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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랑카 Nov 11. 2024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띄우는 편지

9화 드디어 임지 파견, 벨리아타를 향하여

콜롬보에서의 적응훈련이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다. 크게 만나볼 사람, 둘러볼 장소도 없는 가운데 짐들을 정리하고 마지막 밤을 보낸다. 드디어 새로운 생활이 또 시작하는구나. 물론 OJT(on the job training)라고 파견지의 정착에 앞서, 일종의 새로운 지역에 대한 적응 및 준비단계로 일주일 간의 완충기간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이제부터 본격적인 벨리아타 시절로 기억되는 생활에 돌입했다.


11.4일(월) 사무소에 들러 간단한 수료행사와 함께 훈련 종료를 축하하는 한식 점심을 들고, 사무소장에게 파견지로 떠나는 신고식을 마쳤다. 숙소호텔에서 이 몸을 픽업할 학교장을 만나 바리바리 싼 짐들을 봉고차에 싣고 임지를 향해 사정없이 달린다. 후득후득 빗줄기가 거세지는 가운데 이들과 무슨 대화를 나눌까 몇 날 며칠 고민했는데 막상 만나고 보니, 나의 다듬어지지 않은 영어와 현지어인 싱할라어를 적당히 버무리면 그런대로 의사소통은 가능하다. 거기다 재치를 부려 이제 앞으로 학교에서 아침조회시간에 맞닥뜨릴 랑카의 '애국가'를 펼쳐 들면서, 한 소절씩 배움을 청해 이 몸의 스리랑카 사랑의 한없음을 보여준다. 어느덧 벨리아타 학교에 도착한다.



오후 6시 무렵, 벨리아타를 지나 이 몸이 일 년간 거주지가 될 '탕갈레'(Tangalle) 지역에 들어섰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임무를 수행한 것은 다름 아닌 외국인 거주자 신고를 탕갈레 경찰 본부에서 마친 일이다. 분주히 오가는 경찰본부의 근무자들 모습을 지켜보면서 의아스러운 대목이 있다면, 이들 앞에 컴퓨터 모니터대신 두툼한 수기 장부에 방문, 순찰, 특이사항 등을 기록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마치 우리의 육 칠십 년대 풍경처럼. 이윽고 담당 경위의 접수내용을 경찰 본부 당직 사령에게 전달함과 동시에, 그 앞에 불려 가 다소곳이 앉아 그의 훈시를 경청한 다음(물론 무슨 소리인지는 잘 모르지만) 간단한 인사말을 끝으로 지역 신고식을 끝낸다. 드디어 탕갈레 지역 공식적인 한국인 거주자로 등록이 된 셈이다.



이쯤에서 솔직히 고백할 필요를 느낀 대목이 있다. 이 몸은 생각보다 용이 주도하며, 위기라고 느낀 순간 분출되는 과도한 에너지, 순간순간 임기응변의 극치를 보여준 행동의 변화등이 그것이다. 분석해 보면 이 몸은 평소 수줍음이 많고, 소극적이며, 약간의 대인 기피증까지 갖고 있는 아주 전형적 소심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위기 에너지가 분출하면 스스로도 놀랄 정도의 능력자로 변신할 재주(?)를 가졌다는 점이다. 그 두 가지의 예를 들면서 벨리아타에서의 첫 페이지를 보여드린다.



우선 일주일간 머물 숙소에는 할머니(가끔 거주), 가정부 할머니(가끔 거주), 엄마, 그리고 두 딸이 상주하는 중산층 정도의 가정집. 이들은 '왕의 귀환'만큼 이 몸을 반겼는데 문제는 의사소통이 매우 원활하지 않다는 핸디캡이 있긴 했다. 그럼에도 영어 플러스 싱할라어를 구사하는 이 몸의 말귀를 제대로 알아듣고, 대처하기를 반시진(한 시간의 예스러운 표현). 드디어 웃음보가 터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필살의 커닝페이퍼를 꺼내 들고 내가 왜 이곳에 왔으며, 그대들과 나는 이미 친구가 되었고, 앞으로 좋은 선생이 되는 것이 나의 바람이라고 공언하기에 이른다. 커닝 페이퍼를 보고 읽는 것이 아닌, 페이퍼를 교재로 삼아 한국어를 이들에게 연습시키니 이들의 감격이 극에 달한다. 다음날 이곳 학교들이 임시 휴교가 되어 두 딸의 이름대신 로꾸 구루뚜마(큰아기 선생님), 츄디 구루투마(작은 애기 선생)로 명명해, 그들과 여유로운 싱할라어 앤드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OJT를 즐기고 있다.

 


그 여세를 몰아 다음날은 예견했던 대로 학교에 첫 출근을 한다. 그래도 첫 대면이라 넥타이까지 동여매고 반짝반짝 길들인 구두를 신고 단상에 섰다. 장황하게 떠들 재간도 없지만, 나름 준비한 원고를 펼쳐 들고

이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하며 능청까지 부려 웃음을 끌어낸다. 사실 그것은 나모나모나모 마타~(경배하세 경배하세 우리의 조국~)로  이어지는 스리랑카의 국가를 필사한 페이퍼였는데, 곁들여 커닝 페이퍼까지 흔들거리며 보여준 다음, 나는 싱할라어를 아주 조금만 말할 수 있다고 여우처럼 고백한다. (한 달 배운 것치곤 발음이 나쁘진 않군! 이 말이 듣고 싶었다).



역시 대미는 '저는 여러분과 좋은 친구가 되겠습니다'. 아울려 '는 좋은 선생님이 되겠습니다'로 마치는 기염을 토한다.이미, 이들은 한국어 선생의 술수에 취해 한국어를 마스트했고, 무엇이든 한국어로 변환이 가능하다는 기대감이 향수처럼 온 강당에 뿌려진다. 이렇게 벨리아타에서의 첫날이 끝났다. 첫 대면, 첫 수업은 선생의 앞날을 가름하는 바로미터가 된다는 믿음을 주술처럼 맹신하는 편이다. 해서 나의 에너지를 무기 삼아 만용을 부려봤다. 주책이 없긴 하지만 지금으로선 멈출 수 없다. 증인이 된 벗들과 함께 앞으로의 활약을 스스로 기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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