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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pr 22. 2022

오작동하는 제도 속에서

<복지식당> 정재익, 서태수 2021

 <복지식당>은 단순하고, 솔직하고, 정교하다. 공동감독이자 장애인 당사자인 정재익 감독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삼은 이 영화는 교통사고로 인해 후천적 장애인이 된 재기(조민상)의 삶을 담아낸다. 재기는 누가 봐도 중증장애인의 상황이나, 경증으로 분류되는 5급을 받아 다양한 활동지원을 받지 못한다. 장애인등급제는 2019년 폐지되었기에 재기의 이야기는 과거의 것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복지식당>은 촛불시위 정국의 뉴스를 화면에 담아내는 등의 방식으로 영화의 배경이 2016년임을 숨기지 않는다. 다만 과거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는 것은 <복지식당>이 뒤늦게 찾아온 이야기라는 의미는 아니다. 일반 대중교통은 물론 장애인 콜택시 또한 장애인 이동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으며, 등급제는 폐지되었으나 경증/중증이라는 이름으로 복지제도 수혜의 차등 또한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고, 장애인 인권 의제는 제대로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

 <복지식당>은 재기를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재기가 교통사고를 당했음을 알려주는 초반부에서 보험사의 입을 빌려 그가 음주운전 가해자임을 넌지시 알려준다. 관객은 재기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장애인이 된 그의 상황들이 연이어 등장하게 된다. 5급을 받은 재기는 전동휠체어를 얻는 것부터 망가진 지팡이를 교체하는 것, 장애인 콜택시를 부르는 것, 취업활동에 나서는 것 등 다양한 활동에서 제약을 받는다. 누가 봐도 중증장애인으로 인식되지만 등급상 경증장애인인 그의 처지는 그의 모든 활동을 제한한다. 재기가 우연히 알게 된 병호(임호준)의 도움을 통해 재기는 장애인 스포츠인 룸볼을 접하고, 다른 장애인들과 교류할 수 있게 된다. 

 병호는 지역 장애인 커뮤니티의 큰형님 같은 존재다. 전형적인 남성 호모소셜 집단의 생태계를 고스란히 따라가는, 호형호제하는 문화로 구성된 <복지식당> 속 장애인 커뮤니티는 장애인 등급제라는 제도가 만들어낸 게토다. 오작동하는 시스템은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수혜를 주지 못한다. 도리어 지원을 받아야 할 사람 대신 제도를 다른 방향으로 활용하는 병호 같은 인물에게 수혜가 몰리게 된다. 겉보기에 병호는 재기를 비롯한 장애인 동료시민을 힘껏 돕는 사람 같지만, 그는 제도의 허점으로 새어 나오는 자원을 가로채는 인물이다. 병호는 재기의 행정소송을 돕는다면서 변호사로부터 뒷돈을 챙기고, 대출을 받게 하고, 재기의 누나 은주(한태경)에게 사심을 품고 그들의 불안정한 경제적 상황을 악용한다. 병호와 같은 인물은 어디에나 있을 것이다. 다만 재기가 놓인 상황,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공권력의 보호 바깥에 있으며 게토화된 커뮤니티가 그의 목소리를 짓누르고 있는 그 상황, 그 속에서 재기의 선택권은 많지 않다. 

 <복지식당>은 재기의 불행을 전시하는 종류의 영화가 아니다. 그가 놓인 상황을 하나하나 나열하면서 그가 놓인 시스템의 구조를 드러내고 있다. 재기가 하나씩 겪게 되는 상황은 서로 연결되며 하나의 그물이 되어 재기를 둘러싼다. 영화 속 재기의 궤적은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영화의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행정소송 장면에서 울려 퍼지는 재기의 목소리는 마지막에 끊긴다. 그의 목소리는 전달될 수 있는가? 자신을 둘러싼 그물을 뚫고 결국 혼자 목소리를 내는 그의 곁에는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 <복지식당>은 이 고민을 함께하자고 제안하기 위해 직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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