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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pr 01. 2022

돈의 심리적 가치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박송열 2021

 가난한 부부 영태(박송열)와 정희(원향라)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일용직을 전전하고 있다. 영태는 선배에게 빌려준 카메라를 돌려받지 못할까 불안해하고, 정희는 학교 동기의 추천으로 제3 금융권 대출을 받을 것인지 고민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두 사람이 놓지 않는 것은 각자, 그리고 함께의 자존감이다. 실제 커플인 영화의 두 주인공이 함께 각본을 쓰고, 박송열 감독이 연출을 맡은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의 이야기는 익숙하게 다가온다. 집 없이 곳곳을 떠돌며 살아가면서도 위스키와 담배, 애인이라는 취향을 포기하지 않던 사람의 이야기(<소공녀>)라던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직업 강탈을 시도한 가족(<기생충>) 같은 영화들을 떠올려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박송열과 원향라의 이야기는 앞서 언급한 영화들과는 다른 길을 향한다. 코미디나 스릴러와 같은 장르적 노선을 표방하지도 않고, 거시적인 사회구조의 문제를 지적하려는 욕심을 부리지도 않는다. 더군다나 이 영화의 (연기를 포함한) 기술적 완성도는 앞서 언급한 작품들과 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물론 영화를 못 찍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훈련받은 정극 연기도 양식화된 장르적 연기도 아닌, 고정된 카메라에 담기는 건조한 톤의 대사와 한 번에 한 가지의 감정만을 담아내는 두 인물의 표정은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의 단순한 목적을 보여준다. ‘가난’이라는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두 사람을 보여주는 것. 때문에 이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들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에 어떤 기교가 동원될 필요가 없음을, 그러한 것이 이미 영화가 제시하는 상황을 넘어서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과 같다. 정직하고 단순한 이 영화의 만듦새는 정교한 각본이나 화려한 연기 등을 동원하여 가난을 보여주는 것이 영화와 장르를 빌미로 삼은 과장과 착취로 손쉽게 이어질 수 있음을 슬그머니 보여준다.

 잠시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려보자. 영태는 선배에게 카메라를 돌려받지 못한다. 돈이 급해서 카메라를 팔아버렸다는 선배의 말에, 영태는 카메라 가격에 100만 원이 더 얹힌 돈을 달라고 요구한다. 정희는 영태에게 잘했다고 말하지만, 선배의 우울해 보이는 인스타그램을 본 영태는 문자를 보내 카메라 값을 뺀 100만 원을 돌려주겠다고 말한다. 다음 날, 선배의 인스타그램에는 새 차를 뽑았다는 게시물이 올라온다. 100만 원. 아주 크지도, 적지도 않은 돈은 영태의 자존심과 결부된다. 대리기사 일을 하면서 술 취한 손님의 헛소리에 차에서 바로 내려버리던 모습에서, 영태가 가난함 속에서 놓지 않으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었다. 300만 원을 사채로 빌린 정희의 모습에서 그들에게 100만 원이 적은 돈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영태가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받아낸 100만 원의 가치는 정희가 대출한 돈의 1/3이라는 가치로 환산되지 않는다. 돈은 객관적인 숫자로 표기되지만, 그것의 실질적 가치는 심리적인 것이다. 

 이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돈의 가치가 아니라 돈의 심리적 가치다. 이 영화는 최근 영화제에서 화제가 된 장편 독립영화 중에서도 극소수인, 어떠한 제작지원사업도 받지 않은 작품이다. 어쩌면 그 사실 자체가 이 영화가 가진 태도에 관해, 돈이라는 존재에 부여되는 심리적인 가치와 경제적이며 합목적적인 영화의 쇼트들에 관해 증명하고 있는 것만 같다. 영화의 두 주인공이 살아내려는 삶은 거창한 꿈이나 야망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단계 같은 비인간적인 직업이나 사채처럼 착취의 굴레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을 선택하지 않는 것, 인격모독에 가까운 말을 들어야 하는 일을 감내하지 않는 것, 돈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가끔씩 삼겹살이나 회를 먹는 것, “삶의 질”이라는 추상적인 용어를 구체적인 삶으로 만들어내는 것.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그러한 삶을 가장 투명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그러한 삶을 담아내는 최선의 영화 만들기를 실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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