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트'(러시아어) 네이버 국어사전에 등재된 정의에 의하면 1. 어떤 사람들이 자주 어울려 모이는 장소 2. 비합법 운동가나 조직적 범죄자의 은신처 3. 사회에서 합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활동을 비밀리에 지도하는 본부. 원래는 공산당의 용어임.
너무 쉽게 차용해 쓰는 말의 족보를 찾다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부정적 속뜻이 어마무시하다. 원래의 뜻에 가장 근접한 1항의 '어떤 사람들이 자주 어울려 모이는 장소'라 해도 '어떤 사람들'의 복수개념마저도 충족시킬 수 없는, 오직 혼자만의 비밀스러운 장소는 엄밀한 의미에서 잘못 선택한 용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용어가 함유한 '은밀함'을강조하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단어의 선택이 없어 아지트의 용례 4. 에' 다수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은밀하고 고즈넉한 자기만의 장소'라는 조항을 임의로 추가하면서 썰을 풀어야겠다.
이 몸이 몸담고 있는 남부주(southern province)는 족히 100-150km 정도길이의 해안선에 갈레, 아항가마, 웰리가마, 미리사, 마타라, 탕갈레, 함반토타등등 크고 작은 해변휴양지가 즐비하게 늘어서있다. 쭉 둘러보면 어느 곳 하나 완벽하게 넘버원이라고 내세울 수 없는 곳이 남부해안이다. 그저 취향대로 미리사해변처럼 사람 많고 복작거려도 그런 곳이 휴양하는 재미지하며 선택하는 부류가 있는 반면, 대다수의 해변은 한적한 바닷가 야자그늘 아래, 해변침대에서 오수를 즐기는 사람들 뿐, 현지인들은 철저하게 그곳에 얼씬거리지 않는다. 그중에 하나, 탕갈레해변도 그렇다.
탕갈레해변은 삐까번쩍한 관광 상품은 없어도, 물 좋다고 소문이 났는지 1~2월 겨울성수기에는 유러피언들의 이동이 눈에 띄게 많아져 어디를 가나 북적거리고 제법 거리도 활발하다. 긴 겨울휴가가 끝나면서, 다소 해변가 식당과 숙소들은 조금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추측건대 이곳 탕갈레도 인기 해변휴양지 목록에 이름을 올릴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그때도 여전히 탕갈레를 벗들에게 추천할 수 있을지 장담은 못하지만, 지금은 '멍하게 생각 없이 오롯이 자기만의 휴식을 즐기기에는 이곳이 적격'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발품 팔아 발견한 나만의 아지트를 벗들에게 소개해 올린다. 왜냐하면 '그해 겨울'은 너무 끔찍했고 모르긴 해도 '집단 울화성 우울감'으로 인한 평균수명 단축이 분명 이뤄졌을 것이라고 관련학자들은 언급했어야 했다. 이제 봄이 왔고, 그 우울은 희망으로 대치되었기 때문에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주는 파도소리에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즐기기를 진심으로 원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보이는 영상처럼, 탕갈레 비치길이 끝나는 지점에 마라콜리야 비치 리조트(MARAKOLLIYA Beach Resort)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부터는 '사유지'라는 경고성 안내판이 있지만, 특별히 리조트 측은 투숙객이 아니어도 특별히 출입을 제한하지는 않는다. 후문을 나서는 순간 개발을 기다리는 광대한 해변부지를 만날 수 있다. 앞에는 때 묻지 않은 모래갱변이, 뒤쪽에는 무성한 정글 속에 제법 카누를 타도 한 참을 저어야 하는 담수호가 길게 해안을 따라 이어져 있다. 이곳, 야자수 그늘아래 자리를 펴고 때로는 바다를 향해, 또 때로는 호숫가를 향해 잠을 청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릇, 외로우면 더욱 외롭게 외로운 구석을 찾아드는 것도 외로움을 극복하는 한 방식이다. 적어도 이 몸에게는. 내일은 이곳 청정구역에서 해서는 안 될, 가르치는 학생들과 딱 폭탄주 한잔씩 마시고 식겁한 얘기를 들려드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