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경우 존법과 존덕은 존군의 필요충분조건으로 설정되며, 그 실체는 패왕(覇王)으로 규정되는 새로운 통치자일 것이다. 비록 새로운 통치자에 의한 예법겸전의 질서가 창출된다 할지라도, “(순임금과 문왕은) 뜻을 얻어 중국에서 도를 실행한 것은 마치 부절을 맞춘 듯 똑같았다. 앞선 성인이 뒤에 온 성인이 행한 법도는 동일했다”는 [맹자]에서 소개한 부절(符節)의 의미처럼 그 전형으로서 선왕(先王)의 장점을 취합한 것이기도 하다. 그 사례는 관중의 죽음에 이르러 제환공에게 통치자의 계율을 권고하는 대화에서 찾아진다. 제환공이 유람과 사냥을 하면서 천하에 뜻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는 한탄에 “옛날 선왕은 백성을 다스릴 때 모두 수고로움을 걱정하면서도 위에서 때에 맞게 부려서 백성은 수고로움을 걱정하지 않고, 모두들 굶주림을 걱정하면서도 위에서 세금을 적게 부과하여 굶주림을 걱정하지 않으며, 백성이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위에서 형벌을 관대하게 감해 주어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덕을 가까이 하고 여색을 멀리하면 사방의 책봉을 받은 지역 안에서는 군주 보기를 부모 보듯 할 것이고 책봉을 받지 못한 사방의 밖에서는 여러 제후들이 군주에게 돌아오기를 물 흘러 들어오듯 할 것”이라고 충고한다.
여기에서 주목할 사항은 후대 제경공(齊景公)이 재상인 안자(晏子)에게 제환공 시절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전국을 순방하려는 의사를 표시하자 “옛날 선왕은 멈출 줄 모르고 즐거워하거나 억지로 즐길 거리를 만들어 즐기려하지 않았고 자신을 어지럽힐 만큼 사냥에 몰두하거나 자신을 망칠 만큼 술을 마시는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안자의 대답이다. 이 내용은 [맹자]에서 소개하고 있는데, 선왕의 사례로 제환공을 암시하면서 관중이 권고한 계율에 의한 결과임을 인정하고 있다. 안자 역시 제경공에게 관중의 역할을 대체했다는 우연성은 역설적으로 제나라 풍속이 제환공과 관중 치세에 확립되었음을 유가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