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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랑카 Nov 04. 2024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띄우는 편지

7화 불국의 나라,  캔디 왕국에서  




14세기에 건설한 캔디 시는 스리랑카의 ‘문화 삼각지(Cultural Triangle)’ 최남단에 있다. 캔디는 1592년에 왕국의 수도가 되었는데, 이 기간은 수많은 섬사람이 유럽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전투에 밀리면서 해안 지역에서 점차 내륙으로 후퇴하던 어려운 시기였다. 캔디 시는 영국 군대가 1815년 2월 14일에 상륙할 때까지, 오랜 시간 싱할라의 독립 요새 중 하나로 남아 있었다. 캔디 시는 비말라 다르마 수리야 1세(Vimala Dharma Suriya, 재위 1591~1604)부터 스리 위크라마 라자싱헤(Sri Wiekrama Rajasinghe, 재위 1798~1815) 시절까지 왕권의 마지막 도읍이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본문에서-

 


큰소리치고 시작한 '랑카에서 띄우는 편지'가 급기야 펑크를 내고 말았다. 대략 발행할 얘깃거리 2주 치 정도는 쌓아놓고 썰을 풀어야 하는데, 예기치 않게 순서대로 교육이 진행되지 못했고, 주재국 공관장 예방은 워낙 공사다망한 높은 분들이라, 일정에 맞출 재간이 없었던 모양이다. 줄줄이 몇 개의 일정들이 파투가 나, 도무지 쓸만한 얘깃거리가 생산되지 못한 나날이 계속돼, 큰맘 먹고 한주를 건너뛰었다. 벗들에게 정중하게 미안함을 전한다.


      

어느새 랑카에 도착한 지 한 달 열흘이 지났다. 얼추 교육훈련이 마무리되어 가면서, 일정표에 따라 문화 탐방이 2박 3일에 걸쳐 진행되었다. 탐방의 주요 무대는 캔디시를 중심으로 담불라(시기리야), 아누라다푸라로 이어지는 세 지역 즉,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문화 삼각지'라 언급되는 그곳이다. 세 지역 모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으로 봐 스리랑카 고대사와 중 근대사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지역임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일정상 캔디시와 담불라의 시기리야 지역을 끝으로, 탐방은 종료되었고, 소원했던 아누라다푸라 신성지역의 탐방 소개는 결국 부도가 나고 말았다.



시시콜콜한 탐방 지역의 소개는 생략하고, 평소 이 몸이 갖고 있던 랑카의 궁금증을 중심으로 세 지역을 소개해 올린다. 캔디시는 콜롬보 동북쪽 115km 남짓, 해발고도 500~600m 정도의 산악 지역이다. 아직 내륙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가 없는 탓에 구불구불한 산길에서 제아무리 용을 써도 콜롬보에서 족히 서너 시간이 소요된다. 캔디시의 첫인상은 와우~ 하는 감탄보다는, 좁고 궁핍한 이 골짜기에 도읍을 정하고 항쟁을 이어가야만 했던 고난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캔디시를 이해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뭐니 해도 왕궁과 동일시하는 불치사(석가모니의 치아를 모시는 사원으로 국보 1호)가 이곳에 있음으로 해서 이 도시가 랑카인, 더 구체적으로 싱할라인들의 정신적인 구심점이자 고향이 되었다는 점이 캔디시의 시작이자 끝이다.



불치사를 언급하면서 탐방의 첫 무대였던 캔디에서의 첫 밤을 마무리한다. 싱할라인들은 태생이 종교적이다. 그들도 인도의 카스트제도 못지않게 50여 개의 직군으로 이뤄진 신분의 굴레를 벗어던질 수 없다. 지금은 많이 희석이 되었다고 해도 그들 이름이 갖고 있는 태생의 바코드는, 그가 어떤 조상을 둔 어떤 사람임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부처님에게 지극정성으로 매달려 현세의 고단한 부조리를, 내세의 평화로운 열반으로 바꾸려는 기도를 끊임없이 이어간다, 수천 년 동안. 그 정점에 불치사가 있다. 전국각지, 세계 곳곳에서 밤낮없이 몰려든 불자들의 행렬을 보면서, 사라져 간 불국, 캔디왕국의 역사를 다시 반추한다. 내일은 시기리야왕국의 상남자 왕을 소개해 올리겠다.







                                            



현지어 평가 시험


 장장 3시간에 걸쳐 현지어 평가 시험을 치렀다.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 네 분야 각각 20여 문항이 주어지고 열심히 답을 찾아, 때로는 찍고, 때로는 뱅뱅 도는 단어의 뜻을 몰라 노트를 훔쳐보기도 하지만, 시험은 시험인지라 다 치르고 나니 머리가 비어있음에도 무겁다. 물론 짜고 치는 시험이라, 사전에 시험 범위를 알려주고 숙제처럼 거의 일주일을 연습했음에도, 낯선 언어로 묻고 대답하는 일은 힘들다. 사실, 코이카 단원들은 선발 과정에서부터 파견임무가 종료되는 날까지 평가시험과 보고서의 작성은 피할 수 없는 과제 중 하나다. 그럼에도 이골이 났을 만도 한데, 시험이 주는 압박감은 쉽게 극복하지 못한다. 그나마 다행스럽다면 현지어를 가정교사의 과외수업 수준으로 받아, 남 눈치 보지 않고 묻고, 궁금함이 해소될 때까지 선생을 못살게 군 덕분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떠나는 마당에 칭찬 한마디, 내가 본 선생은  언어의 분석능력이 탁월하며, 언어전공자답게 싱할라어의 어원을 많이 알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의 인적 사항은 이렇다. 이름은 푸라보더(ප්‍රරඛ‌ොධ), 불교대학 싱할라어 전공, 20대 중반, 한국의 유수한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꿈꾸며 한국어 토픽 시험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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