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의 존재를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무대에 올라서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스쳐 지나갔다. 뜬금없이 이런 생각들이 드는 건 스스로를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 어떤 경험을 하며 살아왔는지 무의식 중에도 살펴보려는 본능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기록한다는 콘셉트 덕분인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계속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 즐겁다. 나의 과거를 글을 통해 표현한다는 것이 부끄럽게도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작업이기에 이왕에 남기는 거라면 명확하게 남기고 싶은 맘이 앞선다. 조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찬란하다고 생각했던 그때가, 평소보다 더 가슴 벅찼던 그때가, 순간의 용기로 많은 사람들 앞에 설 수 있었던 그때의 자신감을 다시 느끼고 싶은 마음을 잠시나마 느껴보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하고 싶어도 그렇게 못하니까.
한 때의 에피소드로 머물러 있었던 그때를 다시 떠올려보니, 그 자리에 있었던 내 모습이 블라인드에 비친 그림자처럼 명확하진 않지만 어렴풋이 떠올랐다. '나 여기에 살아있어요'라고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막춤러 등판
초등학교 6학년 수련회였나, 수학여행이었던 것 같다. 사회자 진행에 따라 한창 무대행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막춤 순서가 진행되고 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채워야 하는 사회자 입장에선 학생들의 호응과 참여가 필요한 순간일 텐데 그 심정을 알 리 없는 학생들은 시끌시끌 떠들면서도 굳이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홀로 나갈까 말까를 수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는 학생은 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냥 나가서 혼자 즐겨보고 싶었는데 막상 나가려니 얼마나 비웃음을 살까, 얼마나 바보 같을까 하며 스스로 작아지는 중이기도 했다. 그래도 꼭 해보고 싶었나 보다. 나가보라고 등 떠미는 친구도 없었는데 정신 차려보니 반 친구의 멋져 보이는 겉옷을 빌려 입고 무대 위에 혼자 올라서 있었다. 그리고는 흥겨운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무아지경 그 자체였다. 근거 없는 자신감 가지고 근본 없는 막춤을 추고 내려오니 후련했다. 왜 나갔냐는 이야기도 들려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저 무대를 올라갔다 내려온 것 자체가 그냥 즐거웠고, 후회로 남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방송작가&개그맨
중학교 3학년 가을, 마지막 학교 축제에 어떤 식순을 할지 학급회의를 하다가 당시 절정의 인기를 자랑하던 개그콘서트 '봉숭아학당'이라는 콩트를 하게 됐다. 다양한 캐릭터들이 한자리에 모여 큰 웃음을 주었던 당대 최고의 코너였는데 학교 축제 때 연기하게 된 것이었다. 대본부터가 당장 시급한 문제였는데 나는 그때까지 아무런 배역이나 영향력 없는 평범한 조용한 학생이었다. 그러다가 한 친구가 써온 대본을 읽고 나도 참고용으로 한번 써볼까 해서 집에서 열심히 타이핑을 했다. 정말 즐기며 봤던 프로그램이어서 코너의 흐름을 줄출 꿰차고 있었다. 며칠 동안 심혈을 기울여 대본을 작성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흐름에 원고가 만들어졌다. 완성된 대본을 공유했더니 반응도 생각보다 좋았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내심 기분이 좋았는데 덜컥 내가 쓴 콩트 대본이 확정되어 버렸다. 인정받은 기분이란 마치 하늘을 나는 듯했다. 그렇게 자칭 최연소 비공식 방송작가가 되었던 것이었다. 캐릭터 출연도 맡아 친구들과 함께 연습하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다. 단발가발까지 쓰고 연기했던 "나가 있어~"로 유명했던 세바스찬 주니어 3세(개그맨 임혁필 님 배역)는 아직까지도 잊지 못할 캐릭터가 되었고, 바람이 쌩쌩 불던 학교 축제는 가장 가슴 뜨거웠던 순간으로 기억에 남았다.
두근두근 솔로 연주
20살 대학 새내기였을 때 대외적으로 활동을 활발히 하시던 교수님 한 분이 계셨다. 3년간 관악부 생활을 했고, 색소폰을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을 아셨던 교수님은 어느 날 부탁을 해오셨다. 문학행사에 축하연주를 해줄 수 있겠냐는 부탁이었다. 매력적인 악기의 멋들어진 연주라면 그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릴 것은 분명했지만... 합주만 해오던 내가 솔로 연주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긴 했지만 얼떨결에 알겠다고 말씀드렸다. 스스로 물을 엎질러졌다. 무엇을 연주해야 하나 싶었지만 뭐니 뭐니 해도 껌은 씹던 껌이라고 하듯 늘 조금씩 연습해왔던 연주곡이었던 타이타닉 OST'My heart will go on'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개인 악기가 없었지만 졸업한 학교를 찾아가 잠시 빌리는 졸업 선배의 파워(?)를 활용하며 틈틈이 연습했었다.
행사 당일, 굉장히 떨리고 긴장되어 어떻게 시작하고 끝냈는지 모르겠다. 안 할 수도 있었던 행사였지만 혼자서 그 무대를 감당해냈고, 세상 숨 떨리는 색소폰 독주를 해내는 순간이었다. 무대에 대한 만족도보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혼자서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던 순간이었다.
이후에도 다양한 데뷔의 순간들이 있었다.
다른 콩트를 연기하거나 같은 관악부 출신인 동생과 시골 어르신을 위한 듀엣 공연도 했었고, 아이들과 태권무 무대를 함께 만들거나 간단한 연극도 해보고, 할머니댁 마을에서 주최하는 추석 노래자랑에서 사촌동생과 함께 나가서 백댄서 했다가 1등 상품 세탁기도 받기도 했다. 라디오 어플 DJ로 활약하며 유*브 채널을 개설해서 내 목소리를 세상에 공유하기도 하고, 얼마 전엔 브런치 작가로서 세상에 내 글을 내놓을 수 있었다.
단지 생활에서 사소한 데뷔가 다양한 분야를 접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특출 나게 잘하는 건 없어도 이것저것 접해본 경험들이 다음으로 경험에 조금 더 유리하게 작용했던 것은 틀림없다.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의 인생 발자국으로 남겨져 다음 도전의 또 다른 마디로 새겼다.
힘든 순간만이 인생의 자양분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용기를 내어 즐겁게 도전했던 순간들이 모여서 또 한 번의 데뷔 무대에 오르게 만들기에 오늘도 나는 새로운 데뷔를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