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배워야 할 자율주행 규제 혁신의 교훈
테슬라의 완전자율주행(FSD, Full Self-Driving) 기능이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먼저 도입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한국은 테슬라 차량 판매량이 일본의 5배에 달하는 아시아 주요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FSD 베타가 먼저 열린 곳은 일본입니다. 이 현상은 단순히 테슬라의 사업 전략만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각국 정부의 자율주행 규제·정책 방향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보여줍니다.
FSD는 테슬라가 구현하려는 완전 자율주행 패키지로, 단순한 차선 유지와 속도 조절에 머무르는 오토파일럿과 달리 도심 주행까지 포함해 차량이 스스로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다만 현재의 FSD는 ‘베타’ 단계로, 운전자가 개입 준비를 해야 하는 레벨 2+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름은 ‘완전자율주행’이지만, 실제로는 운전자 보조 기능 범주에 속합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수십만 대 차량이 FSD 베타를 사용 중이고, 중국은 최근 HW4 차량을 중심으로 도입을 재개했습니다. 유럽은 규제가 엄격해 아직 승인 대기 상태에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일본이 2025년부터 일반 도로 시험을 허용하면서 한국과의 격차가 부각된 것입니다.
판매량을 비교하면 상황은 더욱 흥미롭습니다. 2025년 1~7월 기준 한국에서 테슬라는 약 2만6천 대가 팔렸습니다. 같은 기간 일본 판매량은 5천 대 남짓으로, 한국의 1/5 수준에 불과합니다. 전체 자동차 시장 규모로 보면 일본이 한국보다 크지만, 전기차 분야에서만큼은 한국이 훨씬 빠른 보급 속도를 보여왔습니다. 일본은 여전히 하이브리드 선호가 강하고 전기차 비중이 1%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전기차 점유율이 18% 안팎으로, 소비자 수용성이 훨씬 높습니다. 테슬라 브랜드 인지도 역시 한국에서 더 강력합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한국 소비자 입장에서는 ‘왜 일본에서 먼저 FSD가 허용되었는가’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됩니다.
그 답은 제도와 정책에서 찾아야 합니다. 일본은 2020년 이미 레벨 3 자율주행차를 합법화했고, 2023년에는 레벨 4 자율주행까지 허용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을 단행했습니다. 이로써 운전자 없는 완전 무인주행 서비스가 가능해졌고, 자율주행 버스와 로보택시 실증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연한 법제도 덕분에 테슬라의 FSD 역시 ‘감독 하 자율주행(Level 2+)’으로 분류되어 비교적 수월하게 테스트가 가능했습니다. 반대로 한국은 안전과 법적 책임 문제를 이유로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왔습니다. 자율주행차 임시운행 허가제와 시범운행 지구 지정 등 제도적 진전이 있었지만, 민간 소비자 차량에서 FSD 같은 고급 기능이 허용된 적은 없었습니다.
일본이 한국보다 먼저 FSD를 승인한 이유는 크게 네 가지입니다. 첫째, 법·제도의 선제적 정비입니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레벨 4를 제도화하며 자율주행 수용 환경을 마련했습니다. 둘째, 정부의 정책적 의지입니다. 일본 정부는 자율주행을 교통안전 혁신 수단으로 적극 지원했고, 테슬라 FSD 테스트 역시 이런 기조 속에서 가능했습니다. 셋째, 데이터와 인프라 준비도입니다. 일본은 이미 고정밀 지도와 도로 인프라가 구축돼 있어 테슬라가 매핑 데이터를 활용해 시험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넷째, 시장 전략적 요소입니다. 일본은 테슬라 판매가 부진한 시장이었기에, FSD가 기술력 홍보와 시장 확대의 기회가 된 것입니다.
이 사례는 한국 정책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집니다. 첫째, 자율주행 규제 혁신의 속도를 높여야 합니다. 안전성을 이유로 지나치게 늦추면, 소비자는 혁신 기술을 경험하지 못하고 국내 산업 경쟁력도 약화됩니다. 둘째, 도로 인프라와 데이터 표준화를 강화해야 합니다. 정부-기업 협력을 통해 지도·신호체계를 디지털화하면 새로운 기술 도입이 빨라집니다. 셋째, 법적 책임 체계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사고 발생 시 제조사와 운전자 책임 구분, 보험 제도 정비는 기업이 안심하고 기술을 출시할 수 있게 만듭니다. 넷째, 국제적 시각을 고려해야 합니다. 한국의 지연이 글로벌 기업들에 ‘비관세 무역장벽’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일본은 제도적 유연성과 정책적 결단으로 ‘먼저 열린 시장’이 되었고, 한국은 보수적 규제와 준비 부족으로 늦어졌습니다. 그러나 최근 한국도 법 개정을 통해 레벨 4 자율주행차 승인 체계를 마련하고, 테슬라코리아와 데이터 협력을 진행하는 등 변화를 시작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혁신과 안전 사이의 균형입니다. 일본의 경험에서 배워, 한국도 자율주행 기술을 적극적으로 시험하면서 동시에 국민의 신뢰를 얻는 정책을 추진해야 합니다. 완전자율주행 시대는 이미 성큼 다가왔습니다. 한국이 뒤처지지 않으려면 규제의 문을 여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