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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박사 May 29. 2020

Neo 죽음의 심리학

예전부터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타인은 언제 죽는 것인가? 진지하게 5분만 생각을 해보자. 우리는 학교나 직장만으로도 수많은 사람을 직간접적으로 알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그 사람들은 모두 살아있을까? 확인하지 않았다면 “모른다.”가 올바른 답이다.


다음은 나에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외사촌 형이 있었다. 어느 날 엄마한테 “엄마, 창모(가명)형은 뭐하고 지내?” 라고 물었다. 엄마가 대답을 잠깐 망설이시더니 형이 죽었다고 대답했다. 그것도 몇 년 전에. 그렇게 자주 보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형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에 슬픔보다는 훨씬 복잡한 감정이 몰려왔다. 당연히 나는 형이 살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물어봤는데 이미 형은 세상에 없었다. 어느 영화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순간 정말 죽는 것이다.’라는 대사처럼 형은 그렇게 내 관점에서 질문을 하는 순간 세상을 떠났다.  


그러면 잊혀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사실 이제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디지털과 온라인이 보편화된 세상에서는 새로운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내가 생각해보지도 못한 영역의 뇌세포를 일깨워준 책이 있다. 바로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라는 책이다. 이 책은 정말로 놀라운 개념들을 말한다. 당장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지만 조만간 엄청난 문제와 이슈가 될 이야기들이다.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앞으로 당연해질 상황은 어떤 SNS가 되었던 특정 시점이 되면 산 사람의 계정보다 죽은 사람의 계정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아래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에 나온 부분을 인용하면 21세기 마지막이 되면 페이스북에는 약 37억 개의 죽은 사람의 계정이 생길 것이라고 추정된다. 지금 대세인 유튜브도 어느 순간부터는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의 영상들이 더 많을 것이다. 만약에 그 사람이 죽은 줄 모른 상태에서 영상을 보고 진짜 팬이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죽은 사람이라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런 문제는 앞으로 점점 많아질 것이다.

예전에는 사람이 죽으면 특정 장소에서 추모를 했지만 이제는 온라인에서 추모를 더 많이 한다. 아래는 안타깝게 꽃다운 나이에 운명을 달리한 설리양의 인스타 계정 마지막 게시물의 댓글창인데 아직도 분단위로 사람들이 댓글을 남기고 있다.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인스타 계정에 들어갔을 때 기분은 너무 이상했다. 너무 슬프게 세상을 떠난 유명인들의 계정은 거의 다 비슷한 상황이다. 하지만 사진과 영상이 너무 생생해서 이 분들이 마치 어딘가 살아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죽은 사람과의 관계 핵심인물은 당연히 가족이겠지만 디지털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만약에 당신이 페이스북 친구가 아닌 상태에서 페이스북이 추모 계정으로 전환되면 당신은 더 이상 페이스북에서 죽은 사람의 게시물을 볼 수 없다. 심지어 당신이 가족이라고 해도 그 어떤 디지털 유산에 대해서 권리 주장도 불가능하다. 관련 상황에 대한 이슈들은 전세계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했고 관련 법이 없어서 모두가 난처한 상황을 겪고 있다.

아래는 정말 디지털 시대이기 때문에 발생한 충격적인 이야기이다.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죽은 딸의 계정에 접속하던 엄마는 딸의 남자 친구가 새로운 여자 친구를 만나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감정이입이 너무 심하게 된 나머지 딸의 남자 친구에게 아쉬움이 담긴 메시지를 남긴다. 그런데 그 계정은 엄마의 계정이 아니다. 죽은 딸의 것이고, 죽었다고 생각한 전 여자친구가 말을 걸어왔다. 이 사건은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문제이다.

이제는 새로운(neo) 죽음의 심리학에 대해서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죽은 다음에 남은 디지털 유산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은 부모님은 보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만약에 부모님이 그것을 본다면 어떻게 될까? 자식을 잃은 부모님은 어떻게든 자식의 흔적을 더 많이 찾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디지털 유산은 온전히 자녀만의 것인가? 채팅 창이나 이메일에는 다른 사람과의 얘기가 가득한데 그것을 부모님이 볼 권리가 있는 것일까? 내가 부모 입장이라면 당연히 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메일을 누군가의 부모님이 본다면 나는 또 싫다. 이렇게 모순이 가득한 곳이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이다.

이 글의 제목처럼 디지털 시대의 죽음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심리상태를 만들고 있다. 죽음에 대한 느낌도 다르고 추모하는 방식도 다르다. 또, 죽음에 대한 심리가 예전과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인 유산과 디지털 유산은 처리하는 방식도 전혀 달라야 한다. <디지털 시대의 사후 세계>는 내가 진짜 살면서 생각해보지 못한 영역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해주었다. 우리가 태어났다면 이제 인생에서 남은 가장 임팩트가 큰 사건은 아마 가장 두렵고 무서운 “죽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 뒤를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으면서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럴수록 더 진지하게 들여다보면서 고민해봐야 한다. 그래야 내 죽음부터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까지 가장 인생에서 중요한 일을 조금 더 제대로 포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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