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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pr 25. 2022

2022-04-24

1. 오랜만의 일기와 메모. 윤성호 감독의 작품들을 몰아보고 있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도 조만간 다시 볼 생각이다. 한국 영화에 인터넷 문화가 스며들기 시작한 게 00년대 초반의 영화들일텐데, 윤성호의 작품들이 그 중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자신의 전작들 다음 작품의 밈으로 삼는 것, 가령 <은하해방전선>에 나온 "하루 10분씩 그냥 들여다보기만 해도 코펜하겐식 이별 실력이 부쩍 느는 비디오" 문구라던가, <극장판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에 나온 <은하해방전선>의 포스터라던가, 어딘가 연속성을 가진 것 같은 박혁권, 박희본, 조한철 등 반복적으로 그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모습이라던가... 자신의 전작을 밈처럼 활용하는거야 적지 않은 감독들이 사용하고 있고, "감독의 인장" 같은 문구로도 표현되는 것이지만, 윤성호 작품 속 자가생산 밈들은 그의 작품이 서로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연결된 세계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니까 우익청년 윤성호가 살아가는 세계의 2021년이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의 세계 같고, <내일부터 우리는>의 이야기가 벌어지는 한켠에서 <두근두근 외주용역>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을 것만 같고, <게임회사 여직원들>의 인물들과 <아이돌 권한대행>의 인물들은 언젠가 만나게 될 것만 같다. (극장용) 영화와 웹드라마, 네이버TV와 OTT를 경유하는 그의 필모그래피는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플랫폼의 서비스 종료 등은 필모그래피의 구멍을 내기도 한다. 유튜브로 공개된 인디시트콤이 재편집되어 극장판 영화가 되기도 하고, 웹드라마의 일부를 재편집해 단편영화로 공개하기도 한다. 윤성호는 UCC라는 단어가 유행할 때부터 온라인에 콘텐츠를 공개해왔고, 온라인 커뮤니티의 언어를 영화에 삽입한다. 그의 농담 스타일이 농담을 설명하기 위해 끝없이 맥락을 덧붙이며 스스로 우스워지는 것 같다고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극장판의 첫 장면을 본 뒤 생각했었다. 자신이 광대가 되는 방식의 코미디는 가급적 많은 접촉을 필요로 한다. 윤성호의 필모그래피가 그리는 궤적의 핵심이라면, 접촉면을 넓히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짧게 적어둔다. 인디포럼 20주년을 기념해 나온 책자에선 매 영화제마다의 상영작을 하나씩 골라 감독들을 인터뷰한 글들이 있다. 2003년의 영화로 <지옥>이 선정되었고, 연상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작정 인터넷에 작품을 올려 봤다. 당시 ‘웃긴대학’이나 ‘CG랜드’같은 사이트였는데, 반응이 좋았다. 나름 용기를 얻어 인디포럼 영화제 소식을 듣고 출품을 하게 되었고 상영 기회를 얻었다." 연상호가 TV드라마와 OTT 컨텐츠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윤성호가 웹드라마에 발을 들인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중이다.


