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 쉘 낫 그로우 올드> 피터 잭슨 2018
영화는 흑백 푸티지로 시작한다. 1차 세계대전에 영국군으로 참전한 이들이 당시 분위기를 증언하는 음성이 이어지고, 영사기 소리와 함께 자원입대가 남자다움으로 여겨지던 당시 영국의 분위기를 담은 영상들이 이어진다. 나이를 속여가면서까지 자원입대한 이들은 영국에서 훈련을 받은 뒤 프랑스에 위치한 전선에 배치된다. 영화는 이들이 전선에 향하는 장면에서 컬러로 전환된다. 1차 세계대전은 1914년부터 1918년까지 벌어졌다. 다시 말해, 컬러 이미지를 촬영하는 기술은 발명되지 않았다. 전장에서 영상과 소리를 동시에 녹음하는 기술 또한 없었다. 피터 잭슨은 여러 기관 및 업체와 협력하여 당시의 영상에 컬러와 소리를 입힌다. 진흙 색깔의 전장과 창백한 시체의 피부, 진흙탕에 흩뿌려진 피와 불타는 대지가 복원되었다. 굉음을 내며 적군을 향해 날아가는 포탄 소리와 전우의 머리를 둘로 갈라버리는 총탄 소리, 물자를 나르는 간이 기차와 말의 소리가 복원되었다. 종종 부사관이나 병사들의 대화나 함성이 들려오기도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오래전에 본 싸구려 호러 영화 속 대사가 떠올랐다. 시네마테크에서 일하는 그 영화의 주인공은 견학 온 초등학생들에게 1900년대 초 파리 시내를 촬영한 필름을 틀어주며 이렇게 말한다. “영화 속 사람들은 100년 전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보고 있는 것은 유령들입니다.” <데이 쉘 낫 그로우 올드>를 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이 대사가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딥페이크 기술을 통해 젊어지거나, 늙거나, 다른 사람의 얼굴을 뒤집어쓴 영상을 볼 때의 언캐니함이 이 영화 속 병사들의 얼굴에서 느껴진다. 디지털을 통한 업스케일링과 컬러화 작업은 딥페이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과정을 거친다. 딥러닝을 통해 이미지를 분석하고, 더 많은 픽셀로 이미지를 분할해 화질을 높이고, 색을 추정해 입히는 것이 그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화 속 병사들의 얼굴은 종종 뭉개지고, 어딘가 붕 떠 있고, 종종 얼굴이나 배경과 맞지 않는다.
다시 말해 피터 잭슨의 프로젝트가 복원한 것은 과거의 영상에 색과 화질과 음성을 부여하는 행위 이상의 것이다. 그의 전작에 빗대자면, 죽은 줄 알았던 엄마, 이웃, 심지어 내장이 좀비가 되어 다시 되돌아오거나, 아라곤이 유령 군대를 동원하던 것이나, 고대의 것들이 가득한 섬이라거나, 여하튼 그러한 관심사의 연속이랄까. 그것이 프로이트가 말하는 “억압된 것의 회귀”는 아닐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의 전장은 억압되었던 것도, 재현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치를 소환하며 2차 세계대전의 전장을 소환해오던 할리우드는 <원더우먼>,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1917> 등 1차 세계대전의 전장으로 관심을 옮겨가고 있다. <데이 쉘 낫 그로우 올드>는 더 이상 늙을 수 없는 유령들을 불러낸다. 그 유령들은 원치 않는 전쟁에 참가했다. 그들이 원한 것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바람은 소년에서 남자로, 어머니의 품 속에 있던 아이에서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생애 처음으로 맞이한 급격한 성장의 기회를 그들은 붙잡았다.
1차 세계대전은 2차 세계대전과 다르게 영국 섬에서 벌어지지 않았다. 영국에 남아 있던 민간인들은 전장의 상황을 모른다. 다시 흑백으로 돌아온 화면 위로 등장하는 참전군인, 퇴역군인에 대한 그들의 거부감은 급속히 성장한 남성들에 대한 거부감, 이러한 성장을 겪었으면 안 되었을 이들에 대한 거부감일지도 모른다. 피터 잭슨이 복원한 것은 이미 죽어 더는 늙지 않을 유령들임과 동시에, 100만 명이 넘는 청년을 죽음으로 내몬 뒤 책임지지 못하고 새로운 전쟁을 일으키게 된 국가의 유령이자, 갑작스레 자라 버린 이들의 인정받지 못한 남성성의 유령이다. 그 유령은 현재에 다시 복원되어 소환될 필요가 있다. 업스케일링과 컬러화는 그것의 으스스함에 방점을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