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힘든 상황은 희망이 없을 때 이다. 힘겨운 삶에서 바라볼 희망이 없다면 그 삶 자체는 어두컴컴한 절망으로 바뀐다. 그렇다면 희망이란 무엇인가? 희망의 사전적은 뜻은 앞으로 잘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우리가 잘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시작은 바로 잘못을 인지하고 바로 잡는 것이다. 무언가 잘못되었을 때 아무리 발버둥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절망에 휩싸이고 말 것이다.
한 아이가 무참하게 폭력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하지만 가해자는 사실상 처벌을 받지 않았다. 피해자 가족은 가해자 가족에 고위공무원이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재판이 진행되지 않았다고 추정하고 있다. 사실 모든 사건은 양측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우리 모두는 편향에 쉽게 휩싸이기 때문에 한 쪽 이야기만 들으면 잘못된 판단을 내릴 확률이 급격히 높아진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아니다. 우선 피해자 아이가 폭행의 결과로 매우 위험한 수술을 진행했고 그 결과 췌장이 절단 당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법원이 집행유예와 사회봉사 처벌을 내린 것도 “사실”이다. 내가 법을 잘 모르지만 판례를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이런 사건은 이 정도의 처벌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합의를 봤어도 당연히 수술비 전액과 정신적 피해 보상금이 지급되어야 했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당장 피해자 가족은 너무 큰 수술비로 아이의 정서적 고통을 감당하기도 전에 생계를 위협받게 되었다.
나는 한 아이의 아빠이다. 지금 이 문장을 치면서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만약에 저렇게 피해를 입은 아이가 내 아이였다면 나는 어땠을까? 지금 생각만해도 가슴이 먹먹해져서 심호흡을 했다. 이건 단순히 피해자 가족만의 문제이다. 이 사회가 앓고 있는 고질적인 질병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모든 문제는 양측의 입장을 들어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은 더 공론화되어야 한다. 가해자 부모와 친척이 고위공무원인 것도 팩트이다. 그 사람들이 가해자가 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 외압이나 청탁을 행사했는지는 알 수 없다. 떳떳하다면 재조사와 재수사에 겁먹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어떤 부정이 개입되었다면 가해자 학생의 처벌은 물론 청탁을 한 부모와 청탁을 받은 수사, 재판 관계자는 모두가 더 엄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 모든 문제는 자신의 직업을 자신의 권력으로 착각하고 오용하는 최악의 문화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선진국의 척도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권력에 방점을 찍는지 아니면 책임감에 무게를 더 두는가에 따라 그 수준이 결정될 것이다.
이미 피해자 아이와 가족이 받은 고통을 되돌릴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들을 단순히 위로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멈추면 안 된다. 조금이라도 행동할 수 있다면 그 작은 행동이 뭉쳐서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움직여야 한다. 이것은 피해자 가족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언제가 또 다시 이런 상황에 빠질 누군가를 위해 희망의 씨앗을 미리 뿌려놓는 일이다. 잘못된 상황도 건강한 사회에서도 바로 잡힐 수 있다는 희망의 씨앗 말이다. 그래서 이 글을 읽은 모든 분들은 국민청원에 참여하여 청원에 적힌 말 그대로 이 가족의 억울함을 우리가 함께 풀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