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시골소녀의 계절들(1)

외로움에서 자라난 나만의 작은 세계

by 문성은

장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모자와 양산을 동원해도 뜨거운 여름은 채 가려지지 않는다. 예전과는 분명 달라진 계절, 기온은 매년 높아지고 있다. 숨조차 막히는 날씨엔 논에서 일하실 아버지가 떠올라 안부 전화를 드린다. 평소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연락이 드문 우리 가족이지만, 올여름만큼은 자주 안부를 묻게 된다. 아흔을 넘긴 할아버지, 할머니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여전히 밭일을 손에서 놓지 않으시는데, 이런 날씨엔 문득 불안한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워진다. 다행히 이번 여름은 큰일 없이 기우로 지나가는 듯하다.


마트를 둘러보다 검붉은 캠벨포도가 보여 반가웠다. 화려한 샤인머스캣에 가려 한동안 보기 어려웠는데 말이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가격표를 본 순간 뻗은 손이 허공을 맴돈다. '이렇게 비싼 과일이었나'. 포도의 달큼한 향이 오래된 여름밤의 기억을 불러낸다. 어쩌면 더는 그 시절의 여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어릴 적, 시골집에는 까만 포도가 넘쳐났다. 우리 고향의 특산물로 우리 집뿐만 아니라 친인척 대부분이 농사를 지었기에 여름이면 늘 부엌에 자리하는 과일이었다. 아버지는 그중에서 농사가 가장 잘 된 집의 맛있는 것을 골라 우리에게 주셨다. 여름 방학이면 직판장이 있는 할아버지 집에서 일손을 도왔다. 주로 네모난 박스를 접고 어른들이 손질한 포도를 봉지에 잘 싸매어 포장하는 일을 하곤 했다. 차도를 바라보는 정자의 그늘에 앉아 손을 움직이고 있으면 선풍기가 좌우로 바람을 보내주었다. 그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오는 달큼한 포도향과 모기향이 뒤섞인 냄새가 좋았다.


한낮에 시작한 작업은 어둠이 내린 밤이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얘들아. 집에 가자!” 아버지의 외침이 들리자 우리 삼 남매는 아버지 트럭으로 달려갔다. 우리는 조수석에 타지 않고 너도나도 자동차 바퀴를 밟고 올라와 뒷칸에 탑승했다. 부르릉 힘찬 소리와 함께 트럭이 움직이면 우리는 신이 나서 꺄르륵 웃었다. 내달리는 차에서 온몸으로 맞는 여름의 밤공기가 무척이나 좋았다. 그 순간만큼은 걱정도 외로움도 사라졌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가을이 오면, 달라진 공기에 스민 계절의 냄새를 맡았다. 나는 가을 냄새를 맡을 때마다 불현듯 초등학교의 운동장으로 소환된다. 모두 집에 가고 혼자 남은 운동장. 일몰이 내려앉으려는 시간. 그네에 혼자 앉아 앞 뒤로 몸을 흔들던 움직임. 아버지가 데리러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의 공기에 쓸쓸함과 외로움이 느껴진다. 몸의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외로움. 아마도 그건 나의 유년 시절 전체를 관통해 불어오는 기류일 것이다.


장녀인 나는 어머니의 요구와 달리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부여받은 권위를 이용할 줄도 몰랐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선택한 건 양보뿐이었다. 세 살 터울의 여동생은 좋고 싫음이 분명한 까다로운 아이였고 다섯 살 터울의 남동생은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는 귀한 아들이었다. 나는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어린 동생들을 챙기고 돌보는 일로 충분했는지, 또래 친구는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 사실이 조금 씁쓸하긴 해도, 동생들과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비밀 공간을 만들어 놀던 기억. 눈이 펑펑 오던 겨울날, 네모난 통에 눈을 꾹꾹 눌러 담아 만든 벽돌로 이글루를 만든 기억으로 만족한다. 내가 만든 작은 집들에 동생들은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이며 즐거워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아무도 없는 날도 있었다. 어둡고 적막한 집이 나를 삼켜버릴 것 같은 무서움을 느꼈다. 애써 뿌리치고 내 방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문을 닫고 불을 켜면 무서웠던 만큼 안온한 나만의 세계가 펼쳐졌다. 그런 날에는 주로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을 따라 그리거나 만들기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는 결혼 전에 잠깐 미술강사 일을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방에는 그림 그리기 책과 만들기 책이 가득했다.


온통 논밭인 시골이지만 읍내에는 미술학원과 피아노학원 그리고 태권도 학원이 있었다. 부모님은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이 걱정되었는지 미술학원과 피아노학원에 보내주셨다. 그러나 나는 학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술학원에서는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라고 하고선 친구들과 나의 그림을 두고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 이상했다. 피아노는 손가락을 찢어야 하는 게 불편했고, 건반을 누를 때 손톱으로 친다며 손등을 맞는 게 싫어 그만두었다.


그렇게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고, 나는 그림보다도 종이 접기에 빠져들었다.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 선생님의 책을 보며 형형색색의 네모난 종이를 자르고 붙이던 시간들. 비교도 평가도 없는 그 시간들이 좋았다. 난이도를 높여 가며 동물과 식물 그리고 사람도 접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종이로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갔다. 조금은 그늘졌지만, 그 안에서 나는 조용히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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