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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라이트리 Oct 05. 2024

일본의 딥테크 육성사

딥테크네이션: 글로벌 첨단기술 발전사 (8편)

일본의 딥테크 스타트업 생태계는 오랜 과학기술 전통과 강력한 R&D 역량을 바탕으로 형성되었으며,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독자적인 기술적 발전 과정을 거쳤습니다. 일본은 반도체, 전자기기, 자동차, 로봇공학, 그리고 정밀 제조업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국가로, 오랫동안 대기업 주도의 기술 개발이 산업 전반을 지배해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일본은 대기업 의존적인 기술 생태계에서 벗어나, 혁신적인 딥테크 스타트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독립적인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으며, AI, 로봇공학, 바이오테크, 양자컴퓨팅, 반도체 설계, 그리고 신재생 에너지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딥테크 스타트업 역사와 발전 과정은 기술 강국으로서의 전통과 새로운 기술 혁신 모델이 결합된 결과물로 볼 수 있습니다.


1960-1980년대: 기술 산업의 황금기와 대기업 주도의 R&D


일본의 딥테크 산업 발전의 초기 역사는 전통적인 대기업 중심의 기술 개발 모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60-1980년대는 일본 기술 산업의 황금기로, 전자기기, 자동차, 정밀 기계, 그리고 반도체 분야에서 일본이 세계적인 기술 강국으로 자리매김한 시기였습니다. 특히 1970년대에 일본은 반도체 기술 개발과 제조 능력에서 미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세계적인 반도체 제조 강국으로 떠올랐습니다. 당시 히타치(Hitachi), NEC, 도시바(Toshiba), 그리고 후지쯔(Fujitsu) 같은 대기업들은 막대한 R&D 투자를 통해 반도체 설계와 제조 기술을 발전시켰으며, 이는 일본이 1980년대 초반 세계 반도체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일본은 전자기기와 소비자용 전자 제품에서도 독보적인 기술력을 확보했습니다. 소니(Sony)는 1979년에 세계 최초의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인 워크맨(Walkman)을 출시하여 글로벌 전자기기 시장을 주도했고, 샤프(Sharp)는 1980년대 중반부터 액정표시장치(LCD) 기술 개발을 선도하여, 디스플레이 산업의 혁신을 이끌었습니다. 또한, 1982년에 닛산(Nissan)이 도입한 산업용 로봇은 이후 일본의 산업 자동화와 로봇공학 발전의 기초가 되었으며, 일본을 세계적인 로봇 공학 선도국으로 자리 잡게 만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일본 기술 생태계는 대부분 대기업 주도로 이루어졌으며, 창의적이고 독립적인 기술 창업 생태계는 거의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일본의 기술 혁신은 대부분 대학과 대기업 간의 협력 프로젝트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기초 연구 성과의 상업화는 주로 대기업 연구소의 내부 기술 개발로 제한되었습니다. 독립적인 스타트업 창업 문화가 부족했기 때문에, 일본의 기술 혁신은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기술 환경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습니다.


