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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하고 지혜로운 인문학적 삶의 모든 것

오늘의 인문학 낭송 (10분 20초)

by 김주영 작가

30일 인문학 글쓰기의 기적 도서 나눔 이벤트

자신을 지키는 3가지 음주 루틴 외

지성 김종원 작가님 글 출처

오늘은 집에 돌아와 유튜브 영상 업로드를 하려고 접속을 하다가 종원 작가님의 숏 영상을 보며 마음과 시간을 다듬듯 잠시 숨을 멈추어 좋은 마음으로 가는 글과 일상의 길목에 서는 기분을 함께 하는 것 같아 참 좋다. ‘아이를 위한 하루 한 줄 인문학’ 책의 글을 낭독해 주시는데 아이를 육아한다는 일이 어떤 건지 내겐 늘 어깨에 놓인 짐처럼 느끼며 살았을까 그 시절이 지금도 추운 겨울처럼 느껴지는 아이를 누구보다 잘 키워야 한다는 마음은 알지만 어떻게 하는 게 잘하는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어떤 두려움이 늘 앞섰기 때문일 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가는 길에 내가 늘 흔들리는 내면의 중심이 필요했다는 걸 큰 아이가 중학생이 되며 다니던 학원에서 수업이 밤 10시까지는 계속되었고 한 번 빠지면 계속해서 보충하지 못할 만큼 아이들의 진도에 적응하기 힘들다는 학원 방침대로 학교가 집에서 멀어지고 시간이 변화하는 것들이 나는 늘 마음을 졸이는 일상의 연속이었고 입학하고 며칠이 지나지 않은 날 아이에게는 외증조할머니가 되는 내게는 친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고 장례식장에 잠시 오는 시간을 내지 못하고 아이는 그저 학교와 학원으로 이동시켰다.


살면서 나는 이 부분이 마음속에 남는 아픈 조각이 될 줄은 그것조차 미처 알지 못했고 큰 아이와 붙잡고 아픈 시간을 보낼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친정 할머니는 언제나 ‘나’ 그리고 내가 낳은 큰 애를

나처럼 곱게 여기셨는데 마지막 가시는 길에 인사하지 못해 내가 잘못한 불충을 이렇게 질문하게 아픔을 주시는가 보다”


물론 할머니께서 그런 마음을 가지 실리 없으나 살다가 느끼는 그날의 부재는 나를 아이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분께 대한 마지막 인사와 예의가 아니었구나. 뒤늦게 후회하고 아파해도 그날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게 인간이 산다는 것 어떻게 도리를 해야 잘 산다는 것인지 그때도 정말 알지 못한 시절이 아픔의 기억이 되어 함께 머문다. 내가 이렇게 생각한 데는 조금의 이런 부분이 존재한다.


그렇잖아도 큰 아이의 시간이 버거워 아이는 참석하지 않는 방향으로 생각했고 늘 우리의 아이들은 나쁜 곳 드센 곳 사람 많은 곳에 안 가는 게 좋다고 잔소리가 아니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는 시댁에서 듣는 말씀들이 내게는 마음의 부담이 될 수 있었으니까.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아이가 외출하고 감기라도 걸리면 마치 그곳에 다녀와 역시나 아픈 것처럼 부모의 말씀이 큰 환경에 자녀들도 부모의 말이 모두 맞는 것처럼 그 하나로 생각하는 가지의 줄기들이 나는 편하지 않았다. 어쨌든 신학기의 긴장되는 시간들을 핑계로 그렇게 하고 있는데 마침 안부차 시어머님께서 마음의 인사를 하시며 이렇게 전화로 말씀을 시작려고 하시는 걸 나는 내가 먼저 미리 막아서고 싶어 응수했다.


“그래. 그런데 큰 애는?”

“안 그래도 아이는 학교에 등교하고

밤에는 학원에 가기로 했습니다.

주말쯤 할머니 산소로 함께 찾아뵈려고요.”


물론 어머님께서 다른 말씀을 하려고 했는지 모를 일이다. 당시의 나는 그저 그렇게 말씀드리는 게 내 마음으로 남기는 냉정의 상처를 덜 느끼고 싶어 그렇게 하고 싶었다. 친정 아빠는 무엇이든 인간적인 정 그런 게 먼저였고 시댁은 늘 지극히 정적이지 않음 속에서 그러나 자신의 가족이 모두인 다른 감정들이 교차한다는 것이 낯선 감정과 기분을 부르기도 했으니까.


나는 언제나 그런 다름조차 나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내가 아이를 육아하며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그래야 했던 날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픈 일이라서 내가 지울 수가 없는 기억이라서 그렇다.


살면서 나는 내가 걸어온 지난 길과 앞으로 걸어가는 긴 시간을 인문학의 대가 김종원 작가님의 글과 책과 공간을 오가며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과 생각을 치유하며 마흔을 잘 보내주고 어느 날 내게 다가온 ‘암’ 보다 진한 몸이 말하는 쉰 살의 어깨 통증을 느끼면서도 그게 불편한 고통이라기보다 지극히 당연한 나이 듦의 현상이라는 것을 언제나 좋은 말 그럼에도 나를 하게 만드는 따스한 언어로 다가가는 나의 마음과 생각을 수정하고 다듬는 글과 하나가 되고자 죽을 만큼 사랑하고 싶은 지적인 빛과 질문을 내게 주며 살 수 있다.


알지 못해 언제나 탐구를 꿈꾸는 세상의 공부가 참 많다.

늘 지성을 따라 오늘도 내 삶을 분투하는 일이 글과 하나가 되고 말과 언어로서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가는 주인이 될 수 있음이 내가 살아갈 미래의 가능성이며 희망이라고 강조하고 자랑하게 된다.


2022.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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