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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y 20. 2022

2022-05-19

난 또 시민이 아니야?

1. 무언가를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표현은 어딘가 어색하다. 시민의 것이기 이전엔 누구의 소유였다는 것인가? 용산 미군기지 부지를 시민에게 돌려준다던 이야기는 윤 뭐시기의 집무실 이전으로 지켜지지도 않았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찬을 추진한다는 오늘 자 기사들은 도리어 박물관을 "시민에게서 뺐어가는" 행태에 가깝다. 김남석 문화평론가 겸 영화의 전당 신임 프로그래머가 4월 28일 부산일보에 기고한 글(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2042818481824697)도 유사한 맥락으로 읽힌다. 이 글은 문장 사이사이 모순으로 가득하다. "시민들에게 영화의전당은 관광 명소로 더 잘 알려져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부산 시민들에게 영화의전당은 낯설다"고 말하고, "시네마테크라는 점을 감안하고 동등한 위치에 운영되는 시설과 비교하면, 부산 영화의전당은 상대적으로 우수한 유치 실적과 관객 동원력을 보이는 사실도 부인하지 않겠다"라면서도 "영화의전당은 시민들과는 유리된 공간이다"고 말한다. "적자를 메우려고 본연의 업무 이외의 일을 하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영화의전당을 부산시민들에게 돌려줄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영화의 전당의 재정 상황을 엿볼 수 있지만, 그것은 이 글의 주요한 문제가 아니다. 영화의 전당이 겪는 재정난에 관해 말하려는 것이 칼럼의 목적이었다면 그것을 말하면 된다. "'영화의 전당'을 시민들에게"라는 제목의 이 글은 이상한 포퓰리즘적 논리를 펼치고 있다. 영화의 전당을 이용하는 (비록 소수일지라도) 부산 및 인근 지역 시민들을,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영화의 전당에서 개최되는 여러 영화제를 찾는 전국 각지의 시네필들을 비-시민으로 간주한다. 시네필이 아닌 시민을 대상 삼은 글이라 생각하더라도,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글에 담기지 않았다. 2,000차 남짓한 일간지 칼럼에 많은 고민을 담기야 어려웠겠지만,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말이 갖는 공허한 욕망을 떠올려 봤을 때 불안감이 먼저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말에는 그 시민이 어떤 시민인지가 빠져 있다. 시민이라는 추상적인 대상에게 어렵사리 운영되는 공공시설(특히 문화예술 시설)을 돌려준다는 것은, 기관이 쥐고 있는 마지막 역할마저 빼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영화의 전당은 중극장, 소극장, 시네마테크관, 인디플러스관 총 네 개 상영관을 보유하고 있다. 212석 규모의 시네마테크관은 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나 서울아트시네마처럼 고전영화 위주의 프로그래밍을 선보이고, 36석 규모의 인디플러스관은 독립영화 전용관이다. 수입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소극장과 상업영화를 상영하는 중극장은 각각 212석과 413석 규모다. 어찌 보면 "멀티플렉스"라는 용어가 최초에 지향하던 바를 나름대로 선보이고 있는 셈이다. 위 글에서 말하는 것처럼 영화의 전당은 인근 주민들의 산책로이자 공원 비슷한 시설의 기능을 하기도 하고, 관광객들의 "사진 명소"로 기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영화의 전당을 시민들에게"에서 시민은 대체 누구인가? 대기업 멀티플렉스 체인과 관객수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말인가, 혹은 관객 모객과 연관 없는 영화의 전당의 다른 기능(아카이빙, 연구, 영화제 등)은 의미없다는 이야기인가? "친숙하지 않다", "낯설다"는 표현을 반복하고 있지만 정말로 그런가 관해서 저 글은 관심이 없다. 영화의 전당을 통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소수만 알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알릴 방안을 개발하고 기획해야 한다. 문장 사이사이 모순이 가득한 이 글은 영화의 전당이 주는 "낯섬"도 영화의 전당을 돌려주겠다는 "시민"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왜 시민들에게 저 공간을 돌려줘야하는가? 더 나아가 지금은 시민들의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영화의 전당 신임 프로그래머라면 이에 대한 조금 더 명확한 해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시민들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라는 공허한 공약, 대상없는 포퓰리즘일 뿐이다.


