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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스리랑카 Jun 25. 2019

몽골에서 띄우는 편지

홍고링엘스의 추억



어느 날 몸살이 찾아왔다. 경우에 따라 나의 몸살은 피로와 과로하곤 거리가 멀다. 즉 오한과 함께 축축 늘어지는 증상을 동반하진 않았어도 무엇을 어떻게, 어떤 결정을 할지 몰라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는 점에서 일견 비슷하고, 또한 견딜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증세는 일치한다. 그러나 이 경우 쉬면서 원기를 충전하는 몸살의 전형적인 회복 패턴을 따른다면 실패할 확률이 크다. 왜냐하면 이 몸살은 속살이 슬퍼 자칫 잘못 처방하면 점점 손도 쓰지 못한 채 나쁜 예후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험에 미뤄 이럴 때 나의 비장의 처방은 이렇다. 우선 모든 것을 접고 달러 빚을 내서라도 어디론가 떠나 하염없이 육체를 혹사하는 것.. 그것으로도 충분치 않다면 확 불이라도 붙을 듯 마구 퍼부어 제정신을 차려보는 것.


                                                               


 생판 처음 보는 도시를 쫄면서 여행하기는 싫다. 그런 점에서 겨울철 잠깐 올랐던 홍고링엘스는 제대로 고른 여행지다. 올란에서 버스를 타고 몇 번 뒤척이다 보면 몽골 남부 최대 도시인 달란자드가드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몇 개의 물과 몇 개의 라면과 몇 개의 보드카를 싣고 길을 나선다. 동행하는 몽골 친구는 이길이 맞아?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도 악셀을 밟고 또 밟는다. 부서질 듯 질주하는 스바루 4륜 구동 덕분에 제법 여유 있게 도착해 산을 오른다. 6월의 홍고링엘스는 제철을 만났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부터 초등생까지 신발을 벗어들고 네발로 기어서라도 오르겠다는 의지가 넘쳐나 능선 길엔 무수한 발자국이 자욱하지만, 미친 듯 바람이 불면 이내 흔적도 없다. 그렇게 허망한 모래산에도 정상을 가는 나이프 릿지는 설산의 그것과 닮아 있다. 사정없이 불어대는 모래바람에 몸살이고 지랄이고 다 날려보내고, 정상에 몸을 뉘고 노을을 안주 삼아 한 잔 들이켜자는 야심한 계획이 홍고링엘스의 최대 과제다. 해서 죽치고 또 죽친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어떤 의미가 있다고! 좋아하는 가수가 부른 노랫말이니 결코 틀림이 없으리라. 저 무심한 모래가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photo  by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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