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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라이트리 Nov 14. 2023

국제질서의 미래: 핵무기와 균형, AI기술과 사이버공간

베스트팔렌부터 AI까지: 디지털 기술 시대, 세계 질서의 미래는?

* 본 글은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의 저서 <헨리 키신저와 세계질서(Henry Kissinger World Order)>(2014)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현대적인 국제 정치 질서의 시작: 30년 전쟁과 베스트팔렌 조약


현재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국제 정치 질서(international political order)는 주권 국가들이 모여 여러가지 전 지구적 문제들에 대해 다원적 질서를 구축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주권 국가의 개념은 1618~1648년 벌어진 30년 전쟁 이후 수립된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시작되었다. 자국 영토에 대한 주권을 인정하는 내용을 통해 '국가'라는 단위(unit)가 국제 질서에서 상당히 중요한 비중과 의미를 갖게 되었다. 물론 이 시기 중국과 이슬람 지역에서도 각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따라 나름의 질서를 구축하고 있었다. 현재 국제 정치 무대에서 일반적으로 국가는 하나의 군집된 집단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하나의 단위로서 학계에서 분석되고 있다.



세력균형과 국제질서


근대 이후의 국제 질서에서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세력 균형(balance of power, BOP)이다. 이는 새로운 체제와 질서가 수립되었을 때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또는 한 국가 세력들이 다른 국가 세력들을 예속하지 못하게 제한을 가하여 균형을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세력균형이 전쟁을 전적으로 막아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세력균형을 통해 전쟁을 통한 폭력의 규모를 제한시키고, 국제질서와 체제에 대한 도전의 성공 가능성을 낮춰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국제 정치에서 힘(political power)의 논리는 결코 무시할 수 없으나, 그에 못지않게 여러 국가들의 역사적 경험과 가치를 질서로 만들어내는 것 또한 중요하다. 질서의 유지를 위해서는 힘의 논리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며, 세력 균형 속에서 '동반자(partnership)'라는 접점을 찾고자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힘과 동반자라는 개념이 함꼐 녹아져 있는 것이 세력균형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세계 초강대국으로 부상하였고, 2차 대전 이후에는 소련과 양강구도를 이루며 냉전 시기를 겪었다. 미국은 자유와 민주주의, 시장자본주의라는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지금까지도 노력하고 있으나, 냉전시기에 한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하며 겪으며 참혹한 전쟁의 참상을 쓰게 맛보기도 했다. 탈냉전 시기에는 걸프전이 있었고, 9.11 테러 이후에는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이 있었다. 미국은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초강대국으로서 역할을 하며 효과적으로 자신들의 외교정책을 펼치고자 하였으나, 현실에서는 때때로 자신들의 신념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관점과 가치의 문제인데,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대립이라는 구도로 볼 수도 있다.



핵무기와 국제질서


핵무기의 등장과 함께 국제질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제 나는 죽음이요, 세계의 파괴자가 되었다."라는 구절을 오펜하이머가 읊었듯이 말이다. 전통적인 재래식 무기보다 폭발적인 위력을 가진 핵폭탄이란 존재는 인류를 생존과 멸망의 기로에서 위태롭게 할만큼 위협적인 것이었다.


핵무기와 같은 대량 살상 무기에 대해 서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균형이 이뤄진다면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에서는 미국을 시작으로 소련(현재의 러시아)과 영국, 프랑스, 중국 등 현재의 UN 안보리 이사국들을 중심으로 하는 핵질서를 형성하게 만들었다. 이후 핵확산 방지를 위한 NPT 조약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잠재적으로 이스라엘과 인도, 파키스탄, 북한도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는 핵무기를 가진 국가 간에는 쉽사리 전쟁을 할 수 없다는 역설(paradox)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두 국가가 모두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데,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향해 핵무기를 사용하게 되면, 그 다른 국가 역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현재까지 2차대전 시기 일본에 투하되었던 원자폭탄 2발을 제외하면 실제 전쟁에서 핵폭탄을 사용한 적은 없지만, 언제든지 그런 가능성이 존재하며, 국가들의 연쇄적인 핵무기 사용으로 인해 인류가 생존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위험은 언제나 인류와 함께하고 있다.



AI기술과 사이버공간이 만들어낼 새로운 국제질서


이제 현대의 중심 사상은 중세와 근대처럼 종교와 이성이 아니라 과학과 기술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류 문명은 유례없는 번영을 누리고 있다. 컴퓨터와 통신 기술의 발전은 세상을 바꿔놓았다. 이제 사이버 공간에서 각 국가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를 확보하거나 다른 국가들을 방해하기 위한 여러 활동들을 벌이고 있다.


물론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고, 국력이 예전같지 않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여전히 중국에 비해서는 상당한 물리적 군사력과 경제력, 기술력 등의 국가 역량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사이버 공간에서 중국과 러시아, 북한 등의 기술력과 영향력은 상당하다. 이제 AI 기술 분야에서 논문 게제와 특허 출원에 있어 중국은 미국을 위협하는 존재이고, 안면인식 등의 특정 분야에서는 미국을 앞지르고 있다는 분석들도 나오고 있다.


SNS로 대표되는 디지털 기술은 아랍의 봄처럼 민주주의를 증진시키는데 기여하기도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 등 여러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정부와 당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시민들을 감시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는 기술이 만드는 풍요속에 도사린 위험들을 어떻게 피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 이는 단순히 한 국가가 특정 기술 개발에 집중하여 과학기술 역량을 늘린다고 해결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질문들도 생각해볼 수 있다. AI 강국인 미국과 중국이 핵균형과 같이 AI 기술과 사이버 공격 및 보안 분야에 있어서도 상호 균형이 가능할 것인가? 혹은 빅테크로 대두되는 주요 AI 기업들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체제와 질서를 정의하는 단위 행위자가 될 것인가?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


우리는 현재의 시점에서 어떠한 세력균형을 꾀해야 할 것인가? 기술의 시대에 살고있는 우리는 어떤 국제질서의 가치를 지향해야 할 것인가? 미국과 중국은 서로 타협하고, 어느정도 서로를 인정하는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을까?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구축한 다자주의 체계와 UN은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까? 현재 진행형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어떻게 정리해나갈 수 있을까? 수많은 질문들이 남아있다.


미국과 중국은 현재 국제질서를 구성하는 두 강대국으로서 국제사회에 대해 책임을 다할 필요가 있다. 세력균형과 국제 규범 형성, 국제 협력 등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과 중국은 기술과 경제 부문에 있어서는 여러 경쟁을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가치관과 문화,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에 대해 다름을 인정할 줄 아는 부분도 필요하다. 다만, 서로의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레드라인(red line)이 어디인지도 여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영역에서 서로 확인해보고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조심스럽게 서로를 이해해나가고 무력 분쟁으로 인해 전세계에 비극을 만들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자세에서 현재의 국제질서는 평화를 만든다기 보다는 전쟁과 큰 비극을 막는데 있어서 조금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기술에 있어서는 현재는 국가 단위에서 국제 질서를 바라보지만, 과연 AI 알고리즘과 데이터를 모두 독점하고 있는 빅테크들 역시 하나의 단위로서 국제 질서 행위자로 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 역시 필요하다. 더욱이 개별 시민들과 시민사회 영역에서 커뮤니티 단위의 목소리 역시 중요하다. 기술에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우리, 이해당사자들이 나설 때만이 이러한 문제들을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갈지 해법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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