런 패턴을 깨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날 있었던 이슈를 아무도 없을 때 제일 먼저 접하게 되었지요. 그러면 제 나름대로 이유를 찾아 보기도 하고, 협업 부서에 관련된 자료를 요청해 놓을 수도 있었습니다.      


선배 사원들이 출근했을 때 보고하기도 용이했습니다. “어젯밤에 이런저런 이슈가 있었는데, 아직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관련 부서에 의견을 요청해 놓았고, 일단 재발하지 않도록 임시 조치는 해 놓은 상태입니다.” 라고 말하면 되니까요.      


“어젯밤 이슈 파악해 봤어?” 소리를 듣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제일 먼저 알게 되었고, 주위 상황에 딸려가는 입장은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저는 이렇게 제일 먼저 문제 파악을 할 때, 나름대로 승점을 얻는 느낌이었습니다. 게임 같은 것이지요.     


그 뒤로부터 저는,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선배나 상사로부터 전달받는 상황을 피하려고 무진장 애를 많이 썼습니다. 상사가 문제를 인지하고 저에게 전달하는 것은 곧 프로로서 저의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런 상황이 가끔씩은 있었지만, 발생할 때마다 저는 “왜 이 문제를 나보다 상사가 먼저 알게 되었는가?”를 따져보는 편입니다. 그건 통상적으로 있는 일이 아니라, 재발하면 안 되는 사고라고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일하다 보니, 상사로부터 쪼임을 받거나 닦달을 받는 일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동료나 협업 부서 사람들을 채근하는 입장이 되었지요. 누구든 재촉을 받으면 압박을 받겠지만, 그래도 재촉받는 것보다는 하는 편이 조금은 더 나은 것 같았습니다.      


긍정적인 피드백, 또는 정신승리


임원 분들은 일찍 출근하시는 경우가 많지요. 아침 일찍 출근하다 보니 제가 속한 부서의 조직장을 맡으신 상무님의 출근을 보는 일이 잦았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번 일찍 출근해 있으니, 아마도 눈여겨보신 것 같습니다.


한번은 출근하시다가 저를 보시고 제 자리에 오시더니, “오늘도 일찍 왔어? 피곤하지도 않냐?” 하시고선 어깨를 툭 치고 가시더군요. 지금 와서야 하는 이야기지만, 괜히 으쓱해졌습니다. 일찍 출근하니까 눈에 띄는구나 싶었어요.


실제로 임원분께서 저를 좋게 생각하셨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당시 저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긍정적인 피드백은 행동을 강화하지요. “잘 하고 있는 것 맞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침 시간을 사수하는 것은 제 일과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팀 내에서도 제 나름대로의 시간 활용 스타일을 존중해 주는 분위기였습니다. 새벽에 일찍 출근했기 때문에 저녁에 남아 있는 빈도는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맡은 일 제 때 처리해 놓았고 회의 시간에 질문도 바로바로 대답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아침 시간을 잘 활용하게 된 뒤로 저는 “그냥 신입사원”에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자기 몫은 할 수 있는 병력”이 된 것이지요. 회의 시간에 의견을 낼 수 있을 만큼 이해도가 높아졌고, 엔지니어로서 제 의견이 존중받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과장급 경력사원으로서, 같이 입사한 대졸 사원급 동료들을 이끌고 일할 기회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름대로 저의 기술적 리더십이 성장했다는 의미였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 직위나 직책에서 오는 외적인 리더십이 있고, 그와 상관없이 업무 역량과 실력에 의해 좌우되는 실질적인 리더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의 말은, 아무리 어려도 귀담아 들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감사하게도 제 의견 역시, 그렇게 존중받고, 채택되기 시작했습니다.     


직위와 상관없이, 의견이 존중받는 환경은 업무 의욕을 불타게 하는 데 큰 연료를 제공합니다. “내 말을 들어 주는구나.” 라는 생각에 더 열심히 일하게 되고, 더 재미있게 일하게 되었지요.      


가까스로 C는 피했습니다.


야근에 조출에, 어떻게든 하위 고과를 피하려고 몸부림쳤던 입사 첫 해 인사평가에서, 저는 바람대로 하위 고과를 피했습니다. 상위 고과를 받기에는 아직 부족했지만, 그래도 한 사람 몫은 해 냈다는 생각에 만족스러웠습니다.      


물론 그 때는 이미, 배움과 성장의 즐거움을 깨달았을 때였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더 성장할 거니까, 첫 해 인사평가에 연연하지 말아야겠다.” 라는 생각 말이지요.      


학창시절 입시에서 큰 성과를 거둔 우등생들이 TV 인터뷰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성적에 연연하기보다는 공부 자체에서 재미를 느꼈어요.” 같은 말 있지요. ‘당장의 성적에 대학 당락이 결정되는데 무슨 공부 자체에서 재미를 느낄까’ 라고 생각했어요. 일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그런데, 일찍 출근하면서 공부하고 배우고, 몰랐던 것들을 알아가는 재미를 조금이나마 느껴 보니, 당장의 인사평가는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선배들이 평상시에 “고과에 연연하면 일하기 힘들다.”라고 늘 말했는데,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너는 건강만 잘 챙기면 돼


이듬해, 회사의 정책에 따라 업무를 변경할 일이 생겼습니다. 옆 부서에서 스카웃을 받게 된 것이었죠. 조직 이동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기 위해 상무님과 면담을 했습니다. 간단한 면담을 마치면서, 상무님께서 저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잘 하고 있으니까 큰 걱정은 없다. 너는 건강만 조심하면 돼.”     


흔히 있을 수 있던 격려였는데, 왜 그렇게 기억에 남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신입사원 시절에 “넌 몇 등이나 될 것 같니? 성과가 있어야 해.” 라고 저를 격려(?)하셨던 상무님이어서 더 기억에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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