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의 맨도롱 또똣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주는 따스함이 남다르다

by 아메리 키노

'맨도롱 또똣'

이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공중파 방송에서 방영된 적이 있었다. 1화라도 봤으면 모르겠는데 단 1도 보지 못한 드라마다. 무려 6년 전 드라마인데도 불구하고 특이한 제목이 갖는 임팩트는 유통기한이 없는 것 같다.

어학사전엔 '따뜻'한의 제주방언이란다. 대학교 졸업여행 때 딱 한번 가본 제주도가 뜬금없이 떠올랐던 건 4월인가, 5월인가 갔던 그 따뜻한 계절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 특이한 제주방언이 번뜩 떠올랐던 건, 일상에서 경험한 특별함이 임팩트가 되어버린 오늘'만' 마실 수 있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셨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목요일 대부분의 시간을 외래 처치실에서 보내는데 오늘의 첫 소독 환자분은 간이식 수술을 하신 중년의 남자분이었다.

처음 오셨을 때부터 복부의 'ㅗ'모양의 수술부위는 얼마나 큰 수술이었는지 짐작케 했다. 회복기간 동안 환청과 환각의 시달렸다고 하시는 보호자분의 고충과 죽다 살아났다고 하시는 환자분의 말씀에서 더욱 조심스럽게, 꼼꼼하게 첫 소독을 했었다.


2주 정도가 지났고 상태가 많이 호전되고 있음을 확인했지만 여전히 불편하셨을 것 같다. 비교적 건강한 나는 상상도 못 하고 있지만 정성을 다하려는 마음은 앞으로도 똑같을 것이다. '덧나지 않길', '하루빨리 건강하게 회복하시길' 기원하며 소독에 임한다.


삼천포 아닌 삼천포지만 아버지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초록색병과 오랜 친구 사이셨던 아버지께서 2015년 즈음, 간암 초기 판정을 받으시고 초록색병과 절교를 선언하셨다.

대학병원으로 진료를 받으시러 갈 때도, 약을 타러 가실 때도

일하느라 함께 동행해드리지 못했다. 고맙게도 차가 있는 남동생이 아버지를 모시고 이동해주었다. 지금은 완전히 끊어내시고 초록색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지셨지만 아버지의 인생에서 큰 파도가 덮쳤을 때 먼발치에서 소식만 듣고 있는 내 모습이 그려지니 참 괴롭기 그지없다.

이 환자분의 소독이 유독 세심해지는 것은 아버지의 모습과 오버랩되어 불효자의 뒤늦은 효심이 자극된 것은 아닐까 싶다.


다음 주쯤 수술했던 병원에 방문하신다고 하시니 꼭 남은실 밥 제거를 하고 오실 수 있도록 담당 원장님께서 당부하셨다. 소독시간은 처음 했을 때보단 신속하게 끝났지만 남은 실밥은 여전히 석연치 않다. 괜히 못다 한 불효가 묶여있는 듯한 죄송함의 실밥처럼 보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업무에 필요하지 않은 감정이입을 잠시 멈추고 소독이 마무리되어 갈 때쯤 환자분께서 아메리카노 이야기를 하셨다.


"남자 선생님들은 아메리카노를 마시죠?"


"아, 그렇죠. 다들 마시긴 합니다."


"커피 한 잔씩 사드리고 갈게요. 마시고 일하세요."


"아닙니다 아버님,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뇌물도 아니니까 커피는 괜찮아요. 바빠서 자리에 없을 것 같은데 책상에 두고 갈게요. 마셔요."

"정말 괜찮은데... 감사합니다 아버님~"


서로 감사의 인사를 나누고 환자분은 처치실을 나가셨 나도 뒤따라 나가며 서둘러 병동으로 올라갔다. 아침 일과는 여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환자분의 따스한 마음은 고스란히 마음 한편에 남아 이후의 소독들은 정성스레 마칠 수 있었다.

병동 소독을 마치고 다시 들어온 처치실 책상 위에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3잔이 놓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