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우스> 다니엘 에스피노사 2020
*스포일러 포함
영화를 보는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 “그 기나긴 개봉 연기 기간 동안 영화를 손볼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일까?” 영화의 쿠키영상을 보고 난 뒤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러기 위해서 영화를 바꿨겠구나.” MCU를 비롯한 슈퍼히어로 영화, 특히 스포일러에 극도로 민감해진 팬덤이 온라인에 들끓고 있는 작품들의 경우 예고편에 실제 영화와는 다른 장면을 집어넣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예고편 공개 이후 진행된 후반 작업, 재촬영, 재편집으로 인한 장면 삭제 등 다양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당연하게도 <모비우스> 또한 예고편과 본편이 달라진 부분이 존재한다. 그것을 통해 생각해봤을 때, 그리고 본래 <베놈 2> 및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 앞서 개봉 예정이었던 영화가 개봉 연기로 인해 일정이 꼬였다는 것을 떠올려 볼 때, <모비우스>의 실패는 예정된 것으로 생각된다.
영화의 내용은 단순하다. 희귀 혈액병을 앓던 생의학자 모비우스(자레드 레토)는 같은 병을 앓는 친구 마일스(맷 스미스)의 후원을 받아 치료제를 연구 중이다. 동료 의사 마틴(아드리아 아르호나)의 도움을 받아 흡혈박쥐의 DNA를 통해 치료제를 만들지만, 부작용으로 인해 뱀파이어처럼 인간의 피를 마셔야 하는 존재가 된다. 동시에 신체능력이 강화되고 박쥐와 같은 초음파 능력을 얻게 된다. 모비우스는 자신처럼 치료제를 맞고 악한 인물이 된 마일스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베놈> 시리즈가 우주에서 날아온 외계 생명체와 인간 사이의 기묘한 동거와 갈등을 다루고 있다면, <모비우스>는 동전의 양면 같은 두 인물을 통해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스파이더맨>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대명제를 다루려 한다. ‘다크히어로’ 혹은 ‘안티히어로’와 같은 홍보문구를 내세운 영화들이 그래 왔던 것처럼, <모비우스> 또한 선악의 경계에 있는 인물, 혹은 원작 코믹스에서 빌런에 위치해 있던 인물들이 무언가 선한 일을 하게 되는 상황을 담아낸다.
이 익숙한 구조는 익숙한 감흥을 주려 한다. 자신이 괴물처럼 느껴지던 헐크가 영웅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지켜봤던 것처럼(<인크레더블 헐크>), 심비오트에 감염된 스파이더맨이 마음을 다잡고 다시금 영웅으로 거듭났던 것처럼(<스파이더맨 3>), 모비우스는 흉측하게 변화했으며 인간의 피를 마시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되었지만 그것이 자신을 정복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반면 같은 상황에 놓인 마일로는 새롭게 얻게 된 능력에 동물적인 쾌감을 느끼고, 그것을 자신의 새로운 본능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어두운 화면으로 인해 모비우스와 마일로가 대결하는 액션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던가, 모비우스의 움직임에 따라다니는 연기 같은 효과가 동선과 배경을 과도하게 가려버리는 등의 아쉬움이 가득하다. 다니엘 에스피노사 감독의 전작 <라이프>가 감출 것과 보여줄 것을 적절히 구별해낸 괴수물이었음을 떠올려보면, <모비우스>의 연출은 안타깝기만 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다음에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모비우스>는 소니가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 3부작과 <베놈> 시리즈의 성공에 힘입어 기획한 SSU(Sony Spiderman Universe)의 새 작품이다. 다시 말해, <모비우스>는 MCU <스파이더맨> 3부작 이후 새롭게 시작될 3부작의 퍼즐 조각과도 같은 작품이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빌런 벌처(마이클 키튼)가 <모비우스>와 <베놈>의 멀티버스로 넘어오게 된다는 쿠키영상의 내용은 그것을 확정적으로 그려낸다. 소니는 이미 <스파이더맨 3>에서 다양한 빌런을 욱여넣다 실패했었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의 이스터에그를 통해 스파이더맨에 대항하는 슈퍼빌런 팀 ‘시니스터 식스’를 구현하려는 욕심을 드러냈었다. <모비우스>와 영화의 쿠키영상은 그 욕심을 다시 한번 드러낸다. 2년 전 공개된 티저예고편에서는 스파이더맨 및 벌처와 관련된 요소들이 이스터에그처럼 등장했었다. 초창기 MCU 영화들이 그러한 이스터에그와 몇몇 조연급 캐릭터를 통해 조심스레 세계관을 엮어냈던 것처럼 말이다. 공개된 본편은 이스터에그 대신 스파이더맨의 흔적을 영화 내내 드러내지 않다가, 쿠키영상에 도달해서야 갑작스레 밝힌다. 이는 그저 소니 스튜디오의 욕심을 드러낼 뿐인, 그것도 이미 수차례 실패한 욕심을 재확인하는 것뿐인 영상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는 <모비우스>의 만듦새에 관한 욕심이 없다는 이야기로도 읽힌다. 이 영화는 SSU를 위한 작은 퍼즐 조각일 뿐이지, 한 편의 재밌는 오락물이 될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불필요하게 긴 시간 동안 코스타리카 어딘가의 정글을 보여주는 오프닝을 떠올려보자. 개봉 연기로 인해 기존의 이스터에그 등이 쓸모 없어지자 새로운 연결점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을 뿐, <모비우스> 자체를 다듬는 것에 스튜디오가 관심 갖지 않았다는 것이 영화의 첫 장면에서부터 드러난다. 결국 <모비우스>는 이 영화가 반면교사로 삼았어야 할,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꿈꾸다 실패한 여러 영화들의 길을 그대로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