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위대했던 왕조의 건국자와 제왕의 시대가 절정에 이르면 쇠락으로 내려가는 것이 일종의 법칙이기도 하다. 이렇듯 왕조의 흥망성쇠가 반복되는 것을 보고 맹자는 오백년 순환설을 제기하며 성인(聖人)의 출현을 역사적 필연으로 규정하는 전통적인 동아시아 역사관을 제기했다. 그 과정에서 전쟁과 정치는 보편적인 현상(cross-cultural universals)이자 일종의 ‘찬란했던 황금시대의 유물’(millenarian antiquity)로 사람들의 기억에 각인되었고, 그 노스탤지어에서 비롯한 ‘과거 영광으로의 복귀’라는 이념적 목표를 설정하게끔 했다.
주나라는 문왕-무왕에 의해 은나라 주왕(紂王)을 혁명으로 무너뜨리고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다. 사실 주 왕실은 자신이 섬겼던 은 왕조를 무너뜨린 역성혁명으로 인해 태생적으로 자가당착에 빠진 셈이 되었다. 왜냐하면 이제 언제든지 주 왕실에 대한 도전과 혁명 역시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대응을 볼 때, 초기 주나라 지배자들은 대단히 현명하고 유능한 인물들이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공자가 찬양했던 가장 원형적인 공적(公的) 행위자로서 주공(周公)이다. 주공은 주 왕실이 새롭게 확장한 지배영역에 대해 적합한 통치술과 역량을 갖추지 못한 현실을 냉철하게 받아들이고, 통치상의 편의를 위해 각 지역을 동성(同姓)으로 구성된 동족의 형제나 친척 또는 이성(異姓)의 공신에게 배분해 주고 이들을 제후로 삼는 분봉제도(分封制度)에 기초한 종법사회를 구축한다. 주 천자는 혈연을 중심으로 하는 종법제도에 기초를 두고 천자로부터 한 계급씩 아래로 분봉하는 방식을 통해 하나의 통치망을 형성함으로써 주 천자를 대종(大宗)으로 한 종법적 질서와 그에 따른 현실정치의 위계와 권능을 확립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주 천자는 큰집 큰아들이고, 제후들은 작은집 큰아들들이니 항렬상으로나 연령상으로나 가문 내 지위로나 큰집 큰형인 주 천자에게 매년 제사 때 선물을 들고 작은집의 동생들이 인사를 오고 제사를 같이 지냄으로써 큰집 큰형의 권위에 자발적으로 순응하고 복종하는 모양새이다.(이성의 제후들 역시 이 과정에 참여하지만, 흔히 말하는 적서(嫡庶)의 구별이 적용됨으로써 훗날 주례에서 이탈하게 된다. 그 증거는 제후의 등급을 가리키는 공-후-백-자-남에서 혈연관계의 친밀성에 따라 작위의 차별에서 보인다)
또한 주 왕실은 제사의식을 통해 은(商) 왕조로부터 주 왕조로의 권력이동을 정당화했다. 그 이념적 슬로건은 바로 ‘천명은 항상 똑같지 않다’(天命靡常)는 변동가능성의 수용이다. 그것은 신(神)을 중심가치로 삼고 있는 은 왕조의 천 개념에 개방성을 부여하여 인간의 행위가 천이나 초월적인 영적 존재에 의해서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특히 군주에 의해서 통제된다는 관념을 보여준다. 즉 천명이란 개인의 덕목과 노력이 결부된 인간적인 힘(personal power)이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으로 변형되었던 셈이다. 따라서 왕조의 미래는 왕의 내면수양과 실천여부에 의해 결정되는 것임을 분명히 했고, 왕조의 후계자들은 계속 이러한 덕목을 유지하도록 긴장상태에 놓이게끔 계고 받았던 것이다.
종법질서는 대종가 vs 소종가, 천자 vs 제후의 관계가 처음에 설정되었듯이, 혈통에 따른 연령-항렬의 높음과 실력에 따른 후원-포용 능력으로 인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장기 지속적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는 일종의 규범으로 습속화 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즉 큰집과 큰형에 대한 이미지는 권위 그 자체로 각인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그러한 압도적인 모습으로 기억되었던 초기 주 천자의 모습이 일종의 믿음체계로 자리 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 큰집 큰형의 말 한마디가 곧 원칙이고 법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주례(周禮)로 명명되는 종법질서의 작동 메카니즘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큰집 큰아들로 계승된 주 천자의 자질과 덕목 그리고 긴장상태가 항상적일 수는 없었다. 반대로 작은집으로서 제후들은 점점 자신의 역량을 길러 지배영역을 더 확장할 수 있는 자유로움과 진취성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가장 중앙에 주 왕실이 위치하고, 이를 중심으로 주변에 친밀한 동성 제후들로 번병(藩屛) 국가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주 왕실은 더 이상 지배력을 확장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대신 제후들은 능력에 따라 변경지역을 정복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주 왕실보다 더 크고 강력한 국가로 먼저 성장하여 주 천자를 압도할 수 있는 여지를 얻었다. 그 전형적인 사례가 바로 강태공이 세운 제나라였다. 동쪽 끝 바닷가까지 가서 야만적인 이적들을 교화시키면서 주 왕실의 견제에서 벗어나 거리낌 없고 개방적인 개척정신을 가지고 국가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더욱이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는 더 이상 주 천자-동성제후 관계도 먼 촌수가 될 수밖에 없고, 연령으로나 능력에서 주 천자를 압도하는 동성제후나 이성제후들 입장에서 자발적으로 주 천자에게 복종할리는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