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얼음 동동, 닭가슴살이 똭, 겨자 대신 월남쌈 소스가 곁들여진 물냉면을 먹기 전에 그녀의 말 안 듣는 클로바를 불렀다. 짝꿍의 정성스러운 요리에 그녀가 좋아하는 인디음악이 빠지면 안 되겠다 싶어 얼른 가수 가을방학의 노래를 주문했다. 음성인식이 잘 되지 않아 몇 번이고 부르고 불러야 대답하던 말썽쟁이 브라운 클로바(AI스피커)가 웬일인지 한 번에 인식하고 노래를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미처 노래 제목을 물어보지 못했던 게 아쉽기도 했지만 분명히 달달한 사랑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 플레이리스트에도 저장하고 싶은 곡인데 첫 노래가 무엇이었는지 꼭 물어봐야겠다.
냉면도, 노래도 더욱 달달해질 무렵, 가을방학의 메인보컬 이름이 "계피"라고 하는 그녀.
순수하기만 한 그룹 이름에 한방약 같은 메인 보컬의 이름이라니...
냉면 속 월남쌈 소스에 범벅이 되었건만, 또 한 번의 신선함에 또 범벅이 되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름인데 말이지.
태초에 '캔디 종합세트'라는 다양한 맛을 한봉 다리에 포장해서 팔았던 그'녀석'이 생각났다. 콜라맛부터 우유맛, 호박엿 맛, 과일맛 등등 명절날 시골에 가면 심심찮게 눈에 띄었던 녀석이 있었다. 그중 가장 피하고 싶었던 맛은 역시 '계피맛 사탕'이었다. 이 녀석의 향과 맛은 어린 나에게 알 수 없는 거부감을 심어주었다. 달달함과 거리가 멀어서였는지 캔디 종합세트의 말로는 언제나 계피맛 그'녀석'만이 마지막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 또렷이 기억이 났다.
그 녀석의 이름을 가진 가수라니, 절대 잊을 없는 이름으로 새겨졌다. 거부감으로 똘똘 뭉쳐있던 것이 신선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니...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나만 신선한 것처럼 느껴지는지 아직도 세상은느낌표보단 물음표에 가까운 듯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계피가 영어로 '시나몬(cinnamon)'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잠시나마 부족한 영단어 학습에 반성(?)하며 , 재작년 회식 때 시나몬 코젤 맥주를 펍에서 먹었던 기억이 났다. 흑설탕과 버무려진 시나몬이 코젤 맥주가 3분의 2 정도 담긴 맥주잔 입구에 묻혀 있었는데 특이하면서도 달달한 그 향과 맛이 은은하게 되살아났다.
2인조 그룹'가을방학' 메인보컬=계피=시나몬
냉면을 먹다 시나몬을 알게 되는 일은 마치 유*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의해 영상을 보게 되는 것처럼 우연히 벌어지는 신선한 일상으로 다가왔다.
냉면에 이어 식후는 역시 '커피'다.
정확히 하자면 다크 헤이즐 스틱 2개씩을 앙리 마티스의 남, 여 그림이 새겨진 커피잔에 털어놓고 그리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정화된 물(수돗물을 친환경 정화 필터로 걸러낸 무해한 물이다. 하지만 이게 중요하진 않을 것이다)을 담아 얼음을 띄워 휘휘 저어준 아이스 다크 헤이즐 커피다.
아무튼 커피를 함께 즐기다 '에스프레소'이야기가 나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신선함이 또 한 번 다가올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한 8~9년 전쯤인가? 친구를 기다린다고 카페에 혼자 들어갔는데 말이지...
에스프레소를 처음 접했던 그 날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꺼냈는데 에스프레소의 양과 크기에 깜짝 놀랐던 이야기였다. 놀란 마음 진정하고 마치 뉴요커처럼 분위기 잡았지만 홀짝홀짝 마시고 공허함을 느꼈던 것이다.
'이것은 커피인가, 자양강장제인가...'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이 오고 가는 가운데 에스프레소는 무엇인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녀는 알고 있는 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에스프레소는 이태리에서 마시기 시작했는데 원두 본연의 맛을 내기 때문에 그 양이 많지 않아.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야 하는데... 이태리 커피라고 들었을 때, 또 새로운 지식이라는 신선한 바람이 귀를 통해 생각의 두뇌를 덮쳐왔다. 커피 하면 미국, 스타벅스라고 생각했는데 유럽에서 건너온 커피라니 전혀 1도 생각하지 못했다.
심화과정에 돌입했다. 인터넷 찬스를 활용하다 또 하나 알게 된 사실은 '아메리카노의 시초'였다.
세계 2차 대전 중 이태리에 주둔하던 미군이 에스프레소의 쓴 맛에 조금 더 연하게 마시기 위해 뜨거운 물을 타마시던 것이 조금 더 무게가 실린다고 하는데... 정확한 시작은 알 수 없다고 한다. 정작 미국 본토에선 그리 인기가 없고 한국, 일본에서 인기 있는 카페 아메리카노...
이 정도만 해도 깊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충분히 신선한 충격을 받고도 남았다. 여담이지만 어쩌면 이태리 국민들은 사랑하는 에스프레소를 물에 희석해서 마시는 미군들이 싫어 "America! No!"라고 외치다 그런 이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태리 국민이 사랑하는 에스프레소는 아메리카노의 전신이다.
경험을 정리하면서 아무것도 아닌 정보에 호들갑 떠는 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싶어서 알게 된 것보다 우연히 알게 된 것들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당연히 알고 있을 정보일지 모르겠지만 마치 어린아이가 새로운 것들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느끼는 즐거움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0대 중반에 다가서고 있지만 아직도 경험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정보들로 넘쳐난다. 다 알아야 한다는 어떤 압박감보다는 알아가는 재미를 더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