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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20. 2022

느긋한 리액션의 재난영화

<문폴> 롤랜드 에머리히 2022

 롤랜드 에머리히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인디팬던스 데이>에서 LA US뱅크타워와 백악관을 날려버리던 것이라던가, <고질라>에서 건물 크기의 공룡(고지라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다)을 선보인다던가, <투모로우>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통째로 얼려버린다던가, <2012>에서 항공모함으로 백악관을 덮친다던가… 어쨌든 마이클 베이와 함께 할리우드의 ‘파괴왕’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의 장기는 “잘 부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그의 특기인 재난영화뿐 아니라 <미드웨이>나 <화이트 하우스 다운> 같은 전쟁 혹은 액션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그의 서독 시절 영화는 썩 괜찮다고 하지만, 어쨌든 그의 장기는 문명이 만들어낸 온갖 것들을 부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이야기는 어떤가? <미드웨이>나 <스톤월> 등 실화 바탕 영화를 제외한다면, 그의 이야기는 음모론으로 가득하다. 51구역, 고대 마야인의 예언, 방사능에 노출된 거대파충류, 고대인의 우주 포탈 등등… 이는 <문폴>도 마찬가지다. <문폴>이 내세우는 음모론은 달이 거대한 인공구조물이라는 것이다.

 달이 갑자기 궤도를 바꾸어 지구로 떨어지려 하고, 사고로 인해 퇴직한 전직 우주비행사 브라이언(패트릭 윌슨)과 달 인공구조물 음모론을 믿는 KC(존 브래들리)가 NASA 국장 대행인 파울라(할 베리)가 이를 막기 위해 힘을 합친다는 단순한 이야기는 롤랜드 에머리히가 자주 선보이던 구조다. 여기에 남자주인공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전처의 새로운 남편이 목숨을 희생한다는 것까지, 이보다 롤랜드 에머리히 같은 이야기가 또 있을까. 그의 영화는 언제나 전지구적 재난 앞에 놓인 인류 중에서, 중년의 위기를 겪는 남성이 가족을 구하고 미국과 세계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담아낸다. 이러한 이야기엔 딱히 반감도 없고(물론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롤랜드 에머리히 영화의, 중년의 위기를 겪는 소시민적인 남성 영웅들(<인디펜던스 데이>에서는 그게 대통령임에도 ‘소시민적’으로 다뤄진다)은 드웨인 ‘더 락’ 존슨의 거대한 육체가 재난에 맞서는 영화들로 대체된 지 오래다. 그렇다면 그의 영화에서 남은 것은 결국 얼마나 잘 부수는가다.

 <문폴>은 이 지점에서 아쉽다. <인디펜던스 데이: 리서전스>의 실패를 반복한다. 파괴는 적고, 액션은 인간 문명이 없는 곳에서 펼쳐진다. 달이 거대한 인공구조물이며, 그것이 기술이 극도로 발전한 인류의 선조가 AI의 역습을 당할 즈음 만들어 보낸 노아의 방주 같은 것이라는 설정은 재미도 없고, 이렇다 할 반전도 되지 못한다. 그 이야기를 깨닫게 된 브라이언의 무덤덤한 표정과 이를 전해들은 KC의 천진난만한 표정의 대비가 그것을 보여준다. 음모론은 지구를 부수는 방법을 결정하기 위한 소재일 뿐이다. <인디펜던스 데이: 리서전스>의 실패는 전작이 보여준 것과 같은 파괴의 스펙터클을 축소했기 때문이다. 음모론을 비롯한 설정들은 보여주기보단 말해지며, 말해진 것이 적당한 분량의 이미지로 변환되지 못한다. <인디펜던스 데이>의 관객이 환호했던 것은 부숴지는 건물들이지 황무지에서 벌어지는 외계인과의 전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걸 바랬다면 <스타워즈>를 다시 봤겠지. <투모로우>나 <2012>가 성공한 것은 재난 속에 놓인 인물이 그것을 해쳐 나가는 것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꾸렸기 때문이다. 파괴를 멀리서 조망하는 대신 그 한가운데에 주인공을 놓았다. <인디펜던스 데이>가 성공한 것은 파괴의 스펙터클과 후반부의 전투를 장소적으로 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주선은 항상 도심 위에 떠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스펙터클은 유지된다. 

 <문폴>은 어떨까? 달은 계속 움직인다. 달의 인력이 변화하며 쓰나미가 일어나거나 지각변동으로 인한 지진과 화산폭발이 발생하지만, 영화는 그것을 딱히 스펙터클로 활용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문폴>이 지닌 파괴의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역량은 후반부에 집중되어 있다. 달이 본격적으로 지구와 가까워지고, 중력폭풍 같은 것이 일어나서 바다가 하늘로 솟구치거나 자동차가 빨려 올라간다. 도심이 부서지는 것은 뉴욕이 박살나는 한 장면 정도뿐이다. 달이 인공구조물이며 선조들의 AI가 조종하는 나노로봇 군집체가 달의 균형을 파괴하려 한다는 설정이 영화 속에서 인용된 이후부터, 영화 속 세 주인공은 우주로 향한다. 지구에 남은 주인공들의 가족의 시점으로 종종 재난이 묘사되지만, 이들은 <2012>의 존 쿠삭처럼 발버둥치거나 <투모로우>의 제이크 질렌할처럼 추위에 떨지 않는다. 우주로 떠난 이들이나 지구에 남은 이들이나 모두 안전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샌 안드레아스>에서 드웨인 존슨이 딸을 구하기 위해 쓰나미를 뚫고 모터보트를 운전할 때도 이런 안정감은 없었던 것 같다. 도리어 드웨인 존슨표 재난영화가 그의 강인한 육체 자체를 재난과 맞서게 하며 쾌감을 준다면, <문폴>은 재난을 맞이한 사람들을 보여주는 것에 있어 어떠한 전략도 없어 보인다. 브라이언은 가족을 구하는 것에 있어 큰 뜻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KC는 자신의 음모론을 확인하는 것에 관심이 쏠려 있다. 에머리히의 이전 작품들에 비해 부족한 제작비가 재난의 스펙터클을 깔끔하게 보여주지 못한 것도 있지만(이번 영화의 VFX 완성도는 13년 전 작품인 <2012>보다 못하다), 파괴를 목격하는 이들이 제대로 묘사되지 못한 탓에 그것에 집중할 수 없게 된 것이 가장 큰 패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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