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흉추> 박세영 2022
3월 12일 아리랑 시네센터에서 진행된 상영회에 다녀왔다. 물론 텀블벅 후원도 했다. 본 상영회에선 <다섯 번째 흉추> 이전 박세영 감독이 연출한 네 편의 단편영화가 함께 상영되었다. 졸업작품인 <캐쉬백>부터 <godspeed>, 작년 공개된 <호캉스>와 <vertigo>까지 네 편의 단편이다. (개인적으로 <금장도>가 궁금했는데…) <호캉스>를 제외하면 기존에 관람했던 작품이었다. <캐쉬백>과 <godspeed>는 무언가를 직접 배달하는 사람이 서울 곳곳을 돌아다닌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지닌다. 물론 두 작품의 톤은 꽤나 다르다. 감독의 말대로 샤프디 형제와 존 카사베티스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캐쉬백>과 달리 <godspeed>는 소위 한국형 느와르 영화에서 만나볼 수 있던 톤의 화면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두 영화는 서울이라는 표면 위를 활보하며 무언가를 배송하기 위해 (그리고 배송에 실패하기 위해) 움직이는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직조되는 서울의 지도를 새로이 그려보는 작업에 가깝다. <호캉스>의 경우 한 커플이 시청 앞 더 플라자 호텔에 머물머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남자는 고층건물에 벼락이 떨어지겠다며 두려움을 내뱉고,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호캉스를 즐겨보려 한다. 카드키를 분실했지만 방 안에 들어온 두 사람을 맞이하는 것은 한쪽 벽에서 증식하고 있는 곰팡이다. 부패해가는 이 방에 마치 유령처럼 슬그머니 들어온 두 사람은 번개와 함께 유령처럼 사라진다. <vertigo>는 댄스필름이다. 다섯 명의 안무가는 한 발자국씩 움직인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하는 순간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한다. 감독은 영화의 기본적인 문법인 숏-리버스 숏 관계를 실험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숏-리버스 숏에서 카메라의 시선은, 마치 고개를 돌려버리는 안무가들의 시선처럼, 마주하지 않는다. 감독의 다른 실험영화 <호텔과 시청 사이에서>가 그랬던 것처럼, <vertigo>는 마주해선 안 되는 숏-리버스 숏의 시선이 서로를 회피하는 과정의 서스펜스와 마침내 마주하는 순간의 파열을 포착하려 한다. 이러한 관심은 2인전 [BUMP!]에서 선보였던 <Windowlicker> 같은 작품과도 맥을 함께 한다.
그렇다면 <다섯 번째 흉추>는 어떤 작품일까? “한 연인이 헤어지고 자취방에 남겨진 더러운 침대에서부터 곰팡이 귀신이 싹튼다. 거주지를 옮겨 다니며 새로운 주인공들의 척추 뼈를 빼앗는 귀신, 점점 침대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시작하는데...” 영화의 로그라인은 애매모호하다. 크리처 호러의 외피를 한 이 영화는 결(문혜인)과 윤(함석영)이 사용하던 매트리스에서 자라난 곰팡이 생명체가 윤으로 시작해 새롭게 마주하는 이용자들의 “다섯 번째 흉추”를 뺏으며 점차 자신의 형상을 갖추는 과정을 담아낸다. 다시 말해 영화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곰팡이-생명체다. 2001년 결이 강북구의 원룸으로 이사하는 장면에서 시작한 영화는 2007년 곰팡이-생명체가 경기도 연천군 어딘가에서 만개하는 것으로 끝난다. 강북구와 노원구를 비롯한 서울 북부 어딘가를 떠돌던 매트리스는 다양한 사람들의 흉추를 빼앗아가며 성장한다. 무언가를 배송하는 사람이 아닌 서울 곳곳을 떠도는 물건의 입장에서 진행되는 이 영화는 <캐쉬백>, <godspeed>의 반대에 위치한 기획이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방에서 방으로, 자동차에서 자동차로 이어지는 삶을 살아가는 매트리스-곰팡이-생명체의 삶은, 매트리스에 등을 내어준 이의 흉추를 강탈한다는 점만 제외하면 도시 폐기물이 이동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이 지점에서 <다섯 번째 흉추>는 타의에 의해 도시를 떠도는 존재가 지닌 생명력과 힘을 다루는 이야기가 된다.
<다섯 번째 흉추>에서 다른 무엇보다 인상적인 장면은 매트리스에서 자라나는 곰팡이-생명체가 태어나기 전의 상태를 담아내는 장면이다. 빠르게 카운트되는 날짜가 자막으로 등장하는 와중에 곰파이는 매트리스에 퍼져가고, 결과 윤의 관계는 끝을 향해 간다. 매트리스-곰팡이-생명체가 놓인 공간은 실패의 공간이다. 이런 점에서 매트리스는 <캐쉬백>의 마지막을 장식한 학과 유사하다. 매트리스를 거쳐 간 사람은 실패와 상실을 경험한다. 학 우표를 찾지 못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강가의 학을 바라보던 고우의 표정을, 혹은 죽은 복어가 배송된 것에 화를 내는 <godspeed>의 차장의 표정과 말을, 갑작스레 사라지던 <호캉스>의 커플이 보여준 모습을, <다섯 번째 흉추>의 주인공 매트리스를 스쳐 지나가는 이들이 하고 있다. 유일한 예외는 상실 자체에 놓인 죽어가는 환자뿐이다. 흉추를 빼앗아가는 생명체와 빼앗김 당하는 인간의 숏-리버스 숏은 공격-피해의 구도를 형성하는 액션과 서스펜스를 자아내지만, 죽어가는 환자와 생명체가 나누는 숏-리버스 숏은 그것보단 대화에 가깝다. 생명체가 인간을 공격하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 유일한 순간이기도 하다.
곰팡이라는 존재에 대해 잠깐 생각해보자. 습하고 볕이 들지 않는 공간에 피어나는 곰팡이는 실패와 상실, 고독과 슬픔의 대명사처럼 다뤄진다. “곰팡이는 균사로 이루어진 생물의 한 분류로, 두꺼운 세포벽을 가지고 있으며 얼핏 식물과 비슷하지만, 스스로 양분을 만들어 살아갈 수 없는 종속영양생물이다.”라는 곰팡이의 사전적 정의는 죽어가던 환자의 병실에 붙어 있던 포스터의 문구 “숨겨진 생명력! 부활의 소망이 움트다!"를 얼핏 떠올리게 한다. 곰팡이는 그것이 내포하는 은유적 의미와는 다르게, 왕성한 생명력을 지닌 존재다. 납작한 평면을 따라 퍼지기 시작한 곰팡이는 어느 순간 입체적 형태를 지닌 것으로 부풀어 오른다. 다량으로 자라난 곰팡이는 호흡기 질환이나 알레르기를 유발한다. 영화 속 곰팡이-생명체는 무언가에 실패하고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들을 파먹으며 자라난다. 곰팡이-생명체가 만들어낸 실패와 상실이 아니지만, 그것은 곰팡이가 자라나기엔 최적의 상황이다. 곰팡이가 그리는 2001년부터 2007년까지의 궤적, 성북구 원룸에서 시작해 연천군의 어느 강가에서 끝나는 여정은, 박세영 감독이 전작들을 통해 그려온, 서울이라는 평면 위에서 벌어지는 실패의 지도 그리기라 할 수 있는 것을 다른 방향의 축으로 변형하고 있다. 실패들과 상실들로 채워진 평면을 벗어나는 곰팡이는 어떤 모습으로 자라날 것인가? 박세영의 다음 영화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