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염, 편두통, 그리고 회복의 시작
말하지 못한 말들이,
삼켜진 감정들이,
하루하루 쌓여 결국 내 몸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신경성 위염, 편두통, 변비.
그 병들은 하나같이 내 안의 슬픔과 무력함이 만든 흔적이었습니다.
'남편'이란 존재는, 내게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결혼 전, 나는 믿음과 존중을 바탕으로 서로의 삶을 함께 키워나가는 관계를 꿈꿨습니다.
조금은 존경할 수 있는, 그런 배우자를 만나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그리던 결혼과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신뢰는 서서히 무너졌고, 집을 나온 시점엔 지하 바닥을 뚫을 정도로 신뢰는 깨져 있었습니다.
결혼 초, 신경성 위염으로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조금 지나서는 편두통이 찾아왔고, 이내 만성적인 변비까지 달고 사는 삶이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편은 내게 정서적으로 편안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긴장 상태로 살았고, 그의 표정과 말투 하나에도 온몸이 움츠러들곤 했습니다.
게다가 결혼 생활 내내 반복된 그의 주식투자 실패와 빚은, 나를 점점 더 실망과 좌절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왜 그 모든 시간과 책임을 내가 오롯이 감당해야 했을까요?
그때의 나는 아이들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아빠, 엄마 그늘 아래에서 행복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아이들도 그 시절이 편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너무나 단순한 진실을 그때는 제가 몰랐다는 것을요.
자주 편두통에 시달렸고, 아이들에게 건강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립니다. 몸이 그렇게 반응하고 있었는데도, 나는 '내가 예민해서 그렇다'라고 생각하며 모든 책임을 나에게 돌렸습니다.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이 불편했지만, 그 말을 입 밖에 꺼내지 못했습니다. 대신 내 몸이 먼저 반응했습니다. 말은 하지 않아도, 몸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병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신경성 위염, 편두통, 변비.
병명은 다 달랐지만, 뿌리는 하나였다는 걸 이제 압니다.
놀랍게도 집을 나온 후, 만성적으로 안고 살았던 증상들이 하나둘 사라졌습니다. 병원에 간 것도 아니고, 특별한 치료를 받은 것도 아닙니다. 단지 불안한 관계에서 벗어난 것뿐이었습니다.
그토록 고생했던 변비는 한순간에 사라졌고, 편두통도 예전처럼 찾아오지 않습니다. 신경을 곤두세울 일이 줄어들고, 긴장을 하지 않으니, 몸이 차츰 제자리를 찾기 시작하는 느낌입니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얼마나 참아왔는지를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는, 내게는 편안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봅니다.
나는 정말 혼자이기를 좋아했던 사람은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있는 시간보다 지금의 내가 훨씬 편안하다는 이 사실이,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