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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박사 Sep 04. 2020

누군가의 인생이 위험하다

평가는 엄청난 비즈니스이다. 기업 입장에서 업무에 적합한 인재를 뽑을 수 있다면 그들은 언제나 엄청난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 개인은 자기 자신에 더 자세히 알고 더 나아가 배우자나 가족에 대해서 더 깊게 알수 있다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비용 혹은 시간을 평가에 지불할 것이다. 그런 우리의 욕구를 파고든 평가가 바로 MBTI이다. 유튜브나 네이버에 MBTI이라고 검색하면 관련 영상 및 포스팅이 정말로 쏟아지듯 나온다. 댓글을 보면 "맞아! 맞아! 내 얘기야!"라고 맞장구를 치는 사람이 정말 많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 MBTI 검사를 기반으로 여러가지 솔루션을 제시하는 "전문가들"도 많은 것 같다. 그렇다면 MBTI는 얼마나 검증된 평가인가? 나는 원래 MBTI 검사에 관심이 전혀 없었는데 이번에 <성격을 팝니다>를 출간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MBTI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리고 놀랍게도 그 배경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맹신하는 사람도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MBTI는 캐서린 브릭스와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 두 모녀에 의해서 탄생하였다. <성격을 팝니다>는 정말 깊게 그 탄생 배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애덤 그램트 교수는 아래와 같이 책에 대해서 극찬했고, 네이쳐와 월스트리트 저널도 저자인 메르베 엠레 박사의 노력과 통찰에 대해서 찬사를 보냈다. 실제로 2018년에 뉴욕타임즈와 이코노미스트는 이 책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였다. (서구권에서 MBTI 비즈니스는 더욱 활발하기 때문에 책이 주는 임팩트는 훨씬 더 클 것 같다.)

캐서린과 이사벨은 아마추어 심리학자이다. 개인적으로 아마추어라고 훌륭한 결과를 내지 못하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사실 냉정하게 <성격을 팝니다>를 읽어보면 만약에 캐서린과 이사벨이 정말 돈을 벌려는 목적이 아닌 사람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성격 검사를 만들겠다는 내적동기로 연구를 했으면 지금의 MBTI보다 훨씬 좋은 성격 검사가 탄생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연구를 끝가지 더 오래 진행했던 딸 이사벨은 돈에는 욕심이 없었다. 다만 공교롭게 교육평가원(이익 집단)을 만나고 CPP 출판사를 만나면서 MBTI는 그들의 원래 목적과 다르게 거대한 이권 사업으로 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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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MBTI 테스를 해보니 ENTP 형이라고 나왔다. (다시 해보니 ENTJ로 바뀌었다.) MBTI는 내향형(I)/외향형(E)이런식으로 4가지 카테고리를 조합해 16가지의 성격분류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성격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사실 무리가 있다. 나는 누가봐도 외향적인 사람이지만 사람이 만나고 싶지 않을 때도 많고,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은 순간도 너무 많다. 대부분의 사람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외향성과 내향성을 다 가지고 있다. 실제로 MBTI이 창시자인 이사벨도 많이 검사를 하면 반대되는 성격의 분포는 쌍봉우리로 나타나야 한다고 말했지만 실제 결과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실제 표본을 분석해보면 대부분은 중간 부근에 몰려있었다. 그리고 앞에서 나도 경험한 것이지만 MBTI검사를 몇 달 있다가 다시 실시하면 50% 이상의 사람은 결과가 조금씩 바뀌는 것으로 나온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MBTI의 치명적인 매력은 나와 타자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결과를 바탕으로 많은 부분을 합리화할 수 있다. 실제로 이사벨이 교육평가원에서 통계, 심리학 전문가에게 전혀 인정 받지 못하고 새롭게 메리와 활동을 시작할 때 처음으로 MBTI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분야는 결혼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가? 위의 통계 조사에 따르면 평가를 받은 많은 사람들은 명확하게 E혹은I가 아니라 대부분이 중간에 몰려있다고 나온다. 그런 상황에서 아주 미세하게 외향형으로 점수가 나와서 E로 구분되고 반대의 경우도 I로 구분되어서 "둘은 잘 어울릴 수 없는 커플이다."라고 결론이 나오면 이게 얼마나 터무니 없는 일인가?


MBTI는 정말 여러분야에서 쓰이고 있다. 학생들은 MBTI 검사 결과를 근간으로 직업 선정에 대한 상담을 받고 몇몇 기업은 (미국에서는 정말 많은) 평가를 기반으로 직원들을 업무에 배치하기도 한다. 그리고 MBTI를 기반으로 연애 및 결혼 상담을 해주는 곳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을 이야기 하면 MBTI 자체도 검증이 제대도 안되었는데 우리가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받는 MBTI 평가는 "유사" 평가라는 것이다. MBTI는 저작권이 있기 때문에 제대로 받으려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 <성격을 팝니다>를 읽어보면 엠레 박사가 책을 집필할 때 관련 기관 및 MBTI이 추종자들에게서 얼마나 많은 신변의 위협을 느꼈는지 알 수 있다. 실제로 외국 평가를 보면 책에 대한 "악플" 많은 것을 볼 수 있는데 대부분이 업계 관계자들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책 쓴다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도 아닌데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올바른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목숨(?)걸고 책을 쓴 엠레 박사가 존경스럽다. 그리고 또 그런 책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는 뉴욕타임즈와 이코노미스트도 멋있다고 생각한다.


책 관련해서 소개영상을 유튜브에 올렸을 때 역시나 MBTI를 맹신하는 사람들은 내용을 제대로 이해 못하거나 혹은 진실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매우 안타까웠다. <성격을 팝니다>를 많은 사람들이 읽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더 나아가 MBTI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합리적 비판을 던지고 토론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좋겠다. MBTI가 계속 체계적으로 연구가 되어서 통계적 근거를 확실히 쌓이면 나는 언제나 이것에 대한 시선과 생각을 바꿀 의향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이런 수준 높은 책을 읽을 수 있게 집필해준 엠레 박사와 그 판권은 매의 눈으로 발견한 고작가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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