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문학 낭송 (9분 54초)
세상의 규칙 안에서도 당신의 규칙으로 싸워라.
당신의 고독을 당신을 위해 쓰라.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마음을 선물하자.
하루 한 장 365 인문학 달력 아이의 낭송
김종원 작가의 네이버 블로그
카카오 채널 생각 공부 글 출처
https://youtu.be/Fp6POojITk0
이렇게 갑자기 아빠가 없는 어버이날이 돌아올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벌써 1주일 아빠를 만나지 못한 날이 닷새가 지나간다. 아빠와 엄마가 20대 초반 이른 나이에 연애를 하며 부부가 되었기에 항상 외모적으로 젊은 게 좋았지만 사실 가족 모두가 함께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어가는 긴긴 과정의 날들을 보내야 하는 일은 함께 감내해야 하는 젊다는 것에서 오는 불확실성의 숙제를 안고 살아야 하는 일이 도사리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자식 중에서도 그것을 섬세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어쩌면 주어진 몫과 관심과 이해마저도 다를 수밖에 없고 시간과 환경을 달리 보내는 사람으로 나뉠 수 있다.
나는 아빠와 엄마의 다름을 부모 이기전에 한 남자와 한 여자로 이해하는 시간을 길게 보내며 서로 다른 두 분의 모습을 따로따로 헤아리며 인생이라는 두 글자를 받아들이기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자식 중에 한 명이었으며 각자의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 친구이자 딸의 역할이 가능한 조력자? 가 될 수 있었다.
부모라 하면 모두가 완벽한 하늘이고 자식들의 울타리이며 그늘이 되어야 하지만 사실 이 세상의 모든 부모가 그렇다면 얼마나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살게 되는 삶의 현실이 될 수 있을까를 언제나 갈망하고 소원했다. 1940년대에 태어나 우리와는 다른 시대를 살아야 할 때 6.25 전쟁의 혼란도 겪고 배고프고 가난하던 주변 환경을 지나 아빠도 나처럼 7살 때부터 나이가 5~6살 또는 10살이나 많은 형과 누나들 사이에서 1학년이 되었고 할아버지는 그 어린아이에게 읍내 신문소에 들러 신문을 가져오게 하는 일을 맡기며 늘 그 어린 꼬마는 벗들과 함께 하굣길을 걷지 못하고 혼자서 읍내길을 돌아 뒤늦게 가야만 하는 아버지의 엄한 교육이 아닌 보다 느슨한 사랑이 받고 싶어 울음을 참던 외아들이자 한 집안의 귀한 아들로 태어났다.
외갓집은 큰 외 할머니가 손을 잊지 못하자 할아버지가 쉰 즈음에 대를 이을 수 있는 할머니를 들여 태어난 고명 같은 첫 아이이자 딸이 우리 엄마였으니 그 뒤로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셋씩이나 줄줄 낳으니 외할머니들과 외할아버지께는 얼마나 예쁘고 소중한 딸의 인생이 시작되었을까. 시골에서 양가 모두 부잣집 소리를 듣고 살았지만 시대가 변하며 재산도 지키지 못하고 급변하는 큰 아픔들을 가슴에 묻은 채 인생의 변화된 길들을 걸을 수 벆에 없게 되는 동안 두 분이 그렇게 어른이 되며 우리가 그렇게 하나씩 태어날 수 있는 인연이 시작된 거다.
그들의 삶이 늘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모두가 시대적인 아픔을 겪은 보호받아야 하는 아리따운 존재들이지만 잘 사는 법을 미리 배우고 진정 내면과 생각이 어른이 되는 수업을 받고 자랐다면 이 보다 가슴 아픈 시간이 아닌 하나씩 풀고 가는 보다 값진 스스로의 인생을 살게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다. 나는 그 누구보다 아빠의 가슴속에 묻어둔 비밀?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철없는 딸이었고 친구였고 생각의 동반자였다. 그래서 늘 가슴은 더 아팠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아빠의 흔들리는 기억의 한 조각 나뭇잎이라도 되어 드리는 역할을 시키지 않았지만 해드릴 수 있는 특별한 수행을 할 수 있는 한 사람이었다. 그게 내 눈에는 보였으며 꼭 알고 싶었고 나라도 그것들을 안아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으니까 가능한 일이 아니었겠는가
“둘째, 네가 하나만 달고 나왔으면 아빠가 얼마나 든든했을까나?”
아빠는 늘 내가 큰 아들이었기를 바랐지만 나는 늘 둘째 딸이었으며 아빠 속도 가장 많이 썩힌 가시 같은 딸이었지만 아빠는 언제나 내게 큰소리로 화를 내거나 매를 든 적이 없는 나를 나 그대로 바라보며 마음으로 안아주고 가슴으로 용서하고 지지해주고 기다려주는 긴 인고의 시간을 건네주셨다.
아이나 어른이 어떠한 이유로 삶에서 주어진 긴 방황 속에 힘들어하더라도 부모가 긴 시간을 믿고 기다려준다면 그 사람은 언제나 마음속으로 원하고 간절히 기도할 것이다.
“나는 언제나 잘 사는 방법을 찾고 싶어요.”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잘 살고 싶어 하는 거 아닌가요?”
“처한 환경과 부모와 주변을 미워하지 않고 그것에 포기하지 않는 꿋꿋하게 질긴 그 희망을 꼭 찾고 싶어요.”
50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이제야 간직한 내 삶의 영혼과 축복된 언어들 속에서 찾은 문장 하나가 늘 반짝이며 매일을 찾아온다. “부모가 힘을 내면 아이도 절대 힘을 놓지 않는다.”. 과연 부모가 아이를 위해 무슨 힘을 어떻게 낼 근거를 찾는다는 말인가 질문할 수 있다면 이제 그 방법을 찾아 떠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이도 나도 부모도 결국은 살아가는 모습이며 한 사람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지성을 바라보고 영원을 꿈꾼다. 내가 행복해야 세상이 그토록 변함없이 아름답게 태어나는 거니까”
202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