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드라이트리 Nov 30. 2024

일본 부동산 버블과 잃어버린 30년

거품의 역사: 인류의 투기 열풍(5화)

1980년대 후반 일본의 부동산과 주식 버블은 한 국가의 경제 기적이 어떻게 장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도쿄 황궁 부지의 가치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전체의 부동산 가치와 맞먹었다는 일화는 당시 버블의 규모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본 버블의 시작은 1985년 플라자합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G5 국가들의 합의로 달러 가치를 낮추기로 했고, 그 결과 엔화 가치가 급격히 상승했다. 1달러당 240엔이던 환율은 2년 만에 120엔까지 올랐다. 수출 경쟁력 악화를 우려한 일본은행은 대대적인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2.5%이던 기준금리는 1987년 말 2.0%로 낮아졌다.


이 초저금리 정책이 부동산 투기의 도화선이 되었다. 기업들은 저금리로 대출받은 자금으로 부동산에 투자했다. 은행들은 부동산을 담보로 더 많은 대출을 실행했고, 부동산 가격 상승은 더 큰 대출을 가능하게 했다. 1985년부터 1991년까지 일본의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약 3배 상승했다.


주식시장도 광풍이 불었다. 닛케이225 지수는 1985년 13,000에서 1989년 말 38,957까지 치솟았다. 일본 기업들의 시가총액이 전 세계 시가총액의 42%를 차지했고, 세계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 중 8개가 일본 기업이었다.


기업들의 투자행태도 점점 투기적으로 변했다. '자이테크'(재테크)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이는 본업보다 금융투자로 수익을 내는 경영방식을 의미했다. 미쓰비시 부동산이 록펠러 센터를 매입하는 등 해외 부동산 매입도 활발했다.


1989년 말, 일본은행은 뒤늦게 버블 억제에 나섰다. 기준금리를 6%까지 올렸고, 부동산 관련 대출도 규제했다. 1990년부터 자산가격은 하락하기 시작했다. 닛케이지수는 1990년 초 최고점에서 2003년까지 80% 가까이 폭락했다. 부동산 가격은 더 오랫동안 하락했다.


버블 붕괴 후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는 장기 침체에 빠졌다. 기업들은 막대한 부채를 떠안게 되었고, 은행들은 부실채권 처리에 발이 묶였다. 디플레이션이 시작되었고, 이는 실물경제 침체와 자산가격 하락의 악순환을 만들었다.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의 대응은 너무 늦었고 소극적이었다. 부실채권 처리를 미루면서 '좀비기업'들이 양산되었다.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지 못했고, 구조개혁도 지지부진했다. 1990년대 말이 되어서야 금융구조조정이 본격화되었다.


일본 버블의 교훈은 현재진행형이다. 첫째, 통화정책의 부작용을 경계해야 한다. 둘째, 자산가격 버블에 대한 조기 대응이 중요하다. 셋째, 버블 붕괴 후의 구조조정은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특히 현재 중국의 부동산 버블이나 글로벌 저금리 환경에서 이러한 교훈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2023년 현재, 일본은 여전히 제로금리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버블 시기의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한때 세계 2위 경제대국이었던 일본의 몰락은, 자산 버블이 한 국가의 경제를 얼마나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역사적 교훈이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