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문제가 없는 곳은 없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의 삶이 팍팍한 이유를 “정신승리”만 극복하기에는 뭔가 힘겨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럴수록 우리는 차분하게 태생적으로 해결이 힘든 문제와 그래도 노력으로 개선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구별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국사회가 힘든 이유를 꼽으라고 하면 열손가락이 부족하겠지만, 나는 그 중에 가장 큰 이유를 주저 없이 전문가는 없고 관리자만 있는 사회구조라고 말하고 싶다.
호봉제가 사라지고 있는 추세라고 하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은 호봉제 중심의 인사 운영을 하고 있다. 그렇게 실력과 상관없이 직급의 포텐셜이 오르다 보니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업무역량이 아닌 관계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사실 전문가는 우리나라에서 회사에만 없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잘 없다. 그 현상을 가장 잘 말해주는 지표는 ‘문해율’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40~60대의 문해율은 OECD 가입국 중에서 거의 꼴지에 가깝다. 공부하지는 않는 전문가는 없다. 문맥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공부를 할 수 있겠는가?
이런 현실에 관한 문제의식은 사실 여기저기서 종종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새로운 질문을 던져보자. 그럼 관리자 그렇게 많은데 우리에게 제대로 된 관리자는 과연 있는가? 슬프지만 Yes라도 대답하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훌륭한 관리자의 핵심역량은 무엇인가? 전문자가 스페셜리스트라면 관리자는 제네럴리스트에 가깝다. 관리자는 전체를 조망할 줄 알아야 하고 또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양’과 ‘리더쉽’이 필수이다. 과연 공부하는 리더(관리자)가 얼마나 있을까?
<일 못하는 사람의 6가지 특징>이라는 게시물에서 그런 댓글을 본적이 있다. “운과 실력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헛소리다.” 정말 그럴까? 과연 저 댓글을 단 사람은 ‘평균회귀’라는 개념을 알고 있기는 한 것일까? 이 시대의 최고 사상가 중에 한 명인 나심 탈렙의 “행운의 속지마라.” “블랙스완”, “안티프레질” 같은 책들은 읽어보고 이야기 하는 것일까? 더 쉽게 이야기하면 일을 하기 전에 그 일이 속한 영역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 중에 하나가 이 영역이 기량이 압도적인 영역인지 운이 지배하는 곳인지 그 성향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면 두 명의 운동 선수가 있다고 가정하자. 한 명은 수영선수이고 다른 한 명은 야구선수이다. 어느 운동 영역이 더 운에 영향을 많이 받을까? 당연히 전자이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속한 비즈니스가 과연 복잡계에 속해서 “블랙스완”이 나오는 곳인지 아닌지를 구별해야 최적의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대박”을 양의 블랙스완이고 “쪽박”을 음의 블랙스완 정도로 보면 좋겠다. (비즈니스 영역에서 운에 관해 조금 더 알고 싶다면 <일취월장>의 1장 “운”을 참고하면 좋다. 또 1장에 마지막에 나오는 “복잡계로 비즈니스 이해하기” 칼럼도 꼭 읽어보기 바란다.)
관리자라고 해서 다들 착각하는 게 부하직원들 한 일을 취합만 하는 것을 핵심업무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안타깝지만 오해가 아니라 대부분이 그렇게 일을 하고 있다.) 일의 취합은 기본 중에 기본이고 핵심은 관리를 하는 대상에게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 관리자의 진짜 핵심업무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정보습득을 통해 자신을 업데이트하면서 동향 파악을 해야 하지만 공부하는 관리자는 없다. 총체적 난국이다.
교양의 영역이 빈곤하다면 리더쉽은 가뭄이다. <일취월장>에서 말하는 리더의 자질을 조금 살펴보자.
“첫 번째로 리더는 조직원에게 여유를 줘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리더들이 마른 오징어도 쥐어짜면 물이 나온다는 신념(?)으로 구성원에게 숨 쉴 틈을 안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게 해서 성과가 잘 나오면 관리(?)를 잘했다는 그럴싸한 포장을 한다. 단순 노동집약적 산업이 주류였던 시절에는 그런 방법이 가시적인 성과로 바로 연결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방법으로는 절대 발전할 수 없고, 심지어 지금 우리가 일궈낸 경제적 위치도 지킬 수 없다.
