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뷸런스> 마이클 베이 2022
마이클 베이의 영화를 두고 베이헴(bayhem, 베이의 이름과 mayhem의 합성어)이라 부르는 것은 멸칭에 가깝게 쓰인다. 베이헴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쁜 녀석들 2>에서 판자촌을 박살 내는 스펙터클? 폭격을 받아 붕괴하는 <진주만>의 해군기지와 항공모함? <트랜스포머> 시리즈 속 수많은 먼지와 불꽃 사이에서 나뒹구는 거대 외계 로봇들? <6 언더그라운드> 속 대학살? 마이클 베이의 영화 속 무엇을 떠올려도 그것은 베이헴이라 부를 수 있을 법한 것이다. 베이헴의 목적은 단 한 가지다. 비디오 에세이 채널 “Every Frame is a Painting”의 토니 저우가 훌륭하게 분석한 것(https://www.youtube.com/watch?v=2THVvshvq0Q)처럼, 자신보다 앞선 블록버스터 영화와 연출가, 가령 <스타워즈>, 스티븐 스필버그, 성룡과 같은 스펙터클의 대가들을 난잡하고 저급하게 복제하는 것이다. 이는 딱히 마이클 베이의 숏들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익숙한 방법들을 훨씬 과장된 형태로 선보이며, 시각과 그것을 처리하는 신경반응의 한계치까지 스펙터클의 규모와 속도를 뻥튀기한다. 뻥튀기한다고 표현한 것은, 그것이 실제로 거대한 스펙터클이라기보단 보이는 것보다 거대하고 웅장한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통해 마이클 베이는 관객들의 신뢰를 잃었다. 캐릭터가 구별되지 않으며 폭발과 CG로 뒤덮인 이미지는 그의 숏에서 무언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내려놓게 만들었다. <트랜스포머> 이후의 작품인 전쟁영화 <13시간>과 넷플릭스 오리지널인 <6 언더그라운드>는 그에 비해 비교적 정제된 숏들을 보여주었다. 물론 여전히 정신없고, 하나의 숏에서 너무나 많은 움직임들의 레이어가 뒤섞여 있지만, <트랜스포머> 시리즈 후반부에서 보여준 정신없는 숏들과 일관성 없는 화면비 변화 등을 떠올렸을 때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이번 신작 <앰뷸런스>는 어떨까? 여전한 난장판일 뿐인가, 아니면 난장 스펙터클을 무언가로 만들어낸 작품인가?
대니(제이크 질렌할)와 윌(야히아 압둘 마틴 2세) 형제가 은행강도를 벌이던 중 우연히 신참 경관 잭(잭슨 화이트)을 쏘게 되고, 구급대원 캠(에이사 곤잘레스)이 탄 앰뷸런스를 탈취해 도주한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앰뷸런스>를 채우고 있다. 마이클 베이의 영화를 본 적 있는 관객이라면 이야기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숙지하고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스펙터클의 방향이 어디인가이다. 이 지점에서 <6 언더그라운드>는 실패했었다. 라이언 레이놀즈가 극의 중심을 붙잡아보려 해도, 위악적이며 기만적인 이야기와 맞물려 작동하는 스펙터클은 방향성을 잃고 실패하고 만다. <앰뷸런스>의 설정은 단순하다. 계획에 실패한 은행강도가 있고, 그들이 탈취한 앰뷸런스에는 민간인과 부상당한 경관이 타고 있다. 경찰은 경관을 지키기 위해 함부로 그들을 공격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일까, <앰뷸런스>의 카체이싱은 느릿하게 LA 시내를 돌아다닌다. [GTA] 시리즈를 즐겼던 관객이라면 익숙한 지형들을 영화가 쫓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 수준이다. <나쁜 녀석들> 시리즈나 <트랜스포머> 시리즈, <아일랜드> 후반부 등에서 봤던 것과 같은 대규모의 카체이싱은 이번 영화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영화의 제작비가 마이클 베이의 연출작 중 가장 적다는 것이 그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때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마이클 베이가 선보여 왔던 베이헴이다. 