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새벽에 출근하는 이유 (3)
입사한 지 2년이 안 된 신입사원이 상사와 선배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무엇일까요? 저는 성실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교과서적인, 너무 고지식한 솔루션 같아 보이지만, 사실 그 외에 여러분이 선배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또 다른 강점이 무엇일지 찾아보면, 딱히 다른 대안이 있지도 않을 것입니다.
성실한 태도는, 주니어 사원들이 어필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임과 동시에, 가장 강력한 카드이기도 합니다. 치트키라고 할 수 있을 만능이기도 하지요.
대학원 시절, 제 동기 한 명은 후배들에게 농담 삼아서 이런 말을 자주 했습니다. "열심히 할 필요 없어. 잘 하면 돼." 실제로 그는 후배는 물론이고 동기인 제가 보아도 존경스러울 만큼 연구 실적이 좋았고, 일도 효율적으로 스마트하게 잘 했습니다. 시간의 가성비가 뛰어난 친구였어요.
그런데 그가 과연 열심히 안 하고 잘 하기만 했을까요? 제가 본 그 친구는, 누구보다 연구에 많은 시간을 투입했고. 누구보다 많은 양의 논문을 읽었고, 누구보다 오랫동안 실험실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그는 연구에 투입한 시간만큼 잘 하게 되었고, 스마트하게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지요.
성실하게 업무에 열정을 투입한 사람은, 시간의 가성비를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더 효율적으로,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만이 농담 삼아 "열심히 안 해도 돼. 잘 하면 되지 뭐."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아직 일을 잘 하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해서 걱정이신 주니어 사원 분들은, 걱정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오늘 하루를 스스로 인정할 만큼, 그리고 선배들에게 어필할 만큼 성실하게 보냈다면, 몇 년 지나지 않아 조직 내에서 의견을 존중받는, 업무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인재가 될 테니까요.
다만 새벽에 일찍 일어나 정신이 또렷할 때의 시간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그 시간을 업무에 투입해 보세요. 새벽 출근은, 스스로와 다른 사람에게 여러분의 열정과 의욕, 성실함을 입증시킬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학창 시절 제 지도교수님께서는 "신뢰 구좌"라는 개념을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선배나 상사, 지도 교수에게 인정받을 때마다 신뢰 구좌에 잔액이 쌓이는 것이지요. 충분히 신뢰가 쌓여 있으면, 그 사람은 윗사람으로부터 크게 간섭이나 터치를 받지 않게 됩니다. 눈에 띄지 않아도, "어디 가서 잘 하고 있겠지." 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반대로 신뢰 구좌가 바닥나면, 사소한 일에도 간섭을 받고, 관리를 받게 됩니다. 잘 하고 있나 못 하고 있나 늘 체크를 받게 되는 것이지요.
직장인도 보이지 않는 신뢰 구좌가 있습니다. 그리고 신뢰 구좌에 얼마나 많은 잔고가 적립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조직 내에서의 권력과 자유도를 나타냅니다. 직급이나 연차와 상관없는 영향력을 말하는 것이지요.
신뢰구좌에 잔액이 많이 쌓여 있는 주니어 사원의 말은, 중견 사원 이상의 영향력을 갖습니다. 선배와 동료들이 그의 말을 귀담아 듣는다는 것이죠. 이런 사람은 선배들이 사사건건 업무에 간섭하거나 행동을 규제하지 않습니다. 직장 내에서의 자유도가 올라가는 것이지요.
신뢰 구좌의 잔액은, 태도와 실력을 입증할 때 적립됩니다. 실력이 충분히 쌓이기 전에는, 일정 기간 동안 태도로 구좌를 적립해야 합니다. 게임 같은 것이지요. 충분한 아이템이 확보되기 전에는 일정 시간이 쌓여야 크레딧이 적립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새벽 출근은 직장 내에서 태도라는 신뢰의 잔고를 적립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새벽에 일찍 나오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 자체가, 그 시간에 출근해 있는 여러분의 성실성을 돋보이게 합니다. 그만큼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것을 어필하는 것이고, 삶에서 일이 우선순위에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일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진짜 성과가 나는 일을 해야 가치가 창출되는 것이지, 윗분들에게 드러내고 어필하기 위해서 일한다고 회사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치 있는 일도 어필하는 방법에 따라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경우도 있고 그냥 묻히거나 다른 사람의 성과로 둔갑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어차피 일하는 것이라면 제대로 인정받고 크레딧을 쌓아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더군요.
이런 측면에서 새벽 시간을 활용하는 것은, 성실성을 인정받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입니다. 회사에서는 팀장이나 임원급일수록 일찍 출근하는 경우가 많지요. 이런 분들은 대개 텅 빈 사무실을 보면서 출근하시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럴 때 자리에 앉아서 업무에 열중한다면, 대비 효과가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러분이 아직 연차가 많지 않은 주니어 사원이라면 신뢰구좌가 쌓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초년차 때는 뛰어난 실력을 어필하기 쉽지 않습니다. 실력으로 두각을 나타낼 만큼의 시간이 쌓이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만큼 업무상의 실수나 모자람도, 어느 정도는 핸디캡으로 용인될 수 있습니다. 단,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신뢰구좌가 쌓여 있다는 조건 하에서지요.
그런 의미에서 신뢰 구좌는 주니어 사원들을 키워 줄 든든한 자본임과 동시에, 주니어 사원들을 보호해 줄 든든한 방패가 되어 줍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동료들의 경험에 따르면,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는 미션을 달성한다면, 실제 투입된 시간 대비 높은 크레딧을 신뢰 구좌에 적립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찍 나오면, 성실성 뿐 아니라 일 욕심을 어필할 수 있습니다. 성장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침잠을 깨우면서 굳이 이른 새벽에 업무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을 테니 말이지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이 능숙하지 못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1~2년차 때에는 그런 핸디캡이 인정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든 일 욕심이 있다는 것을 어필한다면, 그 사람의 직장 생활은 첫 단추를 잘 끼운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적어도, 일을 사랑하고 있으며 이 직장에서 성장하고 싶다는 뜻이니까요.
아침에 일찍 나와 있다면, 그것도 연차가 어린 1~2년차가 아침에 일찍 나와 있다면, 그건 무언의 어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입사동기였던 한 석사 졸업생은, 연말 회식에서 상무님한테 이런 칭찬을 들었습니다.
“A 선임, 거의 매일같이 우리 조직에서 제일 아침부터 출근해서 내가 제일 기억에 남아. 1년차가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는 거 눈여겨 봤어.” 그는 지금 능력을 인정받아, 회사에서 박사학위 과정까지 보내줄 정도로 인정받는 인재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