2. 개봉작을 리뷰하거나 어디선가 청탁받아 쓰는 것 외에 개인적인 한 해 프로젝트로 뭔가를 써보려고 고민 중. 브런치북 시스템을 활용해 2010년대의 액션영화 전반에 대한 것을 뭔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고 있다. 시작은 마침 2010년에 개봉했던 노땅 하드바디들의 <익스펜더블>로 생각하고 있다. 2007년의 <트랜스포머>는 CG만으로 이뤄진 캐릭터의 액션만으로 대규모 흥행을 거둔 사례였고, 2008년 시작된 MCU는 그것에 불을 지폈다. <익스펜더블>은 소위 '리얼 액션'이라 불리는 것의 마지막인 것처럼 80~90년대 액션스타를 싸그리 끌어모아 셀프 장례식을 치뤄준다. 이연걸과 제이슨 스타뎀의 액션은 볼만 했지만, 영화의 주축이었던 실버스타 스탤론, 아놀드 슈워제네거, 브루스 윌리스의 모습은 봐주기 어려웠다. 세 사람의 2010년대 필모그래피는 그들이 액션하는 몸으로 다시 설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록키는 액션을 직접 수행하는 대신 크리드의 스승이 되거나, CG 크리처가 되거나, 여튼 그랬다. 터미네이터는 CG의 힘을 빌려 젋어지거나, 액션의 자리를 후배에게 물려줄 수밖에 없었다. 혹은 한국인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에서 어설프게 더티 해리 흉내를 내는 바보가 되거나. 존 맥클레인은 악당이 아니라 폐건물과 싸우는 것만 같다. 액션 하는 몸들은 CG로 그려낸 움직이는 컨셉아트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만 같았다. 할리우드의 흐름과 무관하게 등장한, <레이드: 첫 번째 습격>부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행자객>이나 <퓨리> 같은 동남아시아-동아시아 액션영화의 흐름이 등장했지만, J.J. 에이브람스는 이코 우웨이스와 야얀 루히안에게 괴상한 외계인 분장을 시켜놓고 액션 분량을 챙겨주지 않았다. <비욘드 스카이라인> 같은 극단적 사례는 할리우드가 직접 뭔가를 타격하는 액션을 전혀 소화할 수 없는걸 보여주는 것만 같다. 동남아시아의 액션 스타들이 CG 외계인을 타격하는 것보다 MCU에서 구르던 프랭크 그릴로가 그것을 상대로 선보이는 액션이 더 그럴듯해 보였다. 물론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같은 예외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떠올려야 할만한 것은 채드 스타헬스키와 데이빗 레이치의 <존 윅> 시리즈, 그리고 그 이후 선보인 <아토믹 블론드>, <분노의 질주: 홉스 앤 쇼> 같은 것의 비전을 쫓는 것이다. 채드 스타헬스키도 야얀 루히안과 세셉 아리프 라흐만을 제대로 쓰진 못했지만 말이다. 아참, 그러보고니 드웨인 존슨이 중요하다. <스콜피온 킹>으로 영화계에 데뷔한 프로레슬러 드웨인 존슨은 누군가를 때려 눕히고 집어 던지는 액션도 많이 했지만, 그가 독자적인 노선을 택할 수 있게 된 첫 분기점은 CG 공룡들을 상대하는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2: 신비의 섬>이라는 것에 주목해보자. 여담이지만, 이 영화의 전작에선 <미이라> 시리즈의 브랜든 프레이저가 주연이었다. 드웨인 존슨은 <익스펜더블>의 노땅 하드 바디를 이어받는 인물임과 동시에, 그가 레이건 시대의 백인 남성 하드 바디가 아니라는 점에서 2010년대의 대표적인 액션하는 몸이다. 그가 몸담았던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그래서 기이하다. 시리즈가 지금의 모습을 갖춘 5편은 그때 합류한 드웨인 존슨과 주인공 빈 디젤을 비롯해 백인이 아닌 배우로 가득했다. 폴 워커와 조대나 브루스터를 제외하면 10여 명의 주인공 일당 중 백인은 없었으니까. 헌데 빈 디젤과 드웨인 존슨은 갈라서게 된다. 2020년대의 이 시리즈는 우주로 날아가버린다. <분노의 질주>의 마케팅은 실제로 부숴진 자동차를 강조하지만 너무 많은 CG가 그것을 뒤덮고 있다. <분노의 질주>는 MCU와 <존 윅> 부류의 '리얼 액션' 사이에 끼어 있다. 드웨인 존슨은 그것에 만족하지 못한 것만 같다. 그가 빈 디젤과 불화한 이유는 다른 것이겠지만, 직접 제작한 <램페이지>, <산 안드레아스>, <스카이 스크래퍼> 혹은 <쥬만지> 시리즈 같은 영화들을 떠올리고 있자면, 드웨인 존슨의 관심은 물질적인 대상과의 싸움 대신 자신이 표방하는 가치를 공격하는 가상의 무언가와 싸우고 싶어하는 것만 같다. 드웨인 존슨과 빈 디젤의 창작적 견해가 맞지 않았다면, 세계정복을 노리는 냉전스러운 적들과 싸우는 것에 대한 관심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드웨인 존슨은 곧 DCEU에 데뷔할 예정이기도 하니까. 결국 화두는 이런 것이다. 2010년대의 액션하는 몸은 어디서 온 누구의 것인가? 스스로를 소모품(익스펜더블)에 비유하는 하드 바디들의 시대가 떠나간 이후에 등장한 것은 누구인가? 그것은 제 2의 토니 쟈일수도, 이소룡의 스승일수도, 슈퍼히어로일 수도, 비백인 하드 바디일 수도, 반-가부장제적 여성들일 수도, 혹은 그냥 CG로만 만들어진 캐릭터일 수도 있다. 근데 이걸 어떻게 정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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