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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 키노 Dec 04. 2021

향기와 취향 사이

나에게선 어떤 향기가 날까?

사실 취향이라는 단어를 향기로 표현하고 보니 취향의 사전적 의미에 관심이 생겼다. 흔하게 표현하는 취향이라는 단어는 참 많이 들어왔는데 취향을 이야기하라면 왠지 두리뭉실하게 느껴져 얼버무리다가 이야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가지를 하더라도 끝이 날 때까지 파고드는 지구력? 집중력? 그런 힘들이 부족해서인지 취향이라는 단어 자체는 개인적인 성향면에선 약간 낯선 단어처럼 느껴졌다.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

‘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문장에 눈길이 쏠렸다. ‘어떤 것을 하고 싶어서 했지?’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시도했던 다양한 도전들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마무리는 늘 어설펐지만 시작만큼은 여러 가지를 해본 것 같다. 만화 그리기, 색소폰 연주, 무협 소설 쓰기, 비트 박스, 댄스, 라디오 방송, 유튜브 등 흥미로운 도전들을 추구해 온 것 같은데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나 그래도 이것저것 좀 해 봤네?’ 하며 예술 분야의 도전적인 취향을 가진 사실에 조금은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넌 어떤 취향이야?”라고 묻는 포괄적인 질문이 사실 대답하기 어렵다. 마치 어떤 사람인지 묻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구구절절 나라는 사람을 풀어내기 쉽지 않다. 보따리가 한가득 이어도 풀어내지 않으면 어떤 물건인지 모르는 것처럼 하나하나 살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위의 말마따나 이어가 보면 그 보따리 속엔 상자 두 개가 들어있는데 하나는 <외적 취향> 상자, 다른 하나는 <내면적 취향>을 나타내는 상자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외적 취향> 상자를 언박싱해보자.

옷 입는 취향,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취향, 차에 대한 취향, 이성을 보는 취향처럼 천차만별 오만가지의 취향들이 존재하지만 나를 명확하게 나타내는 향기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라는 향기다. 눈에 보이는 취향은 ‘특출 나게’ 보다 ‘있는 그대로’가 좋다. 옷은 심플하면서 빈티지하게 오래전에도 입었던 맨투맨이나 후드티에 검정 바지, 음식은 생선 빼고 거의 다 좋아하고, 차는 다루기 쉬운 경차가 좋고, 이성은 마음과 대화가 잘 통하면 좋다. 그래서 지금의 짝꿍이 너무 좋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변화가 있을 법한 외적 취향은 지난 10년 전과 비교해봐도 환경은 판이하게 달라졌지만 큰 틀에서 달라진 부분은 없는 것 같다. 변화를 즐기기보단 변화를 불편해하는 부분들이 영향을 미친 듯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있는 그대로의 지금의 모습이 잠잠하고 평화로운 모습을 한 바다처럼 편안하게 느껴진다.


반면, <내면적 취향> 상자는 쉽게 열리지 않는다. 아주 꽁꽁 밀봉을  해놔서인지 열기까지 생각보다 뜸을 많이 들였다. '보여줘도 되는 걸까?' 하는 확신 없는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거창하지도 않기에 상자 뚜껑을 열어 보았다.

있는 그대로의 느낌보다는 함께 선한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변화를 추구하는 모습도 보이고, 사람과 세상을 보는 내면적 취향은 조금은 더 선명하면서도 추상적이다.

‘돈을 쫓아가지 않는다’

‘선한 영향력을 만들고 싶다’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의 의미를 둔다’

‘함께 행복해지고 싶다’

‘나로 인해 세상이 따뜻해졌으면 한다’

라디오 플랫폼에서 방송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약 4개월 넘게 진행했던 적이 있었다. 특별한 콘텐츠로 많은 인원을 나의 팬으로 만들거나, 수익을 두둑이 챙기려는 목적은 큰 의미는 없었다.

매일매일 방송을 켜는 성실함을 키우고 스마트폰 안에서 들려오는 내 목소리에 즐겁고 평안하게 하루를 마무리하길 바라는 마음 하나로 긴 시간 동안 달려갈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인원 증가나 수익은 자연히 따라오게 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낀 적보다 힘들고 괴롭다고 느끼는 편인 나로서는 단 한 번의 용기와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끼는 그 순간이 너무나도 웅장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이상을 너무 크게 그린다는 이야기도 듣지만 냉혹한 현실에 나만의 그림을 그려 가는 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있는 그대로가 좋은 사람은 사실 계속 성장을 꾀하고 있다.


나에게서 어떤 향기가 나고 있는지보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도전해 왔던 시간만큼 노력한 향기가 났으면 좋겠다.

시간이 지날수록 꽃과 나무의 향을 맡는 그 짧은 시간마저 생기지 않고 생각나지 않은 때가 많다. 향기의 대부분이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봄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미와 튤립, 지난여름에 봤던 수국, 직장 주차장 옆에 피었던 나팔꽃까지 각자의 향기를 분명히 지니고 있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 그것들의 향기를 맡지 않는다. 어렸을 적 꽃이 신기해서 코를 이리저리 킁킁대며 어떤 향기가 나는지 호기심에 탐색했던 때가 있었지만 단순하게 음식의 맛처럼 '맛있다', '맛없다'로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일순간에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성인이 된 지금은 '호기심'이라는 일시적인 궁금증이 아니라 계속 들여다보고 싶은 '관심'이라는 집중이 있어야 향기를 가까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좋은 향이 나는지, 어떤 향이 나는지 궁금할 수 있는 것도 관심이 생겨야 궁금해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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