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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영 Nov 16. 2020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규칙

세상에서 어떤 자리에 있건 무슨 일을 하건 내적 성장의 노력이 없이는 근사한 사람으로 거듭나지 못한다. 사람들이 머무는 향기는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누구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늘 일상과 사람을 대할 때 되도록이면 단점보다 장점을 찾아보고 싶다. 하지만 그걸 자신의 잣대로 막는 사람은 내가 단점으로 보려 하지 않아도 자신이 걸어 둔 덫에 걸리고 마는 진실과 거짓의 늪에 빠지는 오류를 범한다.


치료를 받기 위해 개인병원 의사가 써준 심장 관련과 신장과 소견서를 들고 믿음으로 연결되는 한 줄기가 되는 근처의 종합병원을 찾았고 첫 번 진료를 한 순환기 내과에서는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 못해 다른 과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입원을 하고 며칠이 지나며 더딘 정보와 안내를 받으며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며 그동안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늦게 다시 건네며 입원은 했지만 처음 진료를 받았던 과목 의사의 회진만 있을 뿐 정작 치료받아야 할 담당의사는 만나지 못하고 “왜 치료받아야 할 과목의 의사는 오지 않는가” 질문을 하자 환자와 보호자의 걱정과 아픈 마음보다는 이미 모두 잘 통보했으며 더 묻고 싶어 하는 보호자의 질문을 불편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마치 전할 말을 이미 잘 전했다는 사실에 목적을 둔 사람처럼 원래 타 병원의 규정도 처음 진료한 과에서 옮겨지지 않은다는 여의사의 말이 옳지 않아 보였으며 올바르지 않은 마음과 현실이 존재하는 현실이 더 마음을 아프게 했다. 원래 그런 규정과 가족 모두가 늦게 건네받은 한 가지의 의심도 결국 모두 잘 전했다는 진심이 아닌 우기기를 말하는 사람의 내면이 바닥으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래, 아픈 사람은 언제나 믿고 찾고 싶은 병원과 의사가 많이 그립다.’ 이미 살아가며 진행 중인 노화와 그리고 치료받아야 할 아픔의 진단과 처방을 짐작한다고 치고 전문가의 손길이 어루만지는 한 생명을 치료하려는 순수한 의도가 없다면 어느 지위를 정할 수 없이 세상을 살아가며 세상이 아무리 바뀌고 변하여도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제대로 안지 못하는 얕은 자의 마음은 깊음을 이길 수 없다. 증축하고 기업화되는 겉의 모습 안에 존재하는 진실의 손길이 순수하지 않다면 내가 아니지만 다른 사람도 느낄 것이고 이제 그곳은 더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될 뿐이다.


우리 늘 매일을 살아가며 일상을 투명하게 바라보는 글처럼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일을 독해하는 힘을 가지려는 노력을 하며 삶의 중심에 둘 수 있게 되고 그럴 수 있는 실천이 바로 진정한 독서 즉, 책을 읽고 필사와 글쓰기를 통해 인간관계와 삶 앞에 놓인 숙제를 풀어가며 살아갈 수 있다.

세상에 부정과 불만 아픔 속에서도 자신의 마음이 올곧을 수 있는 힘은 언제나 바로 자신의 언어이며 생각이고 꾸준히 걸어가는 오늘의 기본을 지키며 사는 일이다. 사람 사는 일이 그렇다. 당장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도 그대로 일어나기만을 행동에 옮기면 되지만 짧은 순간에도

“딱, 오분만 더 잘까? “

“딱, 오늘 하루만 더 자자.”

하물며 매일 하루에서 반복하는 일상 속 이야기는 어떠한가.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대화와 유혹을 물리치는 더 강한 내면이 이끌고 가는 좋은 힘이 오늘을 실천에 두는 행복한 천사의 승리가 되는 것이다.


늘 자신에게 필요한 오늘의 할 일을 그저 하는 삶이 바로 사색이며 인문이고 오늘을 풀어가는 사람의 강한 힘이다.


202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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