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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짓것 Dec 20. 2019

을지다방 이야기

01 힙지로 이야기

시골 다방에는 으레 불륜이 있다. 청년 농사꾼들은 유일한 낙이 읍내에 있는 다방에 가서 레지(종업원의 일본말인데 쓰지 말아야 하나 그때 분위기를 위해 사용) 손을 잡고 시답지 않은 농담 따먹기나 놀리기로 위로를 받는다. 출입이 잦아지면 소문이 나고, 드디어 어느 날 아내가 쳐들어오고, 레지는 별것도 아니라는 듯 당당하다.


“신랑이나 간수 잘하지 왜 나한테 지랄이여”


분이 안 풀린 아내는 머리끄덩이를 잡아보지만 당해내지 못하고, 어느새 신랑은 줄행랑을 한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다방의 풍경이다. 오랜만에 그런  장소가 그리워 을지로 노포 다방 을지다방을 찾았다.


주인은 22살부터 다방 일을 시작하여 27살에 인수하고 지금은 62세라고 하니, 족히 35년은 운영을 했다. 그간의 재밌는 에피소드가 듣고 싶어 졌다.


액자는 선물 받은 것이라고 한다.  일력과 석유난로


문에 들어서자마자 난로에서 나는 석유냄새가 풍겼다. 옛날 다방이나 교실에 들어서면 나는 냄새다. 11시 전에는 라면도 끓여준다 하여 일찍 갔다. 쌍화차에 라면 콜라보는 익숙하다. 다방이 성업일 때 우수고객에게 레지가 선물하는 라면은, 농촌 총각들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라면은 신라면이라고 했다. 김치가 적당히 익고 아삭아삭했다. 금년에 김장한 것이라고 한다. 밥도 한 공기 나왔는데, 라면에 들어가는 밥은 약간 꼬들 거려야 맛있다. 너무 질척하면 라면 국물에 포섭돼 흐믈거린다.




이윽고 나온 쌍화탕은 먼저 계란 노른자를 뜨뜬한 찻물로 코팅을 한 다음, 한입에 후루룩 먹고 쌍화차를 한 숟가락 넣어야 한다.


건더기를 건져 먹으며 깊은 맛의 찻물을 마시노라면 뱃속이 뜨뜻해지며 편안해진다.


시간이 멈춘 듯 그대로인 다방 풍경이,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 얼마 전부터 취미가 들린 7,80년대 영화보기와 겹쳐 따뜻함이 전해진다. 추억을 자꾸 곱씹는 건 늙어가는 징조라 하지만, 뭐 그게 나쁠 건 또 무언가.


계란 띄운 쌍화차를 놓고 이 쌍화차를 마신 많은 지나간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때로는 진지한 얘기를 하며, 때로는 실없는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을 사람들은, 추억의 한 페이지가 이곳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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