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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함께 멈춘 하루

고요한 숨소리 하나로 충분한 날

by 아메리 키노
1004호 전경.jpg 1004호 거실. 보리가 유일하게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있었던 대형 텔레비전.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보던 어느 오후, 보리는 고요한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걸었고, 차량은 끊임없이 이어졌으며 고층 건물들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004호의 창문 너머로 펼쳐지는 풍경은 움직이고 있었지만 어쩐지 모든 것이 정지된 듯 보였다. 먼 곳의 산자락은 연한 실루엣으로 스며들었고 서로 다른 높이의 건물들 위로 빛이 부서졌다. 소리 없이 흐르는 도시의 리듬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삶을 말해주었지만 그 위에 덮인 햇살은 고요했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존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보리는 하루 대부분을 잠으로 보냈다. 처음엔 너무 오래 자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했지만, 곧 그것이 이 아이의 리듬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해가 방 안으로 스며들면 보리는 조용히 그 빛을 따라 움직였다. 책장 아래, 창틀 위, 때로는 커튼 뒤쪽의 한 점 볕. 마치 해를 쫓는 식물처럼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자리를 옮겨갔다. 그 모습은 그저 묵묵하고 담담하게 하루를 살아내는 방식이었다.


한때 보리는 트롤리 밑, 가장 외진 곳에 몸을 숨기고 잠을 청하곤 했다. 그곳은 닿기 어렵고 누구의 시선도 잘 미치지 않는 자리였다. 그랬던 아이가 조금씩 바뀌었다. 아내의 다리 위에 기대 잠들고, 남자의 발치에서 고개를 눕히고, 어느 날은 창가에 놓인 쿠션 위에서 해를 마주하며 눈을 감았다. 언젠가 보리가 눕던 그 자리에 사람이 조용히 앉아 쉬기도 했다. 그런 자리들은 마치 ‘괜찮아지는 중’이라는 작은 증표처럼 느껴졌다.


낮잠을 자다 꿈을 꾸는 것처럼 가끔 다리를 살짝 떨기도 하고, 고개를 가누지 못한 채 축 늘어져 소파 모서리에 겨우 매달리기도 했다. 그 장면들은 웃음을 머금게 했고, 그 웃음은 종종 지친 하루의 마침표가 되었다. 가끔은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시간이 흘러갔다. 별일도 아니고 대단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 멍하니는 하루 중 가장 온전한 휴식처럼 느껴졌다.


4장 본문.jpg 엄마집사의 손가방 위에서 식빵을 굽는 보리.


보리는 창가에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햇빛이 따뜻하게 등을 덮고 있었고, 꼬리는 천천히 리듬을 타며 움직였다. 그런 보리를 가만히 바라보던 부부는 어느새 그 옆으로 다가가 나란히 앉았다. 아내는 조심스럽게 보리의 등을 쓸었고, 남자는 고개를 숙여 작게 웃었다. “이렇게만 있어도 좋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 다 중얼거렸다.


보리는 눈을 반쯤 감은 채 작게 골골거렸고, 그 울림은 손끝을 타고 가슴까지 전달되는 듯했다. 특별한 대화 없이도 마치 오래된 음악을 함께 듣는 듯한 평화가 흐르고 있었다. 부부는 오늘 하루의 피로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 작은 존재의 호흡에 천천히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쓰다듬는 손길은 조심스럽고 따뜻했으며 그 순간만큼은 시간도 고요히 멈춰 있었다.


그 아이는 그저 살아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존재로 인해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출 수 있었다. 보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이 가장 큰 위로였다. 어느 날 창밖에 머무는 햇살을 오래 바라보다가 문득 시간을 잃은 적이 있다. 바쁜 일과 중에도 그런 멍하니 있는 순간은 어딘가의 틈으로 새어 들어온 숨 같은 것이었다.


보리를 지켜보는 일이 종종 그랬다. 소리 없이 몸을 구부리고 그루밍을 하다가 작은 앞발을 모으고 가만히 누워 있는 모습. 무언가를 하는 듯하지만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하지만 그런 시간 속에서 마음은 조용히 정돈되고 생각은 비로소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우리의 뇌는 평균 90~120분마다 한 번씩 쉼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무시한 채 멈추지 않고 일상을 밀고 나간다. 한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단 10분간의 멍 때리기만으로도 스트레스 수치가 30% 감소하고 집중력은 최대 47%까지 회복된다고 한다. 멈춘다는 건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삶을 조금 더 깊이 바라보는 준비였다.


보리를 보고 있노라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가만히 있는 존재를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 그 속에서 나는 나를 들여다보게 되고 지금 여기라는 좌표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모두가 고양이를 키울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잠시 멈춰 서서 고요히 흐르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것이 나무가 흔들리는 모습이든, 커피잔에 맺힌 김이든, 혹은 보리처럼 조용한 숨소리이든. 멈추어 바라본다는 건 결국 스쳐 지나가던 나의 내면과 조용히 눈을 맞추는 일일지도 모른다.


4장 본문2.jpg 잠이 든 모습을 보면 작은 평화를 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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