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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13. 2022

익명의 형태로 꺼낼 수밖에 없는 이야기

<나의 집은 어디인가> 요나스 포헤르 라스무센 2021

 코펜하겐에서 살아가는 동성애자 남성 아민은 난민이다. 소련의 지원을 받던 공산주의 정권과 무자헤딘 반군 사이의 전쟁이 이어지던 80년대 아프가니스탄 민주공화국 시기를 지나, 군벌화된 무자헤딘과 탈레반의 내전이 시작된 90년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국 시기에 아민과 가족은 모스크바로 향한다. 10대 초중반이었던 아민은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도 전에 생존의 위기를 겪게 된다. 징집을 피해 스웨덴으로 망명해 있던 큰 형의 도움으로 가족들이 하나하나 유럽으로 도피하지만, 그 과정은 험난하다. “Flee(도주하다)”라는 원제를 가진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유럽에 정착해 살아가며 애인과의 미래를 꿈꾸고, 미국에서 박사 후 과정을 준비하는 아민이 오랜 세월 묻어둔 이야기를 풀어내는 형식의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다. 국내에선 <바시르와 왈츠를> 이후 처음으로 극장에 정식 개봉하는 장편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는 보통 다음과 같은 경우에 사용된다. 첫째는 물리적으로 재현하기 어려운 감정, 정동, 정념을 다루는 도구로, 조한나의 <뱃속이 무거워서 꺼내야 했어>, 김윤정의 <선율>, 김보람의 <피의 연대기> 속 짧은 애니메이션 등이 그러한 예시다. 두 번째는 현재의 카메라가 접근할 수 없는 과거나 기억, 장소, 부재하는 대상 등에 접속하기 위한 방식이다. 아리 폴만의 <바시르와 왈츠를>이나 강희진의 <May•JEJU•Day>, 김영근&김예영의 <페루자> 등을 떠올릴 수 있다. 세 번째는 위협에 놓인 인터뷰이나 재현에 있어 발생하는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식이다. 베자드 날반디의 <거리의 유령들>, 소람의 <그레이 섹스>, 케이스 메이트란드의 <타워>, 그리고 <나의 집은 어디인가>가 대표적인 예시다. 물론 하나의 작품이 하나의 카테고리에 속한다고 할 수 없다. 가령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안전을 위해 가명을 쓰고 실제 머물렀던 지역이 아닌 곳들을 언급한다는 점에서 마지막 카테고리에 가장 먼저 속하지만, 동시에 다큐멘터리적 푸티지가 존재하지 않는 아민의 도피 과정을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한다는 점에서 두 번째 카테고리에 속하기도, 아민의 심리적 상황에 따라 추상적인 애니메이션 기법을 끌어오기도 한다는 점에서 첫 번째 카테고리에 속하기도 한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아민의 삶을 차근차근 쫓아간다. 코펜하겐에서 아민과 감독이 나눈 인터뷰 및 아민의 일상생활 장면이 그가 카불에서 살아가던 유년기 및 도피 생활을 이어가던 청소년기와 교차되며 영화가 진행된다.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중간중간 등장하는 실사 푸티지다. 폭력적이며 잔혹한 상황들을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해온 다른 작품들의 일반적인 방식과 다르게, 이 영화 속 실사 푸티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내전의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물론 모든 푸티지가 그런 것은 아니다. 아하(A-ha)의 “Take On Me”가 흘러나오며 80년대 번화한 카불의 길거리를 보여주는 푸티지라던가, 소련 붕괴 이후 빈곤을 겪는 모스크바의 풍경을 보여주는 푸티지 등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내전의 참상을 직접 보여주는 유혈낭자한 푸티지는, 수많은 난민을 발생시키고 수많은 사상자를 만들어낸, 냉전시기 끝자락에 내전의 형식으로 벌어진 두 거대강국의 대리전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1분가량의 이 푸티지 몽타주는 카불에서 살아가던 아민의 삶과 카불을 떠나게 된 아민의 삶을 가르는 장면이며, 도피 생활이 시작된 이후 아민이 가졌을 정념을 가장 강력하게 지시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면서 떠올렸던 것과는 다르게,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로토스코핑(실사 촬영된 푸티지를 따라 그린 그림을 사용하는 애니메이션 기법)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타워>의 경우처럼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에서 로토스코핑은 실제 인물 혹은 사건을 지시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사용된다. 반면 로토스코핑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나의 집은 어디인가>의 경우엔, 관객이 89분 동안 지켜본 아민의 얼굴이 실제 그의 얼굴과 다를 수 있음을 넌지시 알려주는 것이 된다. 이는 영화 속 감독 캐릭터는 실제 요나스 포헤르 라스무센 감독과 다르게 금발의 푸른 눈을 하고 있다는 것에서 드러나는 것이기도 하다. 인물의 얼굴은 물론 아민이 애인과 살아가는 집, 카불의 집과 모스크바의 거처 등 또한 실제로 주인공이 머물렀던 공간을 그대로 따온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요소들은 영화의 이야기가 모든 부분에서 철저한 익명성을 유지해야 성립하는, 아니 주인공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상황임을 알려주는 가장 강력한 방식이다. 크레딧이 알려주는 것처럼, 극 중 등장한 목소리 또한 아민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실제 인물이 아닌 성우들임을 알 수 있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의 관객들은 영화 내내 아민의 여정과, 내면과 함께 한다. 20년가량 묻어둔 도피 과정을 마침내 털어놓는 아민의 모습은 애니메이션이라는 도구를 빌려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던 이야기다. 난민이자, 퀴어이자, 아프가니스탄인이자, 박사 후 과정을 준비하는 지식인인 아민의 모습을 보며 작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여러 사건들을 떠올렸다.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던 미군이 철수하며, 아민의 가족이 조국을 떠난 계기였던 탈레반의 내전이 다시 한번 재현된다. 그 시기 각계각층의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전 세계를 향해 보내오던 메시지를 기억한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모든 것이 종결된 상황에서 자신의 삶을 힘차게 꾸려 나가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민이라는 인물이 지닌 정체성의 다양함과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른 이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진실에 관한, 여전히 그것을 익명의 형태로 꺼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관한 이야기다. 때문에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아민이 익명의 가면을 벗고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로 카메라 앞에 설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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