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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박사 Feb 09. 2017

영원한 싸움

우리는 본능적으로 영원히 싸울 수밖에 없다. 두 가지 심리학 실험을 통해 우리의 본성을 들여다보고 왜 우리 인생에 불협화음이 발생하는지 살펴보자.


첫째로, 정말로 큰 착각은 우리가 의사를 전달하면 상대방이 오롯이 모든 내용을 이해할 것이라 생각하는 점이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잘 설명해주는 실험이 있다. 한 사람이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노래를 오로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쳐서 다른 사람에게 알려준다고 하자. 손가락을 테이블을 쳐서 리듬을 만든다는 것 외에는 절대 아무것도 하면 안 된다. 그렇게 여러 곡을 테스트하면 과연 손가락을 리듬을 듣고 상대방은 몇 곡이나 맞출까? 전달자는 50% 이상은 청자가 노래 제목을 맞힐 것이라고 했지만, 청자는 2.5%밖에 제목을 맞히지 못했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자기중심성’이라고 부른다. 굳이 심리학 실험까지 필요 없이 대한민국 노래방 남자 애창곡만 봐도 자기중심성은 확연히 드러난다. 남자들은 본인이 임재범의 고해를 부를 때 애절하게 사랑을 노래한다고 생각하지만, 여자들이 노래방에서 제일 듣기 싫은 노래 1위가 역설적으로 고해다. 이렇게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그게 옳은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정확하고 올바르게 의사를 전달했다고 생각하지만 듣는 사람이 해석한 것은 의도한 것과 다른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


 둘째로, 내가 인정하는 가치를 다른 사람도 똑같이 존중해 주기를 바라지만 그것 또한 판타지다. 시카고 대학에서 흥미로운 실험이 있었다. 한 대학교수가 수업시간에 무작위로 학생들을 뽑아서 머그잔을 나누어 주었다. 그 후에 만약에 그 컵을 경매시장에서 팔 생각이면 얼마가 적정가격인지 물어보았다. 또, 컵을 받지 못한 학생들에게 경매시장에 컵이 나오면 얼마에 살 생각이 있는지 조사하였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판매하려는 학생의 평균 가격은 5.25불이었지만 사려는 학생들은 평균 2.75불을 제시하였다. 분명히 똑같은 컵이었지만 전혀 다른 값어치를 부여했다. 판매자는 컵을 파는 상황을 손실 상황으로 인지했고, 구매자는 이득 상황으로 받아들였다. 심리학적으로 손실의 고통은 이득의 기쁨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에 상실감을 보상받기 위해 판매자는 높은 가격을 요구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소유효과’라고 한다. 심리학 실험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자신의 것에는 물질이든 정신이든 훨씬 높은 값어치를 부여한다. 그 말은 상대적으로 상대방의 인생은 내 인생에 비하여 하찮은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는 의미이다.


두 가지 심리학 실험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렇게 서로 간의 인식의 ‘차이(Gap)’ 때문에 영원히 싸울 수밖에 없다. 악의가 있어서 서로를 죽자고 괴롭히고, 서로 다른 나라말을 써서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우리가 그렇다는 것이다. 좋은 사회는 완전 평등한 사회가 아니다. 사실 물리학적으로 완전히 평등은 열적 종말을 의미하듯이 다름이 없다면 그보다 더 무미건조한 세상도 없을 것이다. 진정으로 좋은 세상을 만드는 첫걸음은 본능적인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 행복한 세상은 차이를 없음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시선 차이를 줄이기 위해 의식적으로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세상일 것이다.


출처: <졸업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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