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AI 칩과 플랫폼의 새 질서: 15% 모델

정책·공급망·플랫폼이 다시 쓰는 AI 비즈니스 수익공식

by 드라이트리

미·중 기술 갈등의 긴장 속에서 AI 칩과 플랫폼 규제의 지형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습니다. 최근 이슈들을 축으로 보면, 첫째 미국 정부와 반도체 기업 간 ‘중국 판매 수익 공유’라는 전례 없는 모델의 출현, 둘째 중국 당국의 엔비디아 H20 회피 권고와 같은 수요측 규제의 강화, 셋째 텐센트의 AI 투자 확대와 코어위브(CoreWeave)의 인프라 전략, 넷째 머스크와 애플의 앱스토어 정책 갈등으로 대표되는 플랫폼 규칙 전쟁이 맞물려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AI가 어디에서, 어떻게 돈을 버는가’라는 질문에 정책·공급망·플랫폼이라는 세 개의 축을 통해 답하고 있는 과정입니다.


먼저 미국 측 공급 규칙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성능을 낮춘 일부 칩에 한해 중국 판매를 허용하는 대신 매출의 15%를 정부가 가져가는 ‘수익 공유(revenue-sharing)’ 조건을 부과했습니다. 이는 전통적 수출통제를 재정수단 겸 산업정책의 지렛대로 전환한 조치로,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중국 매출 회복 통로가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안보·무역정책의 경계를 흐릴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일부에서는 사실상의 수출세라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요 측면에서는 반작용이 나타났습니다. 중국 당국은 정부·안보 관련 프로젝트에서 엔비디아 H20 칩 사용을 피하라는 취지의 지침을 업계에 전달했습니다. 공식적 전면 금지는 아니라는 보도도 있으나, 최소한 정부·공공부문과 민감 영역에서의 사용 자제 권고가 시장에 ‘정치적 리스크 프리미엄’을 얹는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의 조건부 완화가 곧장 판매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의미하며, 화웨이 등 자국 대체재로의 전환을 촉진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한 기업들의 전략은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중국 빅테크의 자체 투자 확대입니다. 텐센트는 최근 실적에서 매출과 순이익 모두 두 자릿수 성장을 발표하며, AI 인프라와 모델 고도화를 위한 자본적 지출을 크게 늘리고 있음을 밝혔습니다. 중국 내 대형 수요처가 클라우드·광고·게임 전반에서 AI 활용도를 높이며 ‘내수형 컴퓨팅 파워’ 확대를 선택하고 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이는 해외 반도체 조달이 흔들릴수록 연산 자립도를 높이려는 구조적 추세와 맞닿아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미국 내 클라우드 인프라 사업자들의 공급 측 대응입니다. 코어위브의 마이클 인트레이터 CEO는 현재 AI 워크로드의 절반 이상이 추론(inference) 단계에 있다고 언급하며, 데이터센터 확장과 함께 수익구조를 방어하려는 전략을 설명했습니다. 훈련 중심에서 추론 중심으로 트래픽이 이동할수록, 칩 단가·성능 지표뿐 아니라 지연(latency), 에너지비용, 지역별 규제준수 등 운영요소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합니다. 대규모 증설기에 동반되는 마진 압박과 자본 효율성 관리가 향후 주가 변동을 좌우할 변수로 보입니다.


정책과 공급망의 줄다리기 위에서 플랫폼 규칙 전쟁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애플이 앱스토어에서 오픈AI를 우대한다며 반독점 위반을 주장하고 소송을 시사했습니다. 애플은 “앱스토어는 공정하며 편향이 없다”는 입장으로 반박했고, 실제 순위 데이터상 다른 AI 앱들도 상위권에 오른 사례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이 논쟁은 ‘최종 사용자 접점’에서의 경쟁 규칙을 둘러싼 힘겨루기로, 칩과 데이터센터가 ‘보이지 않는 인프라’를 구성한다면 앱스토어는 ‘보이는 분배망’이라는 점에서 AI 비즈니스의 성패에 직결됩니다. 규칙이 조금만 달라져도 고객획득비용, 구독전환율, 평균 매출 단가가 연쇄적으로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같은 시기에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서클은 매출 증가와 함께 결제·외환을 겨냥한 신규 네트워크 구상을 발표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이 결제 인프라로 자리 잡으면, AI 앱의 소액결제·사용량 기반 과금, 크리에이터 보상 분배 같은 영역에서 새로운 수익모델이 열립니다. 즉, ‘칩과 데이터센터’가 AI의 생산수단이라면, ‘앱스토어와 스테이블코인 네트워크’는 유통과 정산의 인프라가 되는 셈입니다.


이 모든 조각을 합치면 다음과 같은 전략적 시사점이 도출됩니다. 첫째, 반도체 기업은 ‘정책-성능-수익’의 3자 균형을 재설계해야 합니다. 성능을 낮춰 규제를 피해도, 수요지에서 보안·정치 리스크로 제동이 걸릴 수 있습니다. 둘째, 중국 빅테크의 AI 투자 확장은 단기 실적을 떠받치지만, 장기적으로는 국산 칩·툴체인 생태계를 키워 외산 칩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수렴할 공산이 큽니다. 셋째, 미국 내 클라우드 인프라 기업은 추론 비중 확대에 맞춰 전력단가·열관리·지연최적화 등 운영효율 기술을 수익모델 중심으로 재배치해야 합니다. 넷째, 플랫폼과 결제 인프라의 규칙이 바뀌면 수요 창구 자체가 재편됩니다. 앱스토어 노출 규칙과 스테이블코인 결제의 결합은 AI 서비스의 가격·분배·성장경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지금의 풍경은 ‘정책이 수익모델을 설계하는 시대’를 예고합니다. 미국의 15% 수익공유형 수출허용, 중국의 보안·자립 기조, 글로벌 인프라 사업자의 추론 중심 전환, 플랫폼 노출 규칙과 스테이블코인 결제 혁신이 하나의 가치사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미국의 AI 액션 플랜과 중국의 세계 AI 협력 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