모든 일에는 흐름이 있다. 잘될 때가 있으면 잘 안될 때도 있는 것은 일종의 순리다. 하지만 회사는 늘 꾸준하게 일한다. 잘될 때도, 잘 안될 때도 계속 열심히 일한다. 세상은 비선형적으로 반응하지만 우리는 선형적으로 대응한다. 거기에서 발생하는 차이만큼 우리는 괴롭다. (그게 이익이면 가끔은 즐겁다. 특히 직장인보다 회사는 더 즐겁다.) 업무 간의 여유를 준다는 것은 휴식 시간을 많이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바로 시장의 반응과 업무 사이에 발생하는 간극을 최대한 줄여 주는 일을 리더가 해 줘야 한다는 뜻이다.
(중간생략)
이렇게 리더는 힘들 때는 방파제가 되어야 하고, 잘 나갈 때는 댐이 되어야 한다. 방파제와 댐은 비슷한 구조 같지만, 상황을 맥락적으로 판단하여 전혀 다른 역할을 해내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방파제와 댐이 되어서 조직원이 급작스러운 변화에 조금이라도 빨리, 그리고 덜 힘들게 적응할 수 있도록 여유를 만들어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일취월장, p458>
생태계가 망가졌는데 나 혼자 살아남을 수는 없다. 조직도 마찬가지이다. 건강한 조직문화가 없는데 리더 혼자 살아남을 방법도 없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논쟁이 아니다. 조직이 성장해야 리더도 존속 가능하다. 이런 글을 혹은 주니어 혹은 신입사원이 있다면 “맞다, 맞어! 리더가 문제야!” 이렇게 이야기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수많은 기업강연을 통해 깨달은 것은 지금의 주니어 혹은 실무자들도 딱히 공부를 하고 리더쉽을 함양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통계는 거짓말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문해율은 10대는 전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연령대가 올라가면 갈수록 한 번도 멈추지 않고 그 수준은 계속 떨어진다. (참고로 보통 선진국은 30~40대 사이가 문해력 전성기이다.) 만약에 지금의 리더가 무능해 보이고 터무니 없어 보인다면 안타깝지만 자신들의 미래를 본 것일 수도 있다. (이 글을 읽고 ‘욱’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 ‘반성’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반성’하는 분들은 <일취월장> ‘조직’편의 스페셜 칼럼인 “중년의 뇌, 가장 뛰어나다.”를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다시 맨 첨으로 돌아가자. 현상에 대한 불만으로 해결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문제에 대해 서로를 비난하는 것만큼 쉬운 일도 또 무의미한 일도 없다. 제대로 된 리더 혹은 관리자가 없는 것은 근본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그렇게 함께 의쌰의쌰 해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분들께 <일취월장> “리더의 조건” 칼럼의 마지막 부분을 소개하면 글을 마친다. 모두 파이팅!
“이쯤 읽으면 왜 우리 회사에는 이런 리더(좋은 리더)가 없을까 고개를 갸우뚱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사실 많을 것이다.) 직장 상사나 선배를 또 너무 비판만 하기도 어려운 게 이 모든 과정은 상당히 이해도와 인내심이 필요하다. 우리가 이제까지 이뤄낸 성장은 이와 전혀 다른 결을 가지고 있는 ‘빨리빨리’가 핵심 철학이었다. (‘빨리’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다.)
우리는 그 철학을 바탕으로 세계 어떤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이 전혀 없을 정도의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 그렇게 빨리 달리는 기차에 깊고 차분한 사고방식이 올라 탈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모든 면에서 우리의 성장은 점점 정체되고 있다. 우리는 충분히 많이 성장해서 더 올라갈 수 있는 영역은 사실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성장의 포화 구간에 진입하는 것 또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모든 현상에는 양면성이 있다. 빨리 성장하면 부작용이 많다. 반대로 생각하면, 느린 성장은 부작용을 줄여가면서 제대로 커 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철학과 전략을 수정해서 현재 상황에 맞는 올바른 성장을 이룩해 내어야 한다. 지금 하는 고민들이 인생 선배들이 이룩한 외적 성장에서 우리가 이뤄야 할 내적 성장으로 넘어가기 위한 하나의 노력인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은 높은 이해도와 진득한 인내심을 동시에 요구해서 절대 쉬운 길이 아니다. 하지만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면 또 보란 듯이 새로운 성장을 멋지게 이뤄낼 것이다. 우리는 할 수 있다.”
* 과연 일은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고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또 우리는 그런 일에 대해 어떤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지, 일의 본질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제대로 그리고 즐겁게 일하고 싶은 분들에게 <일취월장>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