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완벽하기 힘들어도 완벽에 가까워질 수는 있다. 완벽으로 다가가기 위한필수 조건은 반성적 사고이다. 반성이 말은 쉽지만 사실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특히 ‘지식의 저주’에 빠지면 사실상 반성은 불가능하다. 나는 공학박사이다. 흔히 말하는 ‘가방끈’이 가장 긴 경우이다. 나 스스로도 웬만한 건 어느 정도 다 잘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지식의 저주’에 빠졌었고 그 저주 때문에 내 딸을 불행에 빠뜨릴 뻔 한 이야기를 조금 해보고자 한다.
2.
여느 부모가 그렇듯 나도 내 아이가 똑똑하게 크기를 바랐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육아에 관련한 책들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그러고 빠져든 것이 독서영재의 대표주자‘푸름이’에 관련 된 책들이었다. 사실 푸름이 부모가 쓴 책은 본인들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라기보다는 그 핵심에는 ‘칼비테’의 교육법이 깔려있다. 그래서더 파고 들어서 칼비테 교육에 관련한 책들도 다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론은 내렸다.
아이에게 책을 읽히자! 그러면 천재가 된다!
3.
그게 얼마나 정신 나간 발상이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무서울 정도이다. 당연히 질량보존의 법칙처럼 지식량 보전의 법칙이 있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많은 정보를 흡수하면 아이는 자연스레 똑똑해질 확률이 높다. 그런데 그 방법이 중요하다. 아이들은 읽은 것보다 듣는 것에 익숙하다. 사실 아이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를 보면 우리가 읽기를 시작한지는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았다. <비열한 유전자>에 나오는 것처럼 살을 빼려고 해도 잘안 빠지는 이유는 당연한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안정적으로 먹고 산지는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채집과 사냥을 못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지방을 축적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의 의지는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본능에 지게 마련이다. 문자도 그렇다. 우리가문자를 개발하고 쓴지는 인류의 전체 역사를 놓고 보면 얼마 되지 않았다. (띄어 쓰기를 적용한지는 더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읽기보다 사실 듣기가 더 편하다.
4.
그래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묵독이 아니라 낭독을 하면서 눈이 아니라 귀로 정보를 습득해야 한다. 그러면 꼭 이런 사람들이 나온다. 우리 아이는 4살에 한글 마스터해서 지금 책 잘 읽고 공부도 잘한다고. 그러면이렇게 대답을 해주면 된다. 우선 늘 정규분포에서 벗어나는 아이들이 있다. 댁에 아이는 예외적인 경우일 수도 있다. 혹은 만약에 낭독을 통해더 적절한 시기에 제대로 공부했으면 반에서 더 공부를 잘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전교 1등을 할 아이를 부모의 잘못된 학습지도로 반에서 조금 잘하는 정도로 방해를 한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한다.)
5.
만약에 내가 잘못된 정보 때문에 우리 딸 아이에게 독서를 강요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푸름이 처럼 영재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자폐아가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후자가 될 확률이 더 컸다.<낭독혁명>의 한 구절을 인용해보면 “KBS 다큐멘터리 「읽기 혁명」에는 인터넷에서 독서영재로 유명했던 아이가 나온다. 만 2세에 한글을 읽기 시작했고, 하루에 16시간씩 책을 읽으며 엄청난 속독을 한다. 독서영재동호회에는 이런 아이들이 꽤 되었다. 하지만 전문가가 영유아 발달검사를 해보았더니, 지능이 오히려 또래보다 낮게 나왔고 사회성 지수는 마이너스로 나타났으며 엄마와의 애착관계도 불안정했다. 더 심각한 사실은 이대로 자폐증상을 보였다는 것이다.” 무작정 열심히 한다고 좋은 게 아니다. 잘못된 방법으로 열심히 하면 가만히 있는 것 보다 못한 경우도 많다. .
6.
난 우리 딸에게 한글을 억지로 일찍 가르칠 생각이 전혀 없다. 내가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칠 기준은 아마도 아이가 한글에 관심을 나타내는 순간이 될 것이다. 그 때 가르쳤는데 만약 싫어하면 중단할 것이다. 그리고 그냥 책을 나와 아이 엄마가 낭독으로 읽어 줄 것이다. 사실 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그 뿐이다. 그냥 책을 읽어 주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의 말하기 능력은 또래 보다 월등히 높다. 책에서 들은 내용을 인용하거나 변형하여 말해서 주변을 놀라게 하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7.
여기까지 글을 읽으면 다들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나도 책을 많이 읽어줘야겠다.” 하지만 장담하는데 대부분은 실패할 것이다. 그 이유는 본인들이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 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고역이다. 그래서 본인이 먼저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책이 싫다면 만화책이라도 읽어라. 아이에게 우선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
8.
그리고 왜 읽어주는 지 알아야 한다. 그 이유를 알고 읽어주는 것과 그냥 읽어주는 것의 차이는 크다. 독서의 중요성 그리고 낭독의 중요성을 조금이나마 사화과적인 근거로 알고 있으면 내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때 그 마음가짐이라는 게 달라지게 된다. “그냥 좋다”와 “정말 좋다”의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9.
많은 양육서가 있지만 독서를 아무리 싫어해도 <낭독혁명>한 권 정도는 읽어봤으면 좋겠다. 그렇게 양이 많지도 않고 독서와 낭독의 중요성 그리고 독서가 어떻게 학습으로 연결되는지 잘 설명했다. 항상 모든지 초기에 잘하는 것이 나중에 힘이 덜 든다. 당연히 양육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니 감으로 육아를 하지 말고 많은 분들이 공부해서 체계적인 육아를 하기를 바란다.
10.
지금도 딸을 보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 칼비테의 저주에 빠져서 우리 아이를 독서로 고문하면서 아이를 위하는 일이라고 착각했다면…… 생각만해도 무섭다. 앞으로 이런 고비는 계속 찾아올 것이다. 그런 고비를 슬기롭게 넘어가기 위해 반성적 사고를 꾸준히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