2. "언더그라운드"라는 용어의 쓰임이 궁금하다. 언더그라운드는 인디펜던트와는 다르다. 전자는 '그라운드'를 표방하는 만큼 씬에 관한 것이고, 후자는 작업 제작방식과 자본의 문제에 가깝다. 씬의 문제는 태도, 구성원, 공간의 문제다. 이를테면 PC통신에서 출발한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에는 당시 활동하던 래퍼들이 지금까지도 가사로 추억하고 기억하는 클럽 마스터플랜 같은 곳 공간들, 소울컴퍼니가 태동한 하자센터에서의 MC메타의 수업, 오버그라운드와 선을 긋는 태도들 같은 것 말이다. 영화에서는 무엇이 있을까? 97년도 인디포럼 프로그램북에 실린 전승일 감독의 글 [인디펜던트 영화여 언더그라운드로!!!]에는 이런 문단이 있다.

 "대안적이기 위해서, 맞서기 위해서, 극복하기 위해서, 좀 튀기 위해서 독립영화는 보다 다양하고 세분화된 문화 실험장으로서의 언더그라운드를 구축하는 게 어떨까? 그 안에 쏟아 붓고, 얘기하고, 칭찬하고, 욕하고, 즐기고, 평가하고, 그러면서 우리만의 문화를 만들면 어떨까? 오버그라운드(?)의 몇몇 단편영화제에 선보이고, 상받고, TV에 몇 번 나오고, 비디오로 출시되고, 대학행사 때 상영되고 그러면 다한 걸까? 그 정도로 영상에 대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스스로의 욕망에 대한 목마름이 채워질까? 솔직하고 거침없이 드러내자. 독립영화해서 돈 벌었다는 얘기가 아직도 흘러나오지 않는 걸로 보아서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 아닌가."

전승일의 말은 2000년대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언더그라운드는 태도의 문제라는 것이 더욱 확실해진다. 태도를 뒷받침해줄 공간과 구성원의 의욕, '활력'이라고 부를 무언가가 중요한 것이다. 한국영화의 언더그라운드라는 게 있었다면 97년부터 2003년까지 진행된 십만원비디오페스티벌(과 그것의 영향을 받은 부산의 언더그라운드 캠코더 영화제), 그리고 2001~2003년 사이 충무로역에 있었던 활력연구소와 같은 것이었겠다. 물론 나는 그 영화제와 공간들을 모른다. 영화제에서 어떤 영화들이 상영되었는지 리스트를 접하기도 어렵다. 그런 공간이 있었고, 지금도 활동하는 몇몇 감독들이 그곳을 통해 활동을 시작했고, "기술적 완성도" 같은 추상적인 개념에 구애받지 않는 작품들이 상영되었다는 것만을 뒤늦게 알았을 뿐이다. 흥미로운 것은 언더그라운드라는 용어가 언제 사라졌는가다. 분야를 막론하고 어떤 방식이든 제도가 발생했을 때 언더그라운드라는 용어는 힘을 잃었다. 한국독립영화의 역사를 떠올려보자. 한예종 영상원이 1995년 설립, 독립영화를 표방한 한국의 첫 독립영화제인 인디포럼이 1996년에 시작되었고, 1998년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설립되었고, 1999년 한국청소년단편영화제가 한국독립단편영화제((현)서울독립영화제)로 이름을 바꾸며 경쟁독립영화제로 재출범했으며, 2001년 미디액트가, 2002년 서울아트시네마가 생겼다. 90년대 말~00년대 초는 한국독립영화제 다양한 방식으로 제도화 되던 시기다. 공적 자금이 들어오고, 지원금제도가 발생한 시기다. 그 과정에서 활력연구소는 서울시의 불공정한 행정으로 인해 사라졌다. "독립영화"는 제도적으로 유지되지만, 씬은 동력을 잃기 시작했다. 언더그라운드 힙합도 묘하게 비슷하다. 공적자원이 투입된 것은 아니다. 반대로 대기업의 자본이 씬 자체를 들어 오버그라운드로 올려버렸다. 2012년 <쇼 미 더 머니>의 시작은 일종의 발판 마련이었고, 2013년 <쇼 미 더 머니>의 두 번째 시즌과 함께 벌어진 "컨트롤 대란"은 한국힙합 전체를 메인스트림 콘텐츠로 만들어냈다. 2015년 개설된 딩고 프리스타일 채널의 점진적인 상승세로 시작된 유튜브 시장은 한국힙합의 제도화를 완성시켰고, 언더그라운드를 외치는 래퍼는 더욱 적어졌다. 제도화는 씬의 안정화를 가져오고 자본의 유입을 가능케 하지만, 동시에 "언더그라운드"라는 씬, 정체성, 태도의 존립을 위험케 한다. 시장논리 안에서 자생적인 언더그라운드 씬을 만들 수 없는 한국의 작은 시장의 문제일까? 다른 대안은 없을까? 시스템이 없던 시기의 씬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제대로 된 아카이빙이 없는 상황에서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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