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25. 2022

30년의 시간이 기록된 얼굴

<2차 송환> 김동원 2022

 이 영화는 실패담이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진행된 비전향 장기수들의 1차 송환이 이루어졌지만, 전향 등 여러 이유로 남한에 남게 된 장기수들은 2차 송환을 바라고 있다. <2차 송환>이 처음 공개된 2022년 1월까지도 2차 송환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코로나 19 팬데믹과 윤석열의 당선 등은 이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1991년 감독과 비전향 장기수들의 첫만남부터 2003년 평양 촬영까지 12년간 촬영된 <송환>은 영화의 중심 인물이었던 조창손과 김선명 등의 송환이라는 성공담을 담아냈다. <2차 송환>은 송환되지 못한, 혹은 송환에 응하지 않은 장기수 46명의 이야기다. 고령의 장기수들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하나 둘 씩 세상을 떠났다. 영화의 마지막 자막은 46명 중 10명만이 생존해 있음을 알린다. 


 <2차 송환>은 김동원 감독이 많은 것에 실패하는 것을 담아낸다. 영화의 주인공격 인물인 김영식 선생은 여전히 남한에 머물러 있다. 내년이면 그의 나이는 아흔이 된다. 20년간 이어진 2차 송환 운동은 실패에 가까워지고 있다. 전작에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인해 북한 촬영을 떠나지 못했던 김동원 감독은, 이번엔 외국 국적 감독들의 손을 빌려 북한 촬영을 시도한다. 하지만 이 또한 여러 이유로 실패하고 만다. 부모님의 고향인 평안도 강계를 꼭 담고 싶다고 하지만, 그곳은 카메라가 아닌 온라인 지도로만 목격할 수 있는 곳이다. 김동원 감독은 영화 속에서 외국인 감독이 자신을 대리하여 강계를 찍어오는 것에 실패하긴 했지만, 사실 자신이 직접 가지 않으면 의미 없는 것이라 말한다. 이 영화는 제작 초기엔 김동원 감독의 연출작이 아니었다. 영화엔 2008~2013년 사이에 공백이 존재한다. 본래 연출을 맡았던 푸른영상의 공은주 감독이 개인사정으로 작품을 떠났고, 김동원 감독이 2013년 다시 촬영을 시작해 지금의 영화가 되었다. <2차 송환>은 2019년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작이다. 영화 속에서 감독은 제작지원 사업을 신청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신념을 깼다고 말한다. 김동원 감독은 이 모든 실패들을 영화에 담아낸다.


 영화엔 개표방송이 종종 등장한다. <송환>에 등장한 시기까지 포함하면, 두 영화가 촬영되는 동안의 남한 대통령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이며, 북한은 김정일에서 김정은 위원장으로 변화했고, 미국 대통령은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조 바이든이다. 이 이름들은 “2차 송환”의 필연적인 실패를 보여준다. 영화 속 장기수들과 그들의 후원자들은 남한과 미국의 개표방송을 보며 희망과 좌절을 번갈아 가며 맞이한다. 2020년 미국 대선 개표방송을 보던 김영식은 김정은을 만났던 트럼프가 당선되어야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한다. 송환, 더 나아가 통일을 비롯한 남북한의 문제들은 당사자의 투쟁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러한 사회문제가 어디 있겠냐만, <2차 송환>이 담아낸 “송환”이라는 문제는 국가 하나의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다. 


 김영식은 김동원 감독과 함께 전국 곳곳을 돌며 <송환>의 행사들을 함께한다. 하지만 그는 <송환>을 별로 맘에 들어하지 않는다고 한다. <송환>이 장기수들의 심정을 대변해주긴 했지만, 문제의 근원을 파고들어 비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2차 송환>은 그 근원에 조금 더 접근한다.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되는 김동원 감독의 미국에 대한 기억과 감정, 민족적 문제로 치부될 수 있는 남북관계와 송환의 문제가 남한과 미국의 대선결과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상황 등등. <송환>은 비전향 장기수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었고, 이는 <2차 송환>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김동원 감독의 카메라에 담길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뿐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북한의 가족에게 영상편지를 남기는 김영식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송환>에 기록된 그의 모습보다 10여년이 흐른 뒤의 모습이다. 김동원의 두 영화는 김영식의 30년을 담아낸다. 수십년의 징역 생활 이후 남한의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느라 고생하던 순박한 표정의 얼굴부터, 단호한 표정과 목소리로 통일을 주장하는 얼굴까지로의 변화, 세상을 떠난 장기수들의 영정과 초상, 마스크를 쓰고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는 2021년의 김영식. <2차 송환>은 많은 실패 속에서 담아낼 수 있는 것을 담아낸다. 모두가 얼굴을 가리고 살아가야 하는 시대에, 30년의 시간이 기록된 얼굴을 목격한다. 국제정시나 정치공학, 외교 기술의 정교함과 같은 말하기에 앞서 기록되어야 하는 것은 그 얼굴이다. 김영식은 <송환>처럼 <2차 송환>에도 탐탁치 않으실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김동원 감독은 자신의 카메라가 담아낼 수 있는 것을 (이번에도) 담아냈다. 감독은 전작에 비해 우울한 영화일 것이라고 무대인사에서 말했지만, <송환>만큼이나 <2차 송환>도 많은 웃음을 전달한다. 누군가의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한다고, 누군가의 인간성이 맘에 든다고 할 때의 ‘인간’은 이성이 아닌 감정과 정동의 영역을 말한다. 이성의 정치는 무언가를 해결할 수 없다. 세상은 정교하지 못하며, 정치는 이성보단 감정의 영역이다. <2차 송환>은 김영식의 얼굴을 통해 그것을 다시금 알려주는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사진에 찍혔던 여성 인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