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추락하는 50대 만년 부장의 이야기
충격에서 벗어나고는 있으나, 점점 일보다는 내가 살아갈 길에 대해 고민이 되었다. 당장 며칠 후에 있을 부서장 인사에서마저 강등하게 되면, 어떻게 지내야지 하는 고민이 밀려왔다. 생각할수록 원망과 섭섭함이 물밀듯 몰려왔다.
평가자는 이유도 있고 공정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당하는 사람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냥 체념하는 것일 뿐이다. 어쩔 수 없어서 견디는 것뿐이다. 아마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은 패배자의 넋두리라 생각하다가, 조금 지나면 수근 된다. 당연하다고 합리화하면서 자기들끼리 비난할지도 모른다. 자기가 부족한 생각은 하지 않고 끝났는데 자기만 모른다고.
남을 단칼에 재단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명쾌하기까지 하다. 단번에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일은,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보다 사이다처럼 시원하다. 버려버리면 된다. 그러나 버려지는 사람은 그런 주위의 시선이 더 힘들다. 사실 본인은 생각보다 잘 견뎌내고 정리하고 있는데, 이차 폭발은 주변으로부터 온다.
그냥 감기 정도 걸렸다고 하자. 감기 걸린 사람이 평소와 같이 힘이 넘쳐 나부 되어야 하나. 좀 쉬고, 자신을 더 돌보고, 움츠려 들어야 한다. 회복이 먼저다. 진실로 사정을 아는 사람이면, 그 사람이 다시 회복될 것이고, 그 사람은 저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믿기에 변하지 않는다. 부모의 기대가 늘 그렇듯이.
주변의 동정을 바라지 않는다.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다. 주변은 늘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어느 면에서는 냉정하지만 딱히 잘못된 것도 없다. 여론이 들쑥날쑥하듯 주변도 그렇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순전히 나의 영역이다. 또 그것을 역이용할 수 있는 것도 나의 권한이다.
일이 크든 작든 원리는 비슷하다. 또 많은 일들을 겪어보았다. 견딜 수는 있는데, 아쉬운 것은 열정이 떨어지고 일과 이별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도 갈 수 있다. 그렇지만 그건 더 어색하다. 조용히 있어야 되는데 떠드는 것과 같다. 며칠 후 인사가 기대된다. 아니 무엇을 바란다는 게 아니라, 빨리 정해지면 그것에 맞게 완벽하게 시나리오대로 살아가고 싶다. 정해진 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한다. 벌은 받는 것보다 기다리는 게 더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