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자율주행 혁신의 실험실이 되는 이유
2025년, 도쿄의 한복판에서 이색적인 광경이 포착되었다. 미국의 자율주행 기업 웨이모(Waymo)의 전기 SUV 차량들이 일본 택시회사 니혼코츠(Nihon Kotsu)와 협력해 도쿄 시내를 천천히 주행하는 모습이다.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도로 주행처럼 보이지만, 이 움직임은 일본의 자동차 산업 구조와 도시 모빌리티 생태계 전반에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https://www.reddit.com/r/waymo/comments/1mkq8zp/waymo_near_toranomon_hill_tokyo/
웨이모의 도쿄 진출은 단순한 ‘테스트 주행’이 아니라, 일본 시장의 자율주행 인프라를 실험하는 국제 프로젝트이자, 글로벌 기술 경쟁의 새로운 전장이다. 2024년 12월 웨이모는 일본 최대 택시회사인 니혼코츠, 그리고 일본의 대표 택시 호출 앱 GO와 손잡고 일본 진출 계획을 공식화했다. 이 협업은 단순한 기술 실험을 넘어, 미국식 자율주행 기술이 일본의 복잡한 도시 교통 시스템에 얼마나 적응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실전 무대’로 평가된다.
1. 웨이모의 도쿄 상륙, 첫 국제 진출의 의미
웨이모가 일본을 첫 해외 무대로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교통 시스템을 가진 도시 중 하나이자, 고령화·운전기사 부족·물류 2024년 문제 등 구조적 모빌리티 과제에 직면한 나라다. 웨이모 입장에서는 기술적 도전이자 사업적 기회였다.
도쿄의 초기 운행 지역은 미나토구·신주쿠구·시부야구·지요다구·주오구·시나가와구·고토구 등 7개 구역으로, 도심부 교통 밀집 지역이 중심이다. 현재는 운전자가 탑승한 상태에서 수동 운전 기반의 매핑(mapping) 주행이 진행되고 있으며, 완전 자율주행 단계로의 전환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차량은 전기 SUV ‘재규어 I-PACE’를 사용하고, 모든 차량에는 웨이모의 센서·라이더(LiDAR)·AI 시스템이 장착돼 있다. 이 차량들은 단순히 도로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각 구간의 신호 체계·보행자 밀도·차선 패턴·도로 폭·주차 환경 등의 세밀한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 데이터가 향후 자율주행 알고리즘의 일본 최적화를 위한 핵심 자료가 된다.
2. 도쿄형 자율주행의 난이도 — “왼쪽 통행과 골목의 나라”
웨이모가 직면한 가장 큰 기술적 과제는 일본 도로의 복잡성이다. 일본은 왼쪽 통행 국가이며, 도쿄는 골목길·보행자·택시·자전거·상점 차량이 얽혀 있는 초밀집형 도시 구조를 갖는다. 이는 미국 피닉스나 샌프란시스코처럼 직선적 도로 구조에 익숙한 자율주행 시스템에게 전혀 다른 도전이다.
특히, 일본 도로에서는 차선 폭이 좁고, 보행자와 차량의 간격이 가깝다. 게다가 일본식 신호 체계는 미국보다 복잡하며, 교차로마다 신호 시간이 다르다. 웨이모가 이 같은 환경을 안정적으로 인식하고 대응하려면, 현지 데이터를 충분히 학습한 고정밀 지도(high-definition map)와 지역별 교통 행태 분석이 필요하다. 현재 진행 중인 매핑 주행은 바로 그 준비 과정이다.
3. 웨이모 × 니혼코츠 × GO — 자율주행의 현지화 실험
웨이모가 일본에서 선택한 전략은 ‘단독 진출’이 아닌 현지 파트너십 모델이다. 일본의 대표 택시회사 니혼코츠는 90년의 역사와 1만 대 이상의 차량을 보유한 거대 사업자다. 여기에 호출 앱 GO가 합류하면서, 기술 × 기존 인프라 × 서비스 플랫폼이 결합된 형태가 만들어졌다.
이 구조는 단순히 기술 실험이 아니라, “일본형 로보택시 운영 모델”의 실험이기도 하다. 웨이모는 니혼코츠 소속 운전자를 통해 운행 데이터를 확보하고, GO의 고객 데이터를 통해 서비스 수요를 분석한다. 장기적으로는 자율주행 차량과 기존 택시가 혼재된 형태로 서비스를 운영할 가능성이 높다.
즉, 일본은 ‘미국식 무인 로보택시’가 아닌, “운전자 있는 자율주행” → “보조운전 단계” → “완전 자율주행 단계”로 점진적 전환을 추진하는 국가다. 웨이모의 접근법은 이러한 일본식 제도·문화·소비자 특성을 반영한 ‘현지 적응형 모델’이라 할 수 있다.
4. 자율주행 시대의 일본 — 규제, 문화, 그리고 시장
현재 일본에서는 자율주행 서비스의 상용화를 위한 법제도 정비가 진행 중이다. 2025년 기준으로 ‘레벨 4 자율주행’(운전자 없는 차량의 제한적 공공 도로 주행)이 일부 지역에서 허가되고 있으나, 도쿄 도심처럼 복잡한 교통환경에서는 여전히 운전자 동승형 자율주행(레벨 2~3)이 주류다. 이런 제약 속에서도 일본 정부는 “모빌리티 DX 전략”을 통해 2030년까지 전국 50곳 이상에서 자율주행 서비스를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웨이모의 도쿄 진출은 이 국가 전략의 연장선에 있으며, 일본 정부와 민간기업이 함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 기반의 교통 혁신을 구현하는 상징적 프로젝트로 평가된다. 한편 일본 사회의 고령화와 인구 감소는 자율주행 도입의 가장 현실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운전자가 줄어드는 농촌·지방의 교통 인프라를 유지하고, 도심의 택시 공급을 보완하기 위한 해법으로 ‘로보택시’가 주목받고 있다.
5. 향후 전망 — 도쿄에서 시작될 ‘모빌리티 대전환’
웨이모는 아직 도쿄에서 일반 승객을 태운 상업 서비스는 개시하지 않았다. 현재는 데이터 수집·지도 구축·운전자 훈련 단계이며, 상용 서비스 일정은 미정이다. 그러나 일본 언론과 산업계에서는 “2026~2027년경, 특정 구역에서 한정된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를 시범 운영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향후 웨이모의 목표는 단순히 차량을 운행하는 것이 아니라, AI, 지도, 통신, 클라우드 인프라까지 포함한 ‘자율주행 플랫폼’을 일본 시장에 이식하는 것이다. 이 플랫폼이 정착되면, 일본은 자국 자동차 제조사(토요타, 혼다, 닛산 등)와 함께 ‘Made in Japan’ 자율주행 생태계를 구축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6. 도쿄의 길 위에서 펼쳐지는 미래
도쿄의 복잡한 교차로와 좁은 골목, 보행자와 택시가 얽히는 혼잡한 도심에서 웨이모의 차량들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아직은 운전자가 탑승해 있지만, 그 조용한 주행은 일본 사회의 변화를 상징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의 도입이 아니라, ‘도시의 움직임’을 다시 정의하려는 시도이자, 자동차 산업이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진화하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일본이 만들어가는 실험이다. 자율주행은 이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문제로 이동했다. 웨이모의 도쿄 진출은 그 첫 장면이며, 도쿄는 세계가 자율주행의 ‘진짜 미래’를 시험하는 거대한 실험실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