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을 싸들고 부산한 아침 출근길에 동참해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걷는다. 전생에 살았던 기억이 있던가 묘한 데자뷔를 만나곤 한다. 낯설지도 어색하지도 않게 70년대 우리의 풍경과 진배없는 시내버스에 오르면, 너덜너덜한 시트, 꾸역꾸역 밀려드는 탑승객, 작은 백을 허리춤에 찬 버스 차장(이곳에서는 '컨닥터'라고 부른다)이 쉴 새 없이 행선지 벨리아타벨리아타벨리아타~ 읊어대는 버스가 싫지가 않다. 그리고 이윽고 버스는 달리기 시작한다. 차창으로 스며드는 온화한 아침 공기, 몇 번째 모작인지 알 순 없으나 제법 키가 자란 라이스 필드를 지나 학교 앞에 정거하면, 흰 와이셔츠, 검정 바지로 통일된 복장을 한 학생들에 섞여 사무실로 오른다. 실은 오늘, 이곳에서 지낼 집을 구하고 계약까지 마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을 했던 어느 날 아침 풍경을 벗들에게 고해 본다.
주거지 계약은 OJT 일주일 안에 열심히 발품 팔고,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미션이다. 그렇다고 일주일이 경과하면 길거리에 나앉는 건 아니지만,절차를 밟아또 짐 싸들고 여관방을 전전해야 하는 것이 싫어, 나름 어떻게든 끝장을 보려고 이곳저곳탕갈레 지역을 들쑤시고 다녔다. 그럼에도 썩 마음에 내키는 집이 나타나지않아 주저하며 망설이기를 몇 번, 마지막 카드를 쓰기로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홈스테이 간판을 내걸고 투숙객을 찾는 집을 집중 공략해 보는 것이다.
조건은 비교적 단순하다. 방, 화장실, 작은 주방, 책상, 냉장고 딱 5개의 조건만 갖춰지면 족하다고 찾아다니기를반나절, 간절함이 극에 달하면 언어의 벽도 훌쩍 넘어 인연의 줄이 닿는 모양이다. 정갈하게 손질된 마당에서 뽑을 게 뭐가 있다고 또 정원을 매만지고 있는 잰틀 한 노동자 타입의 주인과 조우했다. 무작정 안으로 쳐 들어가 신분을 밝히고, 객실을 보여줄 것을 요청하자 흔쾌히 오케이. 비록 주방과 냉장고, 세탁기는 공용으로 사용하고, 오직 나의 공간은 밝은 햇살이 스며드는 정갈한 방과 화장실뿐이지만, 본 순간, 바로 이것이다 하며 달려들었다. 그 뒤 작은 곡절을 거쳐, 안전 점검 리스트에서 통과를 하고, 드디어 OJT 마무리 전날, 계약을 마쳤다. 거의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매우 건방지다) 스리랑카의 내 집이 생겼다.
계약서를 완성하고 보니 이미 사위(四圍)는 저물어 밤바다가 어둠에 묻혀 너울거린다. 바깥 주인에게 조심스럽게 바다를 보러 가자고 청해 본다. 오케이 하며 우리는 아주 옛 친구를 만난 듯 신이 나서 바닷가 모래 갱변에 섰다. 그때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풀숲에서 몰려든 반딧불이들이 무리를 지어 밤바다를 노래하는 광경을 본 것이다. 아직은 랑카의 자연이 이 무지렁이 반딧불이들에게도, 안심하고 살만한 모양이다. 나 역시 그렇다.
주거지로 계약한 하우스
콜롬보에서 띄우는 편지를 이번회로서 끝을 맺는다. 원래 이 스토리의 미덕이 있다면 단 하나,심심풀이용 읽을 거리이다. 즉 70년대 '선데이 서울' 정도의 교양과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벗들에게 저 멀리 수천 킬로 넘어 그런대로 싱싱한 파도소리를 안주로 제공해 주는 것, 그것이면 족하다. 그런 점에서 변변찮은 '스리랑카에서 띄우는 편지'를 구독해 주는 벗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올린다. 잇서러하터('앞으로'를 싱할라어로 쓰면 이렇다) 탕갈레에서 크고 작은 사건 중에 만난 랑카 사람들의 소식을 전하겠다. 내일 이 몸은 이곳 임시 거주지를 떠나 위 사진이 보증하듯 따뜻하고 밝은 집으로 이사를 떠난다. 사실 오래전부터 스페인 안달루시아 바닷가에 뒷문을 열면 바로 바다로 풍덩할 수 있는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노랠 불렀는데, 이곳 스리랑카에서 원풀이를 한 셈이 되었다. 잰틀 한 주인내외와 함께 때로는 한식으로, 때로는 랑카식의 메뉴를 선보이며 일 년간을 지낼 것이다. 부디 처음 본 그대로 서로 변치 않는 믿음으로 좋은 친구가 되길 진심으로 청하면서 글을 맺는다. 벗들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