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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인이십팔호 Jun 17. 2021

주례(周禮)의 쇠락
서주(西周) 멸망과 동천(東遷)

대종가의 종손, 즉 큰집 큰형이 가문의 형제들에게 자발적인 복종을 유도할 수 있는 근거는 혈통에 근거하지만, 한편으로 아직 지방의 제후들이 역량이 부족하여 거친 야만인들을 교화시키기 어렵거나 외부 이족들에 의해 침략을 당할 경우 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실력과 포용력이다. 거꾸로 더 이상의 발전가능성을 모든 방향에서 봉쇄당하고 있는 중심부의 주 왕실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지고 있던 능력을 신장시킬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한 셈이었고, 대종가의 계승자가 반드시 유능한 인물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설상가상 주 천자 스스로 자신의 위상과 이미지를 무너뜨리는 순간, 주 왕실이 더 커진 제후들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주 천자의 권력누수는 결정적인 국면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서쪽 이족인 융족의 침략을 받아 주 천자인 유왕(幽王)이 살해당하고, 아들인 평왕(平王)이 도읍을 동쪽으로 옮기게 되는 수모를 겪는 서주(西周)의 멸망이었다. 서주의 멸망을 가져온 동기는 유왕의 사적 욕망에 휩싸인 폭정과 함께 더 이상 제후들이 주 천자를 옹립할 생각이 없었던 현실에서 찾아진다.


유왕(幽王), 시호에서 보이듯 ‘어두운 왕’ 즉 암군(暗君)으로 평가된다. 정말 그런 것일까? [사기] 「주본기」는 유왕이 포사(襃姒)를 총애해서 그 아들 백복을 태자로 삼으려고 기존 왕후와 태자를 폐서인하려고 했던 데서 사달이 났다고 소개한다. 원래 태자의 모친은 신후(申侯)의 딸로 왕후가 되었는데 나중에 유왕이 포사를 총애했으므로 신후와 태자 의구를 폐위시키고 포사를 왕후로, 백복을 태자로 세우고자 한 것이었다. 


그런데 서주 멸망과 깊이 연관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포사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항상 동아시아 역사관이 주는 도덕적 교훈으로서 망군, 폭군의 실패원인 중 하나로 여색이나 부정한 여인의 존재를 강조하는 상투적인 서사구조를 보인다. 포사는 그 여성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포 땅의 사씨(姒氏) 씨족 여인을 지칭하는 것이다. 아마도 포사라는 여인도 본인 스스로가 원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된 비운의 주인공일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들의 비난과 혹평이 더더욱 불공평하다고 느껴진다. 왜냐하면 포사는 웃지 않았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미 포사에 빠져있던 유왕 입장에서 포사가 활짝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이 소원이 되어 버렸는데, 그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포사는 웃음을 잃은 사람으로 행동했다고 한다. 요즘 표현으로 얼음공주의 이미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어느 날 봉수대의 봉화가 잘못 올라가는 일이 발생한다. 원래 초기에는 큰집인 주 왕실이 제후들을 후원했지만, 후대에 올수록 주 왕실이 제후들에게 도움을 받는 입장으로 처지가 바뀌었고, 특히 군사적 지원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 봉화를 올려 신호를 보내는 체계를 구축했던 모양이다. 봉화를 올려 신호를 보내는 장면은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스펙터클하게 묘사되었던 것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잘못 올린 봉화를 보고 제후들이 군대를 이끌고 헐레벌떡 주 왕실로 달려왔지만 적군이 없고 실수였음을 확인한 후 뒤통수를 치며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갑자기 포사가 크게 웃었다고 한다. 물론 제후들이 급히 오느라 얼굴도 씻지 못하고 갑옷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모습과 어이없고 황망한 얼굴표정을 짓고 터벅터벅 되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느닷없이 웃음을 터트린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오랜 기간 원치 않는 볼모생활과 혼인생활로 인해 분열증적 상태에 놓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어쨌든 유왕은 이에 기뻐하며 여러 차례 봉화를 올렸고 그 때마다 출동한 제후들은 포사를 웃게 하기 위해 자신들을 기만한 유왕에 대한 분노로 들끓게 된다. 마치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 쌓이는 것과 똑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제후들의 신용을 잃어 제후들이 더 이상 봉화에 반응하지 않는다. 이 때를 빌미로 왕후의 아버지인 신후가 서쪽의 견융과 연합하여 유왕을 공격했고 유왕이 봉화를 올렸지만 군사는 오지 않았다. 신후와 견융은 주나라 수도를 점령하고 유왕을 여산 아래에서 죽이고 포사를 사로잡았으며 주나라 재물을 노략질 했다고 한다.(사실 포사도 이 때 유왕과 함께 처형되었다고 한다) 고염무(顧炎武)는 “이 때 견융은 관중에서 정비하여 기거할 수 있었고 동쪽의 신후를 끼고 함께 결맹하여 구로 들어갔다”고 분석함으로써 당시 주변 제후와 외부세력 간 동맹의 사실을 지적한다.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서 이제 제후들이 신후에게 가 있던 원래 태자를 옹립해서 주 천자로 다시 세웠는데 그가 바로 평왕이다. 평왕을 주 천자로 옹립하는데 가장 힘을 보탠 제후들이 정(鄭)나라, 진(晉)나라, 진(秦)나라였고 파괴된 수도를 옮기게 되면서 동주(東周)시대를 연다. 바로 춘추시대의 출발이다. 그리고 춘추시대 초기 주 왕실을 대신해 제후들 간 조정자 역할을 한 나라는 동성제후였던 정나라 공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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