그의 인장과도 같은 원형 트래킹이 영화 초반부터 등장해 단순한 대화 장면에 스펙터클을 부여하고, 전작들에 비해 소규모인 액션 장면을 더욱 타이트하게 밀어붙인다. 흥미로운 것은 드론캠의 활용이다. <6 언더그라운드> 같은 작품에서도 드론캠은 종종 등장했지만, <앰뷸런스>에서는 액션 시퀀스의 1/3 가량을 드론캠이 채우고 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드론캠의 활동영역은 도로나 강둑, 마천루 같은 야외만을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지하 주차장, 좁은 통로, 은행 내부, 창고 등을 돌아다니며 액션과 클로즈업 모두를 담아내는 드론캠의 활용은 그간 망원렌즈를 통해 배경을 압축하고 인물의 움직임과 동선을 강조하며 규모를 뻥튀기하던 방식의 새로운 진화다. 다시 말해, 그간 망원렌즈를 통해 배경의 레이어를 압축함으로써 숏의 규모를 뻥튀기하던 방식이 배경이 되는 레이어들을 빠르게 훑으며 관객의 시각장에 기입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이를 통해 스펙터클은 더욱 효율적으로 제작되고, 실제로는 느릿하게 움직이는 앰뷸런스 카체이싱에 속도감을 부여한다.
그간 마이클 베이의 영화에서 스펙터클을 중단시키는 방식으로 등장했던 저급한 농담들이 줄어들었다는 점 또한 <앰뷸런스>의 강점이다. 저급한 성적인 농담이나 똥/오줌 같은 요소를 사용한 농담, 소위 ‘서비스 컷’이라 불리는 여성의 신체를 강조하는 숏들 또한 이번 영화에서 줄어들거나 사라졌다. 그렇다고 유머와 코미디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코미디가 스펙터클을 중단하고 갑작스레 삽입되는 농담이 아닌, 스펙터클 속에 삽입되었다는 것이 <앰뷸런스>의 강점 중 하나다. 가령 캠이 얼떨결에 잭의 복부를 절개하는 수술을 집도하게 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의사가 아닌 캠은 자신의 구 애인인 의사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고, 그는 또다시 외과 전문의에게 영상통화를 건다. 골프를 치던 의사들은 생중계를 통해 탈취된 앰뷸런스가 추격전을 벌이고 있음을 파악하고 있다. 추격전의 스펙터클의 한 복판에서 등장한, 평화롭게 아침식사를 하던 의사와 골프를 치던 의사가 등장하는 숏의 낙차, 그리고 원격으로 수술에 조언을 건네는 모습은 그 자체로 퍽 훌륭한 코미디로 기능한다.
<앰뷸런스>를 좋은 영화라고 치켜세우고 싶은 것은 아니다. 부실한 이야기, 그의 영화에서 반복되는 설정, 썩 흥미롭지만 여전히 남용되는 스펙터클 등은 여전히 비판 지점이다. 다만 블록버스터의 역사에서 마이클 베이라는 이름을 지울 수 없는 만큼이나 정당한 평가가 필요하다 생각한다. <앰뷸런스>는 그가 30년에 가까운 커리어 동안 쌓아온 경험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스펙터클은 어떻게 과장되고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가? CG로 점철된 가짜 스펙터클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지만, 실은 마이클 베이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은 아니다. 그가 텅 빈 스펙터클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70~80년대 블록버스터와 액션영화의 종언을 고하는 것임과 동시에, MCU로 대표되는 그린 스크린 스펙터클의 플랫하고 지루한 스펙터클의 가상을 드러낸다. 그 둘 사이에 끼인 존재로서, 마이클 베이의 “베이헴”은 흥미로운 분석대상이며 <앰뷸런스>는 즐거운 레퍼런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