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추락하는 50대 만년 부장 이야기
우리나라처럼 나이를 따지는 곳이 있을까. 뼛속 깊이 어려서부터 그놈의 나이를 들먹이다 보니, 조직에서는 불가피하게 역전되는 수도 있지만, 참 힘든 관계가 되기 일쑤다. 급기야 대부분 나이 많은 사람이 퇴사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를 왕왕 본다.
나이 어린 상사도 불편하다. 조직에서 확확 일을 추진해야 하는데, 나이 많은 부하 직원에게 함부로 하기 어렵다. 이런 경우 대부분 부하 직원이 직장을 먼저 들어온 경우가 허다하다. 웬만큼 모질지 않으면, 처음에는 나이 어린 상사도 최대한의 예우를 해준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게 된다. 성과를 내야 하는 조직에서 리더십이 발휘되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나이 많은 부하 직원은 삐딱하게 나갈 가능성이 크다. 겉으로야 존댓말을 하고 공적으로 예의를 차리지만, 역전에 대한 불만이 내재되어 있다. 상사가 후배이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무시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관계가 서먹해지다 보면 나이 많은 부하 직원은 아랫 직원들을 선동하여 적극적인 협조가 되지 않도록 유도할 수 있다. 상사의 불만은 더 커진다.
미국에서는 이런 관계에 대해 쿨한지 모르겠다. 언젠가 본 영화 '인턴'에 보면, 나이 많은 하급 직원이 깍듯이 나이 어린 상사를 모신다. 오히려 나이 많은 하급 직원이 멋있게 보일 정도다. 아마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제 내 얘기를 해보자. 역전이 되고 며칠이 지나는 동안, 처음의 충격은 여전하지만 어느 정도 완화되었다. 어색했던 존댓말도 나오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 티가 들 나게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자꾸 대면하는 자리를 회피하게 된다. 어차피 일로서는 만나야 하는데, 가급적 보고할 사항도 웬만하면 보고하지 않고 넘어가려 한다. 예전 같으면 일부러라도 찾아 들어가 허접한 것이라도 말거리를 만든 것에 비하면 천지 차이다.
궁금한 상사가 먼저 문의하거나 찾는 경우가 잦아지게 된다. 이런 때도 딱 필요한 사항만 알려주고 끝낸다. 자연스럽게 대면의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아직까지는 모르겠지만 갈수록 식사 자리나 저녁 술자리도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싶다. 상사가 먼저 청하면 모르지만, 내가 먼저 제의를 하지 않을 생각이다. 적당히 관계를 하지 않으면서, 그것이 반발이라는 느낌은 전달되지 않도록 하려는 마음뿐이다.
나이 어린 상사를 모시는 데 있어 가장 안 좋은 점은 바로 관계의 소원함에 따른 소통의 어려움이다. 당연히 조직은 안 돌아가기 쉽다. 은근 대립하기까지 할 수 있다. 이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나이를 역전하여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 참 어렵다. 나부터도 조직 마인드보다는 사적인 감정이 앞서는 것을 보면 어쩔 수 없다. 밥벌이와 자존심 사이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