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펜서> 파블로 라라인 2021
*스포일러 포함
파블로 라라인의 영화 중 세 번째로 실존인물을 다룬 작품이다. <네루다>에선 칠레의 정치인이자 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재키>에서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를 다뤘다. 이번 영화는 1991년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한 다이애나 스펜서의 3일을 담아낸다. ‘세기의 결혼식’과 같은 수식어로 설명되던 찰스 왕세자(잭 파딩)과의 결혼 이후, 다이애나(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는다. 파파라치는 어디든 따라다니고, 그의 행적 하나하나부터 패션까지 모든 것이 주목을 받는다. 왕세자라는 위치와 내연관계 모두 놓치지 않으려던 찰스 왕세자와의 결혼생활은 시간이 흐를수록 거대한 압박으로 되돌아온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왕실의 별장에서 보내는 3일 뿐이지만, 영화가 담아낸 다이애나의 모습은 결혼 이후 10년간 누적된 압박과 피로감, 고통을 숨길 수 없는 상태다.
영화가 ‘다이애나’가 아니라 그의 결혼 전 성인 ‘스펜서’를 제목으로 내세운 것은, 그가 영국 왕실에 종속되지 않게 되길 바라는 것과 같다. 왕실 셰프인 대런(숀 해리스)나 의상담당자 매기(샐리 호킨스)처럼 다이애나의 친구가 되어주는 이들도 있지만, 전직 군인인 그레고리(티모시 스폴)이 이끄는 왕실 스태프 대부분은 다이애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들은 딱히 다이애나에게 적대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다이애나가 받는 압박을 케어해주는 인물도 아니다. 그들은 찰스를 비롯한 왕실 사람들의 명령에 따라 다이애나를 과보호 한다. 모든 것이 정확한 일정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는 왕실의 크리스마스 ‘휴가’는 휴가라기보단 왕실의 이미지를 국민에게 선보이는 홍보의 성격이 강하다. 때문에 왕실의 온갖 전통이 지켜진다. 추위에 떠는 아이들이 있음에도 난방을 하지 않고, 매 끼니와 행사마다 다른 옷을 입어야 하며, 풍족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는 증거로 체중을 기록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다이애나에게 압박으로 다가온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편집증적인 연기는 이를 보여주고 있다.
다만 그것이 다이애나 스펜서라는 인물을 설명하는 것에 있어 효과적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다이애나는 이미지 스펙터클의 희생자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사진에 찍혔던 여성 인물”이라는 수식어라던가, 1997년 파파라치를 피해 운전하다 사고를 당해 사망한 그의 생애를 떠올려보자. 스펙터클은 다이애나 스펜서를 집어삼켰다. 동시에 다이애나는 자신이 어떤 스펙터클로 대중에게 받아들여지는지 알고 있던 인물이기도 하다. 스펙터클은 그를 집어삼키는 존재임과 동시에, 그에 맞서는 전략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일까, <스펜서>는 양자를 동시에 보여주려 한다. 스펙터클화 되는 대상으로서의 다이애나와, 카메라 앞에서 스펙터클이 되어줌으로서 발언권을 획득하는 다이애나는 공존한다. 여기에 더해, 클레어 마통의 촬영이 보여주는 파스텔 톤의 색감과 강박적으로 대칭성을 유지하는 구도, 끝없이 초조함을 더하는 음향효과와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와 어우러져 <스펜서>의 스펙터클을 만들어낸다.
영화는 “실제 비극을 바탕으로 꾸며진 이야기(The Fable of True Tragedy)”라는 자막과 함께 시작한다. 파블로 라라인의 두 전작은 실제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익숙한 전기영화의 틀을 따라가지 않는다. 실존인물을 소재로 한 그의 영화들은 실존 인물의 특정 시기를 재현하는 것이 목표라기보단, 그 인물이 놓인 상황을 다루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그 지점에서 같은 해에 공개된 두 영화, <네루다>와 <재키>는 다른 방향을 지향한다. <네루다>는 파블로 네루다의 이야기이지만, 네루다가 주인공이 아니다. 공개적으로 정부를 비난한 네루다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상의 비밀경찰이 주인공이다. 때문에 네루다의 도피생활은 네루다의 시점이 아닌 타인에 의해 다뤄진다. 반면 <재키>는 <스펜서>와 마찬가지로 제목으로 내세운 이가 영화의 주인공이다. 재클린 케네디가 겪은 비극 속에서 그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기획이 된다. 이 지점에서 <네루다>는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실존 인물의 방식, 다시 말해 저항을 발화하는 인물이 영화를 통해 스펙터클화되는 것을 방지한다. 반면 <재키>의 화려한 촬영은 비극을 일정부분 스펙터클로 다룬다. 아니, 다루게 된다. 모종의 스펙터클로 존재하는 인물을 타자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열연을 경유하여 인물의 내면을 스펙터클화하는 방식은 자칫 비극 자체를 일종의 스펙터클로 만들어낸다.
다시 <스펜서>로 돌아오자. <스펜서>는 <재키>와 같은 방식을 택한다. 왕실을 제외하면 그의 주변을 둘러싼 인물들은 여러 실존인물을 모델로 삼은 가상의 인물들이다. <재키>에서 그레타 거윅이 연기한 낸시처럼 말이다. 다이애나가 자신의 속내를 터놓는 대상은, 영화 마지막의 두 아들을 제외하면 가상의 존재들이다. 때문에 극을 이끌어가는 다이애나의 모습은, 이 영화가 심리 호러처럼 느껴진다는 몇몇 평처럼, 비극의 스펙터클로 등장한다. 영화 후반부 다이애나는 왕실 별장 옆에 위치한 어린 시절의 생가를 찾는다. 그곳은 이미 흉가가 되어 있다. 계단 앞에서 자살을 생각하던 다이애나를 보여주다가, 영화는 그의 어린 시절과 현재를 몽타주한 장면을 보여준다. 다양한 옷을 입고 춤추는 다이애나의 모습은, 찰스가 선물해준 진주 목걸이로 표현되는 압박감에서의 해방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더 나아가 다이애나가 두 아이를 차에 태워 별장 바깥으로 빠져나가, “중산층 정도의 행복”을 찾기 위해 KFC 치킨을 사먹는 엔딩은 왕실의 이미지가 자아내는 스펙터클 바깥으로의 해방을 보여준다. 하지만 해방의 전제는 다이애나가 겪은 비극의 존재다. 영화 내내 다이애나를 짓누르던 비극의 스펙터클은 해방을 강조함과 동시에, 삶 전체가 스펙터클로서 다뤄진 인물을 다시 한번 스펙터클화하는 우를 범한다. 다이애나가 스펙터클에 대해 놓인 양가적인 상황처럼, 영화 <스펜서> 또한 양가적인 상황에 놓인다. 영화는 여기서 중단된다. 다이애나 스펜서는 다시 한번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사진에 찍혔던 여성 인물”으로 남는다. 파블로 라라인의 다음 영화가 기대되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