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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pr 14. 2022

자멸하는 작가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데이빗 예이츠 2022

 *스포일러 포함


 1930년대를 배경으로 삼은 이번 영화 속 그린델왈드(매즈 미켈슨)와 그의 추종자들의 행적에서 나치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 속에서도 그린델왈드의 몰락은 1945년 덤블도어(주 드로)와의 결투로 인한 것이다. 이번 영화는 그린델왈드가 본격적으로 세력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신비한 동물들은 다시 한번 실종되었고, 이야기의 중심은 제이콥(댄 포글러), 퀴니(앨리슨 수돌), 테세우스(칼럼 터너) 등 뉴트(에디 레드메인)의 동료들이 아닌 덤블도어와 그린델왈드의 대립이며, 크레덴스(에즈라 밀러)의 과거는 그것을 잇는 요소로만 사용된다. 랠리(제시카 윌리엄스)와 유서프(윌리엄 나딜람) 등 덤블도어의 동료와 뉴트의 조수 번티(빅토리아 예이츠)처럼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지극히 도구적으로만 얼굴을 비칠 뿐이다.

 영화의 상황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국제마법사연맹의 새 지도자를 뽑는 선거가 이뤄질 예정이고, 브라질인과 중국인 후보가 등록되어 있다. 현 지도자인 보겐(올리버 마수치)은 그린델왈드를 사면하고 그를 후보로 추대한다. 마법사 사회의 선택이 그린델왈드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줄 것이라는 것이 그의 아이디어이지만, 실상은 그 또한 그린델왈드의 추종자다. 어처구니없는 지점은 마법사 민중의 선택이 그린델왈드의 정당성을 판가름해줄 예정이지만, 그 직후 영험한 신비한 동물 기린의 선택이 지도자를 선출하게 됨이 밝혀진다. 이러한 각본 상의 어처구니없는 지점은 계속 이어진다. 새로 등장한 인물 중 가장 기능적인 캐릭터인 번티는 아예 서사 바깥으로 사라졌다 적당히 필요한 순간에만 얼굴을 비춘다. 뉴트의 연인이자 앞선 두 영화의 히로인이었던 티나는 업무 과중을 이유로 영화가 끝나갈 무렵에야 등장한다. 영화의 제목인 ‘신비한 동물’은 기린을 제외하면 비중 있게 나오지 못한다. 전편의 주요 인물이었던 내기니(수현)는 아예 실종되었고, 크레덴스는 본명이 아우렐리스 덤블도어였다는 전편의 반전 이후 에버포스(리처드 코일)의 아들이라는 설정까지 붙으며 너저분한 캐릭터가 되었다. 크레덴스는 덤블도어와 그린델왈드를 잇는 열쇠와 같은 캐릭터이지만, 그가 덤블도어 암살에 실패하는 장면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도 못한다. 사실 덤블도어와 크레덴스의 대결마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무엇보다 이번 영화는 지난 8편의 <해리 포터>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감추지 않는다. 스네이프의 명대사 “Always”가 에버포스의 입에서 크레덴스를 향해 나오는 순간이라던가, 빈약한 연출을 존 윌리엄스의 음악을 그대로 사용하며 땜빵하는 모습은 팬서비스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가 <해리 포터> 시리즈의 후광을 입고 간신히 유지되고 있음을 스스로 실토하는 꼴이다. 물론 근본적으로 <해리 포터> 시리즈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타고 난 시리즈이지만, 이와 같은 방식은 자신을 둘러싼 후광을 상기시키는 것은 독립적인 시리즈가 될 수 없음을 자백하는 꼴이다. 더 나아가 이번 편은 그간 롤링이 소설 바깥에서 말로만 풀어내던 설정을 공식화하는 수준에 그친다. 가령 덤블도어와 그린델왈드의 사랑 이야기와 같은 것 말이다. 그 때문인지, 혹은 각본가로서 롤링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전작과 이번 영화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기보단 설정집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장면과 장면은 매끄럽지 못하게 이어지고(뉴트가 기린을 구한 뒤 갑자기 호그스미드에 등장하던 것을 떠올려보자), 단순한 장면은 실패한 유머를 담아내기 위해 늘어진다(번티가 위조 가방 제작을 맡기는 장면).

 그러한 설정놀이 끝에는 이 영화가 기본적인 배경으로 삼고 있는 상황들의 모순적인 대립이 있다. 중국인과 브라질인이 국제마법사연맹 후보로 등장한 것이 인클루전 라이더가 실행된 모습이라면, 그 뒤엔 명백히 티베트를 연상시키지만 부탄으로 설정된 히말라야의 어느 장소가 있다. 영화는 나치를 연상시키는 악당을 등장시키지만 흥행의 위험요소인 어떤 것들은 회피하고 있다. 이 영화가 상기시키는 것은 <해리 포터> 시리즈의 추억이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롤링의 인종차별적, 성차별적, 퀴어혐오적 언행과 함께, 그가 <해리 포터 20주년: 리턴 투 호그와트>에 자료화면으로만 등장했으며, 주인공 삼총사를 비롯한 출연진의 비판을 받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할 뿐이다. 롤링과 예이츠는 자신이 쌓아 올린 가능성의 세계를 스스로 무너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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