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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박사 May 10. 2020

무지, 탐욕 그리고 깨달음

복잡한 세상에서 우리가 생존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 경계를 긋는 것이다. 그 경계가 절대적 진리는 될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안에서 내 생각은 조금 더 편안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문득 나는 무지, 탐욕 그리고 깨달음이라는 영역을 머릿속에서 만들었고, 그 생각이 좋던 나쁘던 휘발 되기 전에 글로 남긴다. 결국 뒤에서 말하겠지만 이 글을 쓰는 행위도 꺠달음의 영역으로 들어가기 위한 몸부림이다. 


무지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지만 그 근본은 순수함이라고 생각한다. 7살 우리 딸에게 할머니가 돈을 주시면 언제나 딸은 나에게 돈을 준다. 지금 모든 사람의 고민은 직간접적으로 돈과 상관있지만 우리 딸의 고민은 자기가 얼마나 마음대로 자유롭게 놀수 있는지에 문제이기 때문에 돈은 그녀에게 무지의 영역이다. 그래서 욕심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관계에서 가장 무서운 것 중에 하나가 무지이다. 알지 못하면 관심이 생기기 않는다. 무관심은 무존재나 다름없다. 지금 지구 어딘가에서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매순간 죽고 있다. 내가 방금 뻘글을 한 줄 쓰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죽었다. 하지만 우리는 슬프지 않다. 그들에 대해 무지하고 그래서 그들은 우리 인생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슬픔이라는 신호는 생성될 수 없다. 


그러다가 무지에서 "Not 무지"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완전히 바뀐다. 우리는 항상 상황을 해석한다. 무의식적 그리고 의식적으로 무조건 상황을 해석한다. 운이 좋으면 이해하지만 대부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해 오해하거나 실패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제일 무서운 것은 어설프게 알기 시작하면서 탐욕이 생긴다. 그렇다면 탐욕은 무엇인가? 내 능력 범위 밖에 결과를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다. 우선 우리는 자신을 잘 안다는 오해부터 시작을 한다. 내 능력을 과대 평가하기 때문에 모두가 욕심이 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이해는 답이 없을 정도이다. 우선 세상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에 하나는 상대평가인데 나만 힘든 것 같고 또 내가 제일 힘든 것 같은 착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더 보상받았으면 좋겠고 인정받기를 갈망한다. 이렇기 때문에 인생은 고통으로 가득하다. 


결국 우리가 평온을 얻으려면 깨달아야 한다. 나 자신에 대한 이해, 세상에 대한 이해 그리고 관계에 대한 이해. 일단 우리는 세상에 대한 디폴트 값을 매우 상식적인 기준으로 설정한다. 너무 당연한 이 설정값이 사실 번뇌의 원천이다. 내가 부족한 것을 온전히 채우기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세상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너무 추상적으로 들리니 간단한 예를 들으면 우리는 쓰레기를 아무대나 버리면 안된다고 배우고, 이웃을 사랑하고, 법은 지켜야 한다 등등 여러가지 당연한 사실들을 배우고 모두가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던가? 당연히 그런 경우도 많지만 아닌 경우가 생각보다 많은 것이 문제이다. 하지만 우리의 인식 기본 설정 값은 세상은 당연하게 잘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깨달음은 영역은 조금 더 복잡한 것 같다. 자주하는 이야기이고 다행이도 나는 깨닫고 실천 중인 부분이 있다. 바로 인생은 현재 절대값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울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오래 전에 마스터했다. 그것은 대부분이 바라는 영역일 것이다. 나도 학생 때 빨리 그런 영역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부지런히 노력했고 생각보다 빠르게 들어갔다. 그러면 행복이 영원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양의 기울기를 유지하는 것이다. 아쉽게도 이 기울기는 생각이던 실천이던 멈추면 우선 0으로 수렴한다. 죽을 때 까지 페달을 밟아야 하는 이유가 인생은 절대값의 문제가 아닌 기울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왜 지구가 멸망해도 왜 사과나무를 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많은 사람들은 일을 열심히 하고 은퇴하면 뭔가 안락함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 행복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도 무엇이라도 한다.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기울기가 값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내가 돈을 버는 이유는 내 생각과 실천에 대한 결과값을 증명하고 정량화하기 위함이다. 돈은 단순히 나만의 노력이 아닌 관계에서 나오는 노력과 그리고 운까지 다 포함이 되어 있어서 종합예술의 점수라고 생각한다. 소비에서 오는 즐거움의 한계는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소비를 통해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다면 그것은 한계까 명확한 것이 아니라 내 기준에서는 기울기값이 마이너스인 상태이다. 


이런 글을 읽으면 누군가는 내가 돈벌이에서는 고통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착각이다. 매일 힘들다. 특히 나는 자영업을 하는 중소기업 사장이기 때문에 구조상 일용직이다. 회사가 매일 매출을 내지 않으면 정말 매일이 괴롭다. 회사를 시작하고 하루도 마음이 편한 날이 없다. 하지만 그 말이 불행하다는 뜻은 아니다. 신경안정제를 몇 년 동안 먹었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뭐 하나 잘못되면 며칠동안 그 결과가 악령처럼 쫓아 다니지만 그래도 뭔가를 주체적으로 끊임없이 몰입해서 할수 있다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이다. 개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실제로 그렇다. 


사실 내 글은 대부분에게 도움이 안된다. 당장 다들 필요한 글은 탐욕을 채워주는 글이다. 당장 돈 많이 벌게 해주겠다 혹은 다 괜찮을 것이다 이런 식의 글일 것이다. 안탑까지만 나는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은 알지만 너무 뻔해서 말하면 그거 누가 모르냐고 반문을 들을 것이다. 그리고 빨리 버는 방법은 모른다. 빨리 벌면 좋은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오늘도 뉴런이 번쩍이면서 나에게 신호를 주길래 그냥 그것을 타이핑을 해봤다. 그냥 이 글을 읽고 한 두명이라도 당장 자신이 내일부터 쟁취할 수 있는 행복을 얻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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