1990년대: 버블 경제의 붕괴와 기술 혁신 모델의 변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은 경제적으로 심각한 침체에 빠졌습니다. 이 시기는 ‘잃어버린 10년(Lost Decade)’으로 불리며, 1980년대 후반의 자산 가격 버블이 붕괴하면서 일본 경제 전반이 장기적인 정체 상태에 빠진 시기였습니다. 이로 인해 기술 산업에서도 대기업들의 연구개발 투자가 급격히 축소되었고, 많은 기업들이 구조조정과 사업 축소를 단행했습니다. 전통적인 대기업 중심의 기술 개발 모델이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일본은 새로운 기술 혁신 모델을 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 일본 정부와 학계는 기술 혁신을 위한 새로운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대학 연구 성과의 상업화와 연구소 창업을 장려하기 시작했습니다. 1998년에 일본은 '기술 이전 촉진법(TLO Law, Technology Licensing Organization Law)'을 제정하여, 대학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한 기술 이전과 창업을 촉진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이 법의 도입은 일본의 대학과 연구기관이 보유한 기초 과학 연구 성과가 상업화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일본 정부는 NEDO(New Energy and Industrial Technology Development Organization)와 같은 연구 개발 지원 기관을 통해 첨단 기술 프로젝트와 딥테크 창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였고, 이를 통해 점차적으로 기술 창업 생태계가 구축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독립적인 스타트업들이 성장하기에는 자본 조달의 어려움과 대기업 의존적인 산업 구조의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딥테크 분야에서의 성장은 제한적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초기 딥테크 스타트업 생태계의 형성과 스핀오프 창업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의 딥테크 스타트업 생태계는 점진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주요 대학들(예: 도쿄대학교, 교토대학교, 오사카대학교)과 연구소(예: RIKEN, NEDO, AIST)들은 자체적인 기술 이전 센터와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구축하여 연구 성과의 상업화를 촉진하고, 대학 연구실과 연구소에서 스핀오프된 딥테크 스타트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2003년에 설립된 사이텍(SciTech Inc.)은 대표적인 대학 연구소 스핀오프 기업으로, 도쿄대학교의 바이오테크 연구를 기반으로 하여 세포 재생 및 유전자 치료 기술을 상업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2005년에 설립된 GenomIdea는 교토대학교의 유전자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맞춤형 유전자 분석과 바이오마커 개발에 집중하여, 바이오테크 분야에서 일본의 기술적 경쟁력을 강화했습니다.


한편, 일본 정부는 '산업 혁신법(Business Innovation Law)'을 제정하여, 기술 창업과 벤처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를 도입했고, 이로 인해 2000년대 중반부터 딥테크 분야의 창업이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 일본의 딥테크 스타트업들은 주로 바이오테크, 재생의료, 신소재, 그리고 로봇공학 분야에서 활발하게 창업되었으며, 대기업과의 협력 모델을 통해 성장을 도모했습니다.


2010년대: AI, 로보틱스, 그리고 자율주행 기술의 부상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의 딥테크 스타트업 생태계는 본격적인 성장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로봇공학에서 세계적인 선두주자였으며, 2010년대 중반부터 AI와 자율주행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새로운 기술 혁신의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프리퍼드 네트웍스(Preferred Networks)와 같은 AI 스타트업의 등장은 일본의 AI 기술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프리퍼드 네트웍스는 2014년에 설립되어, 딥러닝(Deep Learning) 기반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개발하여 제조업, 자율주행, 그리고 의료 분야에 혁신적인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기업은 2017년, 도요타와 협력하여 자율주행 차량에 AI를 도입하는 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일본의 AI 연구가 실질적인 상용화 단계에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일본의 대표적인 로봇공학 스타트업 ZMP는 자율주행 로봇과 드론 기술을 개발하여 물류와 배송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으며, 일본의 스마트 시티와 스마트 물류 혁신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바이오테크 분야에서도 일본은 혁신적인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사이토닉스(Cytonics)와 같은 바이오테크 스타트업들은 신경질환 치료와 재생의료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교토대학교와 오사카대학교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한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은 일본 바이오테크의 경쟁력을 높였습니다.


2020년대: 글로벌 진출과 딥테크 생태계의 성숙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의 딥테크 스타트업 생태계는 성숙기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Society 5.0'이라는 국가 전략을 발표하며, 인공지능, IoT, 자율주행, 로봇, 그리고 스마트 시티 기술을 통해 사회 전반의 디지털 전환을 이루고, 지속 가능한 기술 혁신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적 변화는 일본의 딥테크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기술 기반의 사회적 문제 해결을 추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일본의 양자컴퓨팅 스타트업 QunaSys는 양자 알고리즘 개발을 통해 화학 시뮬레이션과 재료 과학에서 혁신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글로벌 양자컴퓨팅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스마트 모빌리티 분야의 리더인 WHILL은 개인용 전기 이동수단을 개발하여, 자율주행 휠체어와 같은 혁신적인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딥테크 스타트업 생태계는 전통적인 기술 강국의 유산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기술적 혁신을 지속하고 있으며, AI, 로보틱스, 바이오테크, 그리고 지속 가능한 기술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일본은 기술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기술 솔루션을 개발하고, 글로벌